소설 '인생연금' 제6화
조명이 반정도 꺼진 대회의실. 임원과 각 팀의 팀장까지 약 육십 명이 나를 주목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지만 회의실은 적막하다. 내 발표가 흡인력이 있어서인지,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해서인지 알 수가 없다. 신사업 공모전 최종 발표. 이미 20여 장의 장표를 설명하느라 진이 빠진 상태다. 리모컨 버튼을 눌었다. 등 뒤의 대형 모니터에는 발표의 마지막 페이지가 펼쳐졌다. 화면에는 검은 바탕에 ‘Plants, Profit, Planet’ 이라고만 적혀 있다. 책상 위의 자료만 뚫어져라 보고 있던 몇 명의 임원들이 방 안이 갑자기 어두워진 탓인지 고개를 들고 화면을 응시했다.
“지금까지 설명드린 바와 같이 이제는 재건축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고, 오래전에 지은 아파트는 갈수록 변화하는 주거 트렌드와 맞지 않는 불편한 곳이 되고 있습니다.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텅 빈 지하 주차장입니다. 자료에서 보신 것처럼 공유 자동차의 이용은 더욱 증가할 것이며, 젊은 층의 자동차 구매도 지금 이상으로 줄어들 것입니다. 비어 있는 지하주차장 일부를 식물공장으로 개발하여, 당사는 식물판매를 통해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고, 아파트 소유자에게는 임대료를 지급하여 수익을 보장하는 본 사업은 노후 아파트에 새로운 활력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또한, 입주자에게 생산된 농작물, 과일을 저가로 우선 공급한다면, 지구 온난화로 양질의 채소, 과일을 저렴하게 구입하기 어려운 이 시대에 공장 유치를 매력적으로 어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미국이 전 세계 농작물 수출 1위 국가입니다. 혹시, 2위가 어디인지 아십니까? 네덜란드입니다. 국토는 우리나라 절반밖에 안 되지만 말이죠. 네덜란드는 온실을 이용한 실내 농업의 생산성이 월등하게 높기 때문입니다. 이 사업은, 비어 있는 아파트 단지 지하 주차장을 농업 자본으로 활용하여 우리나라의 농업 생산력을 높일 수 있고, 그만큼 농업을 위해 없어지는 산림을 줄일 수 있어 지구환경 보전에도 기여할 수 있습니다. 식물을 통해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고, 지구 환경도 지키는 것, Plants, Profit, Planet, 이것이 이 사업의 핵심입니다. 지금까지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의실 내에 불이 커지자, 희미한 박수 소리가 들렸다. 대부분은 의례적인 힘없는 박수였지만, 몇몇 임원들이 힘차게 박수를 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럼, 지금부터 질의응답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질문 있으신 분은 자리 앞의 마이크를 켜시고 질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
사회자가 말을 마치고, 앉아 있는 사람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 한 사람이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마이크 스위치를 누르는 것이 보였다. 기전본부 본부장인 박 상무였다.
“발표 잘 들었습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도 지하 2, 3층 주차장은 거의 반도 차지 않아 항상 아깝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좋은 곳에 착안한 것 같군요. 하나 우려되는 점이 있는데, 지금도 많은 식물공장 기업이 있습니다. 보통 대규모로 공장을 구축하여 설비투자 대비 매출액을 높이도록 계획하죠. 그런 공장과 비교하면 시설 투자비가 높고 운영 효율이 떨어지는 거 아닌가요?”
다행히 검토 단계에서 짚어본 문제다. 박 상무도 이 정도는 충분히 파악할 수 있을 터인데, 일부러 사업의 장점을 한 번 더 어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려는 것 같다. 내 아이디어를 밀어주려는 것이다.
“맞습니다. 지하주차장에 지을 경우, 공간적 제약도 많고 규모 면에서 불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두 가지 강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미 골조가 완성되어 있는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공장을 신설하는 것이라서, 추가로 건축마감과 전기설비만 구축하면 되기에 그만큼 초기 투자비가 낮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장점은 물류비가 낮다는 것입니다. 경쟁관계에 있는 공장은 대부분 도시에서 멀고 토지대가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도시로 상품을 유통시키기 위한 물류비용이 많이 들죠. 하지만, 저희 사업은 물류비용이 낮아져 운영비를 절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아파트 단지 주민에게 판매하는 비중이 높아지면 물류비용이 들지 않는 매출도 많아집니다. 배부한 자료의 별첨 7번을 봐주시면, 제가 시산한 결과를 보실 수 있습니다.”
“답변 고맙습니다. 잘 준비했네요.”
사회자가 다시 회의실 안을 돌러보며 질문을 재촉했다. 그때 전략기획의 백 상무가 마이크 스위치로 천천히 손을 뻗었다. 예리함 하나는 최고로 손꼽히는 사람으로, 별명이 백 검사다. 허술한 보고서를 가지고 들어가면 임원실에서 무사히 나오기 힘들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아이디어는 좋은 것 같습니다. 다만, 식물공장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사업 아닌가요? 반응이 좋으면 다른 브랜드 아파트도 식물공장을 단지에 적용할 것이고, 결국 저희 공장의 매출을 뺏기게 되어 수익성이 낮아지지 않을까요?”
역시 백 검사다. 나도 고민했던 부분이지만, 대안을 찾지 못해 방치하고 있었다. 지금, 어떤 근거나 사례를 제시하며 반박하기는 힘들다.
“맞습니다. 당사가 식물공장에 대한 원천 기술을 보유한 것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는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하고 그것이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현재는 유휴 공간을 활용하여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여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길게 말했지만,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는 부족하다. 그때 박 상무가 마이크를 켰다.
“충분히 짚어볼 만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나중에 레드오션이 되더라도 브랜드가 끊임없이 혁신을 시도한다는 이미지를 고객에게 주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백 상무가 마이크 쪽으로 몸을 기울였으나, 결국 마이크를 켜지 않았다. 박상무가 선배라서 말을 아끼는 듯했다. 회의실 안이 다시 적막해지자, 사회자는 잠시 회의실 안을 둘러보았다.
“더 질문하실 분 없으십니까? 그럼, 이것으로 3팀 발표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10분 휴식 후 4팀 발표 시작하겠습니다.”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잠시 그 자리에 서서 물을 마시며 발표 동안의 상황을 복기해 본다. 이런 자리는 대개 반응이 약하다. 더군다나, 사장님까지 참석한 자리에서는 사람들이 반응을 보이거나 질문하는 것에 신중하다.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발표 후에 들린 박수 소리는 다른 팀보다 컸던 것처럼 느껴졌다. 나쁘지 않았다. 회의실 벽 쪽에 있는 발표자 대기석으로 돌아가 앉았다. 다음은 전미 씨와 남 과장 팀이다. 전미 씨가 무대 옆 테이블에 설치된 노트북으로 발표 자료를 미리 열어보고 있었다.
“이 과장님, 고생 많으셨어요. 아이디어도 발표도 좋던데요?”
옆 자리에 앉아 있던 남 과장이 말을 걸어왔다. 남 과장은 주택 쪽에서는 일 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고마워. 잘 한 건지 모르겠다. 근데, 다음 차례 아니야? 너무 여유로운데?”
남 과장은 발표 자료도 보지 않고 태연히 커피를 마시고 있다.
“아, 발표자는 전미 씨예요. 아이디어에 참신함이 없어서 발표라도 참신하게 해 보려고요.”
농담처럼 얘기하지만, 중요한 자리에 직접 나서지 않는 남 과장도, 사장님까지 참석하는 자리에서 선뜻 발표를 맡은 전미 씨도 대단하다.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는 전미 씨 표정에서도 긴장이라는 단어는 찾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