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인생연금' 제11화
여러분 집에는 겨울에 코트나 패딩 아래에 입는 상의가 몇 벌이나 있나요? 요일별로 다른 옷을 입는다고 생각해도 7벌이면 충분합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의 옷장에는 그것보다 훨씬 많은 옷이 있을 겁니다. 저도 그렇고요. 국어사전에서 ’ 사치‘를 찾아보면 ’ 필요 이상의 돈이나 물건을 쓰는 것‘이라고 나옵니다. 우리 모두 ’ 사치‘를 하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누군가는 그럴 겁니다. 이 정도는 사치가 아니지. 사회적 위상도 있는데 옷은 제대로 입어 줘야지. 세상에 원하는 대로 되는 것도 없는데 옷 정도는 원하는 대로 입어도 되지 않나? 새 옷 입으면 기분도 좋고 삶에 활력도 주잖아. 가끔 쇼핑이라도 해야 스트레스가 풀리지. 옷이 내 개성을 표현해 주는 거 아니야? 사치가 아니라 자기 브랜딩을 위한 투자인 거지.
저도 가끔 이런 이유로 옷을 사기에 이런 분들을 비난할 수 없습니다. 이제 소비는 단순히 물건이 없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족, 자기 과시, 동기 부여, 차별화, 스스로에 대한 보상 등 다양한 이유로 하는 것이 되었고, 그것이 하나의 문화로 정착된 시대입니다. SNS를 보면 이런 시대임을 더욱 잘 알 수 있습니다. 가상의 공간에서 타인에게 소비를 과시하고, 소비의 질로 행복의 크기를 상대평가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부러움, 경쟁심 또는 질투를 유발하죠. 기업들은 보다 많은 부러움을 유발하는 사람(인플루엔서)을 이용해서 보다 많은 소비를 만들어내어 돈을 법니다. 이제는 필요해서 소비하는 시대가 아니라 ’ 소비가 필요한 시대‘인 거죠.
하지만, 그 결과가 지금의 지구입니다. 모히토를 한 손에 들고 노을을 즐기는 아름다운 몰디브 해안이 언제 바다에 잠길지 모르는, 폭염으로 인해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여름이 언제 올지 모르는, 언제까지 회를 마음 놓고 먹을 수 있을지 모르는, 커피와 와인을 언제까지 즐길 수 있을지 모르는 그런 지구말입니다.
우리가 이런 걱정을 해야 하는 이유는 인간의 욕망과 과소비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말했던 옷의 소비만 보아도 우리나라는 1년에 30만 톤의 중고의류, 즉 버려진 옷을 수출하는 세계 5위의 중고의류 수출 강국에 되었습니다. 이제는 강제적으로라도 소비에 대한 문화를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몇십 년을 인간의 자율적 판단과 이타심을 믿고 기다렸지만 지구 환경은 개선된 것은 없지 않나요? 이런 생각에서 이 소설은 시작되었습니다.
이제는 적극적인 행동을 하는 소수의 사람에게 지구의 운명을 맡겨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반강제적으로라도 많은 사람들이 지구를 위한 행동에 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예쁜 옷 한 벌 더 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오래도록 인간의 후손이 생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 인식‘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습니다. 다만, 행동하지 않을 뿐이죠.
어떤 분은 그러실 겁니다. 분리수거도 열심히 하고 있고, 친환경 전기차도 몰고 있고, 에코백도 열심히 들고 다닌다고요. 그 정도로 지구라는 마을의 주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했다고요? 이웃 주민들을 보세요. 그 어느 식물도 그 어떤 동물도 지구에 해로운 행동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람만이 스스럼없이 선량한 이웃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죠.
’인류 생존연금‘이라는 가상의 제도가 실현 가능성도 없고 너무 과격하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과격하다고 생각되셨다면, 여러분에게 인류 생존의 문제가 그만큼 절박하게 느껴지지 않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저도 이 글을 쓰면서 어느 정도의 수준이 개연성이 있으면서도 실질적으로 인류의 생존에 도움이 될까를 고민했었지만, 이 이야기에 나온 정도가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최소한의 수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소설 속에서도 적었던 표현이지만, 눈사태가 자기 책임이 아니라는 천진난만한 눈송이라 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인류의 생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저에게 이 지구를 오래도록 지키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한 사람, 해림이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