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오염을 입는다.

소설 '인생연금' 제8화

by 이창동




“전미 씨, 그새 마음 바꾼 거 아니지?”
“제 마음을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아직도 걱정되세요? 전 팀장님과 쭉 같이 일하고 싶습니다.”
“하하, 그래. 알았어”
강 팀장님은 웃으며 말했지만, 목소리는 웃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목요일 오후 2시. 회의실에 팀원들이 모두 모였다. 가끔 하는 의례적인 업무 점검 회의였지만, 지난주 금요일에 신사업 공모전의 최종 결과 발표도 있었기에, 팀장님은 공모전 이야기를 하며 회의를 시작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는 이 과장님 표정은 평온해 보였다. 평소에도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 사람이긴 하지만, 최종 결과가 발표된 지난주 금요일 저녁에 같이 술을 마셨을 때도 결과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기색은 없었다. 그 술자리도 공모전 결과를 두고 위로하는 자리가 아니라, 우연히 야근을 같이 하던 김 과장님이 나와 이 과장님에게 저녁이나 같이 하자고 말을 걸어 갖게 된 자리였다.
“이 과장님, 정말 아쉽게 됐어요. 전 이 과장님이 일 등 할 걸로 예상했었거든요. 안 그래? 정 대리도 그렇게 생각한 거 아니야?”
회사 근처의 아담한 이자카야. 오픈 키친에서 야키토리를 굽는 모습을 볼 수 있고, 구워질 때의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는 것이 보여 정취가 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긴 했는데, 임직원 투표 점수 차가 작아서 아슬아슬하다는 생각은 들었어요.”
“다들 좋게 봐줘서 고마워. 근데, 남 과장 아이디어도 충분히 일 등 할만한 거야.”
이 과장님은 남 일처럼 말하더니, 맛있게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키고 닭꼬치를 집어 먹었다.
“그래도 아쉽긴 해요. 사업성 평가에서 뒤지는 바람에 역전된 거잖아요.”
“정 대리 말이 맞아요. 사업성 평가란 게 객관적인 것처럼 보여도 사실 문제가 많죠. 매출 예측만 해도 그래요. 비욘드 100인가요? 그게 그 가격에 그렇게 많이 분양될 거라는 걸 어떻게 판단할 수 있겠어요? 물론 회계법인은 나름 과학적인 데이터와 툴로 분석하겠지만.”
나도 김 과장님과 같은 생각이라 고개를 끄덕이며 이 과장님을 봤다. 여전히 평온한 표정으로 안주를 음미하고 있었다.
“그래. 그건 맞아. 내 최애 음식이 초밥이거든? 알지? 내가 한 접시 2천 원 하는 동네 회전초밥부터, 일본에 미국 대통령이 오면 만찬 때 불려 간다는 초밥 장인의 한 점에 몇 만 원 하는 초밥까지 다 먹어 봤는데, 초밥 맛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게 뭔지 알아?”
“당연히 횟감의 질 아닌가요?”
김 과장님이 말했다. 이 과장님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실, 어느 수준 이상의 집이면, 횟감은 거기서 거기야. 소고기도 그렇잖아. 최상급으로 가면 사실 차이를 알기 힘들어. 초밥 맛의 가장 큰 차이는 밥 부분, 일본에서는 ‘샤리’라고 하는데, 거기에 들어가는 식초와 설탕, 소금, 밥의 비율이야. 근데, 이건 굉장히 주관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지. 모든 사람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배합이란 건 없다고 생각해. 사실 이런 주관적인 게 결과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은 거야.”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르겠기도 하고… 그래서 별로 억울하지 않다, 뭐 그런 거죠?”
김 과장님이 입가로 가져가던 소주잔을 멈추고 개운하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고, 이 과장님은 옅은 미소를 짓는 걸로 그 말에 동의했다. 이 과장님의 좌우명은 아마 ‘드라이클리닝’ 일 것이다. 매사에 감정을 배제하고 ‘드라이’하게 처신하고, 뒤끝을 남기거나 남 탓을 하지 않고 ‘클린’하게 마무리한다.

분위기가 애매하게 흘러가는 걸 보니, 술자리의 막내인 내가 분위기를 바꿀 타이밍이 온 것 같다.
“자, 아무튼 이 과장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일개 대리가 평가의 공정성은 알 수 없지만,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건 더 마셔야 한다는 것뿐이네요. 사장님, 여기 소주 한 병 주세요!”



강 팀장님이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에 대해 팀원들의 업무를 점검하고 있다.
“베트남 업체 협상 건 말인데, 정 대리는 담당이니 가야 하고. 이번엔 전미 씨와 같이 다녀오는 게 어때? 이번 기회에 정 대리에게 해외 업무 배우면 좋을 것 같아. 전미 씨 괜찮겠어?”
“네, 저야 좋죠. 인생연금 때문에 해외여행도 못 가는데… 아니, 놀러 가겠다는 게 아니고요.”
“알았어. 현지 분위기와 문화를 파악하는 것도 필요해. 일 잘 처리하고 시간 여유 있으면 구경도 좀 하고 그래. 그런데 인생연금 때문에? 여행 관련 제약도 있었나?”
“네, 개인적인 해외여행은 일 년에 한 번으로 제한돼 있어요. 기업의 출장이나 정부 관련 행사 참석 등 특별한 경우는 상관없지만요.”
“그건 왜지? 항공기 운행도 온난화에 영향을 주나?”
역시 팀장님은 인생연금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 항공기 탑승에 대한 제한도 제도 시행에 대한 전국민적 대립이 있던 시절에 큰 쟁점이 되었던 사항이다. 연금 가입을 포기한 사람들이 포기 사유로 가장 많이 언급한 규제이기도 했다.
“사람의 활동으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중 2퍼센트 정도가 항공기 운항으로 배출된대요. 더군다나, 비행기는 질소산화물을 배출해서 비행운을 만드는데, 이 구름이 주변 온도도 높이고, 지표면에서 발생하는 복사에너지를 다시 지구로 반사시켜 지구를 뜨겁게 만든다고 하네요.”
“그래? 그건 몰랐네. 암튼 준비 잘하고.”

지난주 금요일, 공모전 최종 우승팀이 발표된 후에 강 팀장이 전미 씨를 회의실로 불렀다고 한다. 전미 씨 팀이 일등을 했으니, 신사업을 맡을 조직에 갈 생각이 있는지 물은 것이다. 팀장님은 주말 동안 고민해 보고 대답해 달라고 했지만, 전미 씨는 그 자리에서 팀에 남겠다고 즉답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팀장님이 전미 씨를 대하는 태도가 굉장히 좋아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못마땅하던 인생연금 가입자인데도 개의치 않을 정도로 말이다.
“암튼, 공모전 결과는…”
갑자기 말이 끊겼다. 팀장님을 보니, 몇 번이나 입술을 떼고 입을 움직이는 듯했지만,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러다 겨우 힘들게 말을 이어갔다.
“나도 안타까워. 아니, 전미 씨가 잘 된 건 좋은데, 이 과장 아이디어도 좋아서 아쉽다고. 이 과장은 서운해 말고. 준비하면서 많이 생각하고 고민했잖아? 그런 경험은 손목에 좋은 시계 하나 차는 것 같은 거라고. 평소에는 옷소매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어쩌다 사람들 앞에서 손을 들 때 살짝 나타나 반짝거리는 거야.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다들 무슨 일이든 적극적으로 나서 봐. 야구에서도 더그아웃에 가만히 앉아 포수가 뭘 하는지 오래 보고 있는다고 포수를 잘할 수 있는 게 아냐. 기회가 있으면 뛰어나가 포수 자리에 앉아서 날아오는 공에도 맞아보고, 달려오는 상대팀 선수를 온몸으로 막아보고 해야 실력이 느는 거야. 그럴 때 생긴 멍이 다 나중에 힘이 되는 거고. 자꾸 그런 일을 해 봐야 어디 가든 잘할 수 있어. 언제 어떤 자리로 갈지 모르는 게 회사원이잖아.”

뭔가 이상하다. 저 낯선 자상함은 뭐지? 남의 집 안방에 신발 신고 들어오는 듯한 평소의 거침없는 말투가 아니었다. 말을 마친 강 팀장님이 나가고, 팀원들도 그 뒤를 따라 나갔다. 나가려는 전미 씨를 불러 세웠다. 출장에 관해 얘기하고 싶었다.
“정 대리님, 공모전 말이에요. 그냥 5개 아이디어 모두 추진하면 되지 않나요? 다 좋은 것 같은데…”
“전미 씨 말이 맞아. 그런데, 우리 회사는 말로는 혁신 혁신 그러지만 실제 의사결정은 보수적이야. 혁신의 주성분은 투자와 실패할 자유라고 하던데, 우리 회사는 둘 다 부족하지. 난 하나라도 제대로 진행되면 다행이라고 생각해.”
“그러게요. 그나저나, 출장 가면 자유시간 좀 있나요?”
일 얘기를 하려고 전미 씨를 불렀는데, 관심은 딴 곳에 있는 것 같다. 하긴, 첫 출장은 설렐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일단, 일이 어떻게 될지 가 봐야 알 수 있긴 한데, 비행기가 밤 12시에 현지에서 출발하니, 마지막 날 저녁시간에 몇 시간은 자유롭게 쓸 수 있을 거야.”
“와, 신난다. 친환경 인증된 옷 사려면 거의 10~20퍼센트 더 비싸게 사야 하잖아요? 너무한 것 같아요. 가끔 이거다! 싶은 예쁜 옷 발견했는데 친환경 인증 태그가 붙어 있지 않으면 당장 인생연금에서 탈퇴하고 싶다니까요. 가면 마음 편하게 그동안 못 샀던 옷 좀 사려구요.”
“그래. 난 외국도 빨리 인생연금 같은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생각해. 전 세계 폐수의 20퍼센트, 온실가스의 10퍼센트 정도가 옷 때문에 발생하거든. 우리 아버지가 어렸을 때만 해도 양말에 구멍 나면 기워 신고, 헌 옷은 걸레로 만들어 쓰고 그랬다고 하는데, 요즘은 그런 집 없을 걸? 우리나라가 세계 5위의 중고의류 수출국이고 수출량이 매년 30만 톤을 넘는다고 하니, 그만큼의 옷이 버려진다는 거야. 난 인생연금 가입 후에 확실히 옷도 덜 사고 오래 입게 된 것 같아 좋더라고. 환경 인증 옷은 비싸지만 옷 값은 오히려 덜 나가는 것 같아”
“그렇죠. 저도 인생연금 가입자를 위한 안내서에서 봤어요. 청바지 한 벌 만드는데 11,000리터, 티셔츠 한 장 만드는 데 2,700리터의 물이 필요하다는 거 보고, 가입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그래도 예쁜 옷 볼 때마다 탈퇴하고 싶어 져요.”
“그래도 우리 같은 가입자들 덕분에 환경호르몬도 많이 줄었어. 옷 염색할 때 쓰는 화학물질이 강과 바다로 흘러가 노닐페놀이라는 환경호르몬을 만드는데, 요즘은 그 수치가 많이 낮아졌잖아. 친환경 인증 옷은 목화 같은 원재료 재배부터 염색까지 환경에 좋은 방법만 쓰니까. 우리가 좋은 일 하는 거야”
“좋은 일 많이 했으니까 출장 가서는 마음 편하게 나쁜 일 해도 되겠죠?”
“그래. 미팅할 업체 리스트와 주요 협의사항 정리한 자료는 내가 보내줄 테니까 전미 씨가 출장일정표 만들어봐. 이동시간은 좀 여유롭게 잡고. 현지 교통사정 좋지 않으니까.”

그때 강 팀장님이 서류 파일 네다섯 권을 들고 들어왔다.
“정 대리, 이거 구매팀에게 받은 베트남 업체 자료야, 가기 전에 찬찬히 살펴봐.”
“네, 알겠습니다.”
전미 씨가 팀장님이 테이블 위에 놓고 간 파일을 하나씩 들어 올리며 보고 있다.
“와, 자료 많네요. 이거 다 봐야 하는 거죠? 근데 아직도 종이로 된 자료가 남아 있네요?”
“업체 중 몇 개 회사와는 오랫동안 거래가 없었거든. 최근에 신소재를 개발해서 몇 년 만에 거래를 다시 트려는 곳이라 데이터베이스 구축 전의 종이 자료밖에 없었을 거야.”
“어, 근데 이건 뭐죠?”
전미 씨는 파일과 파일 사이에 끼어 있던 종이를 발견하고는 손에 들어 들여다보고 있다. 옆으로 다가가서 종이를 살펴보았다. 종이에는 공모전 최종 발표 다섯 팀의 구성원 이름, 아이디어 제목과 간략한 분석, 그리고 50점을 기준으로 한 임직원 투표 점수가 정리되어 있었다. 처음 보는 자료였다. 그런데, 이 과장님 팀과 남 과장 팀에 동그라미가 쳐져 있고, 두 팀을 연결한 선 위에는 볼펜으로 7.1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다.
“우리 본부에는 배부된 적 없는 자료인데… 근데, 7.1은 뭐지?”
“그건 사업성 평가 때 저희 팀과 이 과장님 팀과의 점수차예요. 결과가 의외여서 심사 결과를 분석해 봐서 기억나요. 강 팀장님이 메모한 거 아닐까요?”

맞다. 사업성 평가에서 전미 씨 팀이 7.1점을 더 얻어 결과가 역전된 것이다. 그런데, 강 팀장님은 사무실에서 볼펜을 쓰지 않는다. 무슨 애착이 있는지 몰라도 스테들러의 마스 100 연필만 대여섯 자루 책상 위에 두고 쓴다. 출근하면 칼로 그 연필을 깎는 게 강 팀장님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이다. 종이를 보다 보니, 아래쪽에 ‘주택기획팀 주동국 2036.05.26’이라고 인쇄되어 있다. 회사 프린터로 출력하면 정보 보안 프로그램이 출력한 사람의 정보를 자동으로 인쇄되게 되어 있다. 달력을 찾아보니 이 날짜는 5개 팀이 최종 PT를 한 다음 주 월요일이었다.
“이거 주택 쪽에서 만든 것 같은데? 여기 봐.”
“그러네요? 이 분 주택기획팀 팀장님 아닌가요? 주택 쪽 자료를 왜 강 팀장님이 가지고 계시죠?”
어색하다. 종이로 출력하는 일이 거의 없는 사무실에서 이 정도 자료가 출력된 것 자체가 이상하다. 보다 보니 또 하나 눈에 들어오는 게 있다. 이 과장님 이름 위에 찍힌 희미한 회색 점들. 볼펜이 아니라 연필 자국이다. 익숙한 점이다. 강 팀장님이 서류를 보면서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생각하면서 연필로 마음에 걸리는 부분을 꾹꾹 누를 때 생기는 자국이다. 강 팀장님이 허술한 사람이 아닌데 이런 종이가 파일들 사이에 끼어 돌아다니는 것도 어색하다.

“두 분이 동기잖아? 강 팀장님이 최종 발표회 후에 주택 쪽 분위기가 궁금해서 달라고 한 거겠지. 전미 씨, 이건 내가 팀장님께 돌려 드릴게. 자, 이제 출장 얘기 좀 하자.”
순간 트래픽이 많아져 잠시 얼어붙은 동영상처럼 전미 씨의 움직임이 멈췄다. 아니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말을 걸려 하자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말을 꺼냈다.
“정 대리님, 회사에서 제휴한 호텔이 있나요? 아님 제가 마음에 드는 호텔 잡아도 되는 건가요?”
전미 씨는 출장에 관해 몇 가지를 더 확인하고 회의실을 나갔다.


혼자 회의실에 남아 다시 메모를 손에 들었다. 주 팀장이 굳이 7.1점을 정해서 준 것은 이 일을 시킨 사람에게 미리 숫자를 말해서 자신이 이 일을 처리했다는 것을 확실하게 각인시키려는 의도일 것이다. 이 메모는 심사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강 팀장님은 의도를 가지고 이 종이를 흘렸을 것이 분명하다.


많은 것들이 영향을 주고받기에 때론 바른 것이 좋은 것이 아닐 수도 있는 직장생활에서, 항상 올바르고 합리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이 가장 쉽게 판단하는 요령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하지만 이번 일은 다르다. 문제가 불거지면 누군가는 징계를 받든 회사를 그만두든 해야 할 것이다. 문제를 제기한 사람도 반대편 사람에게는 껄끄러운 존재가 될 것이고 앞으로의 직장생활에서 불이익을 받게 될 수도 있다. 사실, 신사업은 어느 쪽이 성공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알 수 없는 것을 위해 여러 사람의 인생이 바뀔 것이 확실한 일을 하는 것이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만약에 내가 움직여서 결과가 바뀌고 이 과장님 프로젝트가 추진될 경우에도, 이 과장님이 신사업을 담당하지 않더라도 분명 이 과장님을 적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옳은 일’을 할 때의 부작용 아닐까? 부작용이 걱정된다고 약을 먹지 않을 순 없다.


그런데, 이번에 약을 먹는다고 이런 병이 완치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