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거짓말

소설 '인생연금' 제4화

by 이창동

드문드문 아직도 벚꽃이 피어 있는 것이 내려다 보인다. 피어있다기보다는 차마 떠날 준비를 끝내지 못한 꽃들이 남아 있는 것이겠지만. 날씨는 이른 아침에도 카디건을 입지 않고 옥상에 올라와도 싸늘하지 않을 만큼 따뜻하고, 햇살은 눈이 찡그려지지 않을 만큼 적당히 눈부시다. 옥상에 올라올 때마다 느끼는 것은 회사생활 하면서 느는 것은 뱃살과 담배밖에 없다는 것이다.

“강팀!”
담배에 불을 붙이려는 찰나, 주 팀장이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주택사업본부에 근무하고 있는 주 팀장과는 인연이 깊다. 입사 동기이면서 학연, 지연, 그리고 흡연까지. 전자담배 흡연자도 급격하게 줄고 있는 요즘 같은 시대에 아직도 불을 붙이는 연초를 고수하고 있는 것도 같다. 그래서인지 죽도 잘 맞고, 같이 술도 자주 마시는 사이다.
“주팀, 바빠 죽겠는데 왜 옥상으로 부르고 난리야.”
“너네 팀 한가한 거, 경쟁사까지 소문 다 났어.”
언제나처럼 쓸데없는 농담을 주고받는다. 회사를 오래 다니고 자리가 높아질수록 이렇게 허물없이, 쓸데없이, 이해타산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 같다.

“한가하니까 너네 팀 애들이 두 명이나 공모전에 참가한 거 아니냐.”
틀린 말은 아니다. 처음에는 소극적이었던 전미 씨도 주택본부 남 과장과 팀을 이루어 공모전에 참가하고 있다.
“한가해서가 아니라 팀장 닮아서 열정이 넘치는 거지. 바쁘니까 용건이나 빨리 말해. 맨날 뜬구름 잡는 계획만 세우는 너네 기획팀과 달리 우린 할 일이 많다고.”


주 팀장은 잠시 옥상 난간 너머로 거리를 내려다보더니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강팀, 우리 전무님께서 이번 공모전 굉장히 불편해하시는 건 알아?”
주 팀장이 말하는 전무는 당연히 탁 전무일 것이다. 회사에서는 타노스 전무라 불린다. 본인이 본부장을 맡고 있는 주택사업본부 외의 본부는 돈도 못 벌면서 인원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측근들과의 술자리에서는 사장이 되면 인원을 반으로 줄이겠다고 스스럼없이 말한다고 한다. 탁 전무는 본인의 야망이 실현되면 타노스처럼 핑거스냅 한 번으로 사원의 반을 가루로 만들 것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지금도 주택본부가 캐시카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데, 괜히 신사업이다 혁신이다 하면서 변화가 생기는 게 싫은 거잖아.”
“강팀 말이 맞아. 임원은 신사업 같은 거 싫어해. 임시직이거든. 편의점 알바와 다를 바 없지. 편의점 알바가 진열장 구성 새롭게 바꾸는 거 봤어? 성공해서 매출이 극적으로 늘면 정직원이 될 수도 있지만 실패하면 그냥 잘리는 거야.”
“주팀, 서론이 길다. 그래서? 전무님 얘기는 왜 하는 거야?”
“거 성미는 여전하네. 이제 팀장 4년 차면 진득하게 경청할 줄도 알아야지. 아니… 이번에 예선 통과한 다섯 팀이 정해졌잖아? 이 과장하고 전미 씨 두 명이나 올라갔으니 잘 알 거고.”
“어, 당연하지. 둘 중 하나는 되지 않겠어? 잘 돼야 할 텐데 말이야.”
“그거 진심이야? 만약 이 과장이 1등이라도 해서 신사업팀으로 빠져나가면 어쩌려고. 이제 강 팀장도 상무 달고 하려면 확실한 팀장 후계자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그야 그렇지. 근데 내가 상무 된다는 보장도, 이 과장이 우승한다는 보장도 없는데 지금 고민할 필요 없잖아?.”

사실, 주 팀장이 말한 걱정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이 과장이 빠질 경우, 과장급에서 팀장을 시킬만한 적임자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얼마 전에 이 과장을 카페로 불러내서 공모전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들어 보기까지 했었다.
“틀린 말은 아니네. 근데, 이 과장이 낸 아이디어를 전무님이 불편해하셔.”
“아이디어를? 참신하고 좋던데, 불편할 게 뭐 있어?”
주팀은 내 반응이 답답한지, 피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버리더니, 새 담배를 꺼내 물었다.
“좋으니까 문제지. 이 과장 아이템은 기전본부가 지원하든 주관하든 해야 하는 사업이잖아? 그렇지 않아도 몇 년 전부터 몸집을 키우고 있는데, 만약 이 과장 아이디어가 1등이라도 해서 그 사업이 잘 되면 기세가 더 커지겠지. 전무님은 예전부터 주택시장 규모가 점점 줄어드는 것에 위기감이 크셨는데, 이러다가 정말 기전본부에 따라 잡히는 게 아닌지 걱정하셔. 그렇게 되면… 본인의 다음 자리도 어떻게 될지 모르지”
10여 년 전부터 기전본부, 아니 그 당시의 기전부문은 단순히 건물의 전기, 설비 공사를 담당하는 부서에서 벗어나기 위해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첨단 물류센터, 데이터센터, 아파트 외벽 일체형 태양광 발전 사업 같은 새로운 사업을 발굴하고, 자체적으로 지하 주차장의 어디에 전기차를 세워도 천정을 통해 충전기가 이동하여 충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몇 가지 사업이 성공하고, 여러 자회사들이 생겨나자 5년 전에는 본부로 격상되었다. 탁 전무가 우려할만한 기세인 것은 틀림없었다.

“그래, 그건 알겠다. 근데 그 얘기를 나한테 하는 이유가 뭐야?”
“강팀, 내가 탁 전무에게 네 얘기 엄청 좋게, 많이 하는 거 알지? 내가 탁 전무님이랑 골프 자리도 만들어 줬잖아. “
“알지. 그래서 뭐. 주팀, 나한테 부탁할 일이라도 있어?”
“음… 사실 내 부탁이 아니라 전무님 부탁이라고 해야 하는 거지. 만약에 말이야….”
“만약에?”
“좀 어려운 부탁이긴 한데…이 과장 아이디어가 우승할 가능성이 보이면, 강팀이 좀 나서 줬으면 해서. 회계법인 쪽에 매형이 계시지 않나?”
이제야 주 팀장이 하려는 얘기가 정리가 되었다. 최종 발표에 참가할 다섯 팀은 상세한 사업계획을 다음 달에 발표하게 되어 있고, 발표 직후에 임원 투표 및 직원 투표가 끝나면 어느 정도 우승 후보자의 윤곽이 보일 것이다. 하지만, 평가 중 50퍼센트를 차지하는 사업성 부분은 최종 발표 직전에 제출될 사업계획서를 외부 회계법인이 별도로 심사하게 되어 있다. 이해관계가 있는 내부 조직을 배제함으로써 공정성을 확보하고, 회계법인의 사업성 분석 툴과 데이터를 활용하여 보다 전문적인 심사를 하기 위해서다. 탁 전무는 나에게 그 부분에 개입하길 원하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긴 시간 생각에 잠겨 있자, 주 팀장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
“잘 생각해 봐. 껄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기회야, 기회. 강팀도 이제 임원 돼야지. 그리고, 중간에 낀 내 입장도 생각해 줘. 강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탁 전무는 괜히 타노스로 불리는 게 아니다. 그만큼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며, 사장 자리에 가장 가까이 다가서 있는 사람이다. 그에게 밉보인다는 것은 많은 기회를 날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건 알지만….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좀 생각해 볼 게.”
“강팀, 이건 생각해보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야. 생존의 문제라고.”
“알았다고. 근데 발표 후의 투표에서 이 과장이 상위에 못 들 수도 있는 거잖아?”
“물론 그렇긴 하지. 근데 만약 우려하고 있는 사태가 되면 바로 움직일 수 있도록 밑밥은 깔아 놔야 할 거 아니야. 아까도 말했지만 이건 기회라고, 기회.”
벚꽃이 지고 파릇한 잎들이 펼쳐지기 시작한 화창한 날, 푸른 하늘 아래서 나누기엔 칙칙한 이야기였다.

주 팀장은 해야 할 숙제를 해치운 게 속 시원한지, 한결 밝은 목소리로 말을 했다.
“근데, 강팀도 공모전 아이디어들 봤지? 예상은 했지만 친환경 팔아먹으려는 아이디어가 역시 많더라. 다들 친환경을 적당히 버무리면 장려상이라도 탈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나도 동감이야. 고민이 부족한 것들도 많더라.”
“강팀도 기억하지? 1900년부터 100년간 해수면이 20센티미터 정도 높아졌고, 2100년까지 최악의 시나리오를 적용하면 80센티미터 이상 높아질 거라고 난리였잖아. 기후 난민이 몇 억 명 생길 거라느니, 그 사람들 받아주려면 선진국도 경제적 타격이 있을 거라느니. 근데, 지금 아무 문제 없이 잘 대처하고 별 문제없잖아. 환경운동가들의 거짓말은 정말 지긋지긋해. 그게 다 그런 걸 통해 경제적 이득을 보려는 무리가 과장하는 거라고.
“주팀 말이 맞아. 그러니 그린 워싱이나 녹색 거짓말 같은 말들이 생기는 거지. 환경단체에서는 캘리포니아에서 서울 절반 넓이의 숲이 화재로 없어진 뒤에 지구온난화로 산불이 늘었다고 난리를 쳤지만,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모든 화재를 추적한 사람이 전선 때문에 발생한 화재를 제외하면 오히려 화재 건수는 줄었다고 했지.”
“맞아, 나도 봤어. 그리고 지구 온난화로 식량 위기가 올 거라고 하지만, 아직도 지금보다 25퍼센트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식량을 생산하고 있고. 인간들이 가만있는 게 아니잖아? 어떤 문제든 새로운 기술로 극복해 온 것도 사실이고.”
이런 말을 하면서도 뇌 한구석에는 찜찜함이 깊숙이 묻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환경에 대한 낙관적인 생각들은 변화가 지금처럼 서서히 진행될 것이라는 믿음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 년 동안 기온이 1도 오르고, 해수면이 10센티미터 높아졌었다고 앞으로의 백 년도 그 정도로 변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처럼 나도 지금처럼 세상이 유지될 것이라고 믿고 싶을 뿐이며,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 모르는 일을 위해 노력하기 귀찮을 뿐이다.

“뭔 생각을 그렇게 해? 아까 말한 거 하는 거지? 생각은 나중에 하고 일단 잘 준비해 둬. 나중에 전무님과 자리 한 번 만들게. 먼저 간다”
주 팀장은 내 어깨를 손으로 툭 치더니 천천히 옥상 입구로 걸어갔다. 동기 사이에서도 야망이 크기로 유명한 주 팀장이지만, 이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보니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을 해야 야망에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일까? 또 어떤 일들을 해 왔을까?
새로운 담배를 하나 꺼내 다시 불을 붙였다. 칙칙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마지막까지 온 힘을 다해 피어 있는 벚꽃들의 핑크색이 더 화사하게 느껴진다. 난 벚꽃처럼 누구나가 만나길 고대하고, 헤어질 때 아쉬움을 남기는 사람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아름답게 피어나는 벚꽃을 질투하거나 바람을 불어 꽃을 지게 하지는 않았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이번 한 번만 조금 불편한 일을 하면, 내 자신이 화려한 꽃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회사 이벤트에 약간의 영향을 미치는 거… 그게 뭐 그리 큰 일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