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연휴에 외할머니와 엄마, 아빠와 함께 외할아버지가 계신 부산추모공원을 다녀왔다. 작년 5월에 외할아버지는 이 세상을 떠나셨다. 처음으로 외할아버지가 없는 설연휴를 외할머니는 보내셨다. 그래서인지 평소와 다르게 기운이 조금은 없어 보이셨다.
명절이라 그런지 추모공원에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가족들과 함께 소중한 이를 추모하러 온 사람들을 보니 생전 처음 본 이들이지만 왠지 모를 연결감을 느꼈다. 소중한 누군가를 잃은 슬픔을 겪었고, 같은 날, 같은 시간 떠나간 이를 그리워해서였을까.
외할아버지에게 절을 드리고 나서 근처에 계신 분들도 보았다. 외할머니가 말하길 최근에 돌아가신 이웃집 할아버지가 우연히 같은 구역에 안치되셨다고 한다. 사람 인연이 이렇게 이어질 수도 있구나 싶었다.
옆 구역에 추모하러 온 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말없이 소중한 이의 봉안당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계시는 여성분이 있었다. 그분의 옆에는 남편과 딸들이 있었다. 딸들도 눈물이 조금씩 나는 거 같았다. 훗날 내가 이 세상을 떠났을 때 나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리는 이들은 누구일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조금 걷다 보니 유독 사진이 많아 보이는 곳이 있었다. 어떤 여자분이셨는데 1988년생이었다. 마흔도 되지 않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나와 같은 80년대생이라 마음이 좀 이상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와 같은 이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젊은 청년이 있으니 더 먹먹했다. 붙여진 사진들에는 고인과 사람들이 함께 활짝 웃고 있는 사진들이 참 많았다. 많은 이들이 고인과 함께 행복했던, 기뻤던 순간들을 그리워하는구나 싶었다.
얼마 전 보았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원더풀 라이프'가 생각났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천국으로 가기 전 머무는 중간역 '림보'라는 곳에서 7일간 머물며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 하나를 골라야 한다는 내용의 영화였다. 림보의 직원들은 그 소중한 추억을 짧은 영화로 재현해 그들을 영원으로 인도한다.
내가 태어난 연도와 시간은 알지만 언제 이 세상을 떠날지는 알 수가 없다. 어떤 해에 어떤 날, 어떤 시간에 어떻게 죽을지 아는 사람은 없다. 그때가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난 어떤 장면을 고를까? 우리 엄마, 아빠, 외할머니는 어떤 장면을 고를까. 그리고 세상을 떠난 외할아버지는 어떤 장면을 골랐을까?
어떤 장면을 고를지는 모르겠지만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이 이야기를 꼭 나눠보고 싶어졌다. 나의 죽음을 기억하다 보니, 소중한 장면을 생각하다 보니 지금 내게 주어진 삶이 참 감사해졌다. 그리고 아직 내가 경험하지 못한 아름다운 장면, 소중한 기억들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