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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범준쌤 Feb 04. 2024

제자리걸음만 하는 것 같다면


"당신을 붙잡고 마지막까지 당부하고 싶은 말은 어떤 일이 있어도 당신 자신을 스스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원하지 않는 말을 반복하는 자신을, 좀처럼 달라지지 못하고 제자리걸음만 하는 자신조차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 김윤나, <말의 시나리오>


  저자는 강요가 아닌 수용에서 가장 나다워질 수 있는 용기가 활짝 피어난다고 했다. 나다운 생각, 나다운 말, 나다운 행동, 자기다운 진로는 용기에서 시작되고, 그 용기는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바라봐주고, 환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들, 고통을 만드는 모든 것들 중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분명한 건 자기 자신에게 두 번째 화살을 쏘는 노력을 할 수는 있다. 나를 비난하고, 자책하는 걸 줄일 수는 있다. 만약 또다시 내게 두 번째 화살을 쏘더라도, 그런 자신을 고요하게 인정하며 고통을 바라보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받아들일 수 있다.


  물론 나 자신에게는 도저히 마주할 수 없고, 수용할 수 없는 순간도 있다. 그럴 땐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아야 한다. 혹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존재 그 자체로서 환대해 주는 타인에게 받아들여지는 긍정적 경험이 필요하다. 마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염미정과 구씨의 서사처럼.


구씨 :

"편안하고 좋을 때도 그게 싫어서 깨버리려고 확 마셔. 살만하다~ 싶으면 얼른 확, 미리 매 맞는 거야.

난 행복하지 않습니다. 절대 행복하지 않습니다. 불행했습니다. 그러니까 벌은 조금만 주세요. 제발 조금만.

아침에 일어나서 앉는 게 힘듭니다. 왔던 길을 다섯 걸음 되돌아가는 것도 못할 거 같아서 두고 온 우산을 찾으러가지도 않고  비를 맞고 갔습니다. 다섯 걸음이 힘들어서 비를 쫄딱 맞고 아~ 나는 너무 힘들고, 너무 지쳤습니다. 엄청나게 벌 받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제발 좀."


미정 :

"아유, 당신 왜 이렇게 예쁘냐. 아침마다 찾아오는 사람들한테 그렇게 웃어. 그렇게 환대해."



  이런 타인을 만나는 것이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관계는 우연히 발견되는 행운이라기보다는 함께 만들어가는 행복에 가까우니까. 우선은 한발 한발 어렵게 어렵게, 스스로에게 조금씩 환대해 주는 일상 속 연습을 해보는 건 어떨까. 아침에 일어나서 고통으로 가득 찬 나와 상황을 책망하고 후회하는 대신, 그런 감정에 대해서 쭉 글씨를 휘갈기며 노트에 글을 쓸 수도 있다. 책 <아티스트 웨이>의 모닝 페이지랑 비슷하다. 내 감정을 글로 관찰해 나가는 거다. 아무도 못 알아볼 글씨도 괜찮다. 이건 기록이라기보다는 순간을 온전히 관찰하고 바라보는 거니까.


혹은 세수도 하지 않은 채 동네 5분 산책은 어떨까. 터벅터벅 걸으며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좋아하는 풍경을 5분이라도 아침에 보는 거다. 환대하고 수용하는 건 억지로 자신의 감정을 부정 감정에서 긍정 감정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다. 그저 바라보고, 마주하고, 관찰하고, 알아차리는 것이다. 현재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럴 수 있을 때 우리는 재해석하게 된다. 현재가 바뀌면서 과거도 바뀌게 되는 놀라운 순간이 펼쳐진다. 제자리걸음이 헛된 것이 아니라, 나의 근육을 자라게 만들었다는 걸 알게 된다. 여러 실패와 실수는 지금까지의 내가 되기 위한 여정이었다. 조금은 나를 향해 웃을 수 있게 되며, 주변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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