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인생연금' 제7화
잠시 후, 사람들이 우르르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사회자가 몇 마디 안내를 하고, 마이크는 전미 씨에게 넘어갔다. 스크린에는 ‘콘크리트 디스토피아’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전미 씨의 발표가 시작됐다.
“아파트는 누구나 꿈꾸는 유토피아였습니다. 아파트 한 채 갖는 것이 꿈이었고, 그 꿈과 함께 저희 회사는 성장해 왔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자기 집이 안전성 및 편의성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받으면 현수막을 걸어 축하하는 이상한 나라라 되었습니다. 저희 회사도 ‘경축. 안전진단 통과’ 현수막을 많이 걸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 가요? 1인 세대는 엄청나게 늘었지만, 과거에 지어진 3,4인가족 기준의 아파트가 넘쳐 납니다. 공사비 급등, 용적률 상한으로 인해 일반 분양으로 비용을 충당하는 재건축도 하기 어렵습니다. 아파트는 유토피아를 꿈꾸고 구입한 분들에게, 시간이 지나면 팔지도 재건축하지도 못하고 불편과 불안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디스토피아를 안겨줄 뿐입니다.”
저건 누구 아이디어일까? 아파트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임원들도 앉아 있는 자리에서, 그들이 팔았던 것을 ‘디스토피아’라고 부르는 것은 위험하다. 하지만, 강한 충격을 주면 집중을 끌어낼 수 있다. 일단 기억에 남기는 전략. 전미 씨 아이디어가 아닐까?
“좀 더 좋은 평면, 좀 더 세련된 디자인, 좀 더 좋은 공용시설 같은 것으로는 좀 더 좋은 매출밖에 기대할 수 없습니다. 소유하는 분에게 새로운 이득을 안겨 드릴 수 있어야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고, 새로운 단계로 도약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아파트 브랜드, 비욘드 100을 제안합니다.”
사장님과 임원들의 얼굴을 하나씩 쳐다보았다. 착각일지 모르지만 어둠 속에서 사장님의 옅은 미소가 보이는 것 같았다.
“비욘드 100은 두 가지 중의적인 뜻이 있습니다. 첫 째는 100년 넘게 재건축 없이 살 수 있는 아파트라는 뜻이고, 두 번째는 100세 시대에 본인뿐만 아니라 그 자녀들도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아파트란 뜻입니다. 지금부터 아이디어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전미 씨 팀 아이디어는 재건축 없이 인생의 라이프사이클에 따라 내부를 바꿀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큰 평형의 아파트를 사서 아이와 함께 살던 부부는, 아이가 성년이 되어 따로 살게 되면 리모델링을 통해 두 개 또는 세 개의 집으로 나눌 수 있게 하고, 그중 일부를 임대하여 임대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노후의 생활자금 확보를 위해 주택연금에 가입하면 집은 은행 것이 되지만, 비욘드 100은 안정적인 노후 생활자금을 창출하면서도 나중에는 자녀에게 상속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둘이서 준비한 것 치고는 디테일의 완성도가 높아 놀라웠고, 중간중간에 다소 공격적인, 파격적인 멘트로 청중의 집중을 끌어내는 전미 씨의 발표도 놀라웠다,
“이상으로,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회의실 내에 불이 켜졌다.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뒤늦게 소리는 거의 없는 박수가 나왔다.
“그럼, 지금부터 질의응답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질문 있으신 분은 부탁드립니다.”
사회자가 말을 마치고, 앉아 있는 사람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논란의 여지가 많은 아이디어여서 질문 없이 끝날 것 같진 않았다. 그때 한 임원의 마이크에 불빛이 켜졌다. 또다시 백 상무다.
“예전에도 세대구분형 아파트라는 게 있었죠? 그런데 시장에 크게 어필하지 못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비욘드 100은 왜 다를 것이라 생각하죠?”
이미 예상했던 질문인 것 같다. 전미 씨가 바로 질문에 대답했다.
“세대구분형 아파트는 애초에 두 개의 현관을 가진 두 개의 공간을 한 채의 집으로 분양한 것입니다. 육아를 도와주는 부모와 같이 살거나, 재택근무나 수험생을 위한 공간으로 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잘 팔렸지만, 제대로 된 하나의 집을 원하던 사람들에게는 외면받았죠. 저희 아이디어는 구매 시에는 온전한 한 채의 집이었던 것을 언제든 원하는 시점에 리모델링을 통해 2세대, 3세대로 나눌 수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그러기 위해 평면을 자유롭게 변경 가능한 라멘조를 적용하고, 배관 등을 쉽게 변경 가능하도록 설명드렸던 것과 같은 설계 디테일을 적용한 것입니다. 지금은 관련 법도 개정이 되어,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대답이 끝나자, 다시 백상무가 질문을 이어갔다.
“리모델링을 가능하게 하는 설계요소들이 공사비를 상승시킬 텐데, 소비자들이 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 미래의 리모델링을 보고 돈을 더 낼까요?”
이번에도 잠시의 망설임 없이 대답이 나왔다.
“바로 그 점이 비욘드 100의 차별화 포인트입니다. 장수명 아파트로 인증받을 수 있는 설계를 적용하여, 용적률 상향을 얻어낼 수 있고, 이를 통해 같은 부지에 보다 많은 세대를 건설하여 분양가를 낮출 수 있습니다. 또한, 지금은 환경을 소비에 있어서 중요한 판단기준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높습니다. 인류생존연금 가입자의 증가만 봐도 이 추세는 명확합니다. 이런 소비자에게는 잘 지은 집을 오래 사용함으로써 자원 소비를 최소화한다는 가치는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가 될 것으로 믿습니다.”
백상무는 전미 씨 대답에 별로 수긍하지 못하는 듯한 표정이다. 바로 마이크를 켰다.
“미국, 일본, 프랑스, 독일 등의 평균 주택 수명이 50년 이상인 것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의 주택 수명이 너무 짧은 것은 사실입니다. 주택 수명을 늘리면 철거 및 재건축 횟수가 줄고 온실가스와 건설 폐기물도 감소하니, ESG 경영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죠.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장수명 주택 1등급 인증받은 게 몇 건이나 되는지 아나요?”
“단 한 건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요. 2012년에 제도가 시행되었는데, 하나도 없죠. 왜 없겠습니까? 100년 내구성을 가지려면 공사비가 20~30퍼센트 더 들어가지만 소비자는 그만큼의 가치를 못 느낀다는 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아파트를 사는 사람은 평생 그 집에 사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싸게 사서 좋은 값에 팔아 큰돈을 버는 게 목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하지만, 노후에 세대를 분리하여 30년간 수익을 얻고, 자녀에게 물려주어 그 자녀들이 또 몇 십 년 동안 거주하거나 수익을 얻으려면 아파트의 내구성이 좋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장수명 주택이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건물을 사회적 자본이나 유산이 아니라 금융상품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증권처럼 시세에 따라 거래하는 것이 중요하지 건축적인 질이 중요하지 않기에, 서울은 ‘경제적’으로 지어진 콘크리트 덩어리로 뒤덮인 디스토피아가 되어 가고 있고, 이것이 서울의 도시로서의 매력을 감소시키고 있다.
전미 씨 팀의 아이디어는 사회 트렌드를 잘 반영한 좋은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 적어도 건물 한 동을 지어서 분양까지 해야 한다. 그만큼 실패했을 때의 타격도 크다. 이런 요소는 분명 심사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마지막 조까지 발표가 끝났다. 사회자가 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잡았다.
“간단히 향후 일정을 설명드리겠습니다. 지금부터 30분 후에 임직원 투표는 마감됩니다. 마감 시간이 되면 자동으로 집계가 되어 투표하신 페이지에 결과가 발표될 예정입니다. 그리고, 사업성 평가 결과는 1주일 후, 그러니까 다음 주 금요일에 발표될 예정이고, 역시 사내 시스템으로 결과가 발표될 예정입니다. 발표해 주신 다섯 팀, 그리고 긴 시간 경청해 주신 임직원 여러분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상으로 공모전 최종 발표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드디어 끝났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정 대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이 과장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발표 좋던데요?”
“그래? 다행이다. 모든 팀 발표 다 본거야? 어때?”
“다 봤죠. 제가 보기엔 이 과장님 아이디어가 부담 없이 추진할 수 있어서 가능성이 높을 것 같아요. 남 과장 팀은 디테일한 설계, 법규 검토까지 언제 그렇게 준비했는지 놀라웠고요. 좀 긴장하셔야 할 것 같던데요?” 내 생각도 같았다. 남 과장 팀이 가장 유력한 경쟁자일 것이다. 자리에 앉아 일단은 투표를 마쳤다. 아직 15분이 남았다. 그때, 전미 씨도 자리로 돌아왔다.
“전미 씨. 수고했어. 발표가 아주 인상적이던데? 불닭볶음면 처음 먹었을 때 느낌 같았어”
“감사합니다. 전 과장님 발표가 더 인상적이던데요? 평양냉면 같다고 해야 하나?”
“그거 내 발표가 밍밍했다는 거 아냐?”
“아니요, 아니요. 특별히 튀는 연출, 소재 없이도 깊은 맛이 났다는 거죠. 아니, 제가 감히 평가할 입장이 아닌데….”
“아니야. 솔직하게 말해주니 좋네. 암튼 기다려 보자고.”
드디어 시간이 되었다. 사내 정보공유 시스템의 공모전 페이지에 새로운 알림이 하나 있다는 빨간 ‘1’ 숫자 배지가 제목 옆에 떴다. 이제 클릭 한 번만 하면 결과가 보일 것이다.
마우스를 누르려는 순간, 전미 씨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큰 소리로 말했다.
“축하합니다! 이 과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