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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범준쌤 Jan 12. 2019

진로강사도 진로를 모른다

길-god / 생계를 위해 강의를 해야만 했던 시절에 대한 회상

진로강사도 진로를 모른다. 더 명확히 말하자면, 진로강사도 자기 진로를 잘 모른다. 고용에 대한 불안정성, 4대 보험이 되지 않는 비정규직, 남들에게는 강의를 한다고 말하고 다니지만, 정작 자신의 진로에 대한 확신도 없고, 교육에 대한 철학과 신념도 없는, 그저 생계를 위해 강의를 하고 있는 진로 강사들이 많다. 나 또한 그랬다. 그리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나도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갈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걷고 싶은 길이 생겼다. 그리고 어떤 길이든, 내가 지닌 철학과 신념, 그리고 꿈으로 진지하게, 유쾌하게 걸어나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조금 생겼을 뿐이다.


특히나 청소년 진로교육 업계에서 강사를 하기란 쉽다. 지원해서, 서류를 넣고, 면접을 보면 된다. 서류를 거지같이 쓴 게 아니라면 왠만해선 면접까지는 다 보게 해준다. 당연히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 입사보다 훨씬 수월하며, 쉽다. 하지만 누구나 할 수 있다고 해서,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단 몇개월만하다가 취업준비에 다시 들어가는 사람들도 있고, 1년정도하다가 정규직으로 신입, 경력직으로 취업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저 거쳐 지나가는 하나의 과정에 불과할 뿐이다. 물론 어떤 곳이든 넓게 우리 인생의 관점에서 본다면, 거쳐가는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겠지만, 청소년 진로강사에 대한 진입장벽과 전문성, 시간당 페이를 봤을 때 그 수준은 아무나 시켜주지 않는 단기알바, 중장기 알바 같은 개념이 크다. 대학교 때 발표를 좀 잘했거나, 사람들 앞에서 자기 이야기 하기를 크게 꺼려하지 않는, 성실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나 역시 시작은 그랬다. 그냥 잠깐 거쳐가는 곳이라 생각했다. 기업교육팀에서 실무를 잠깐 경험해본 결과, 나는 기업교육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사람들의 배움이 일어나는 과정을 생생히 목격하고, 그 과정에 있어서 일정한 역할과 책임을 맡고 싶었던 것이다. 교육기획, 운영이 아니라, 나는 교육을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힘들게 들어간 기업을 그만두고, 강사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물론 4개월 간의 방황의 시기가 있었다. 그만 둔 이유가 이거 하나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조직에서 적응을 그렇게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물론 잘할 때도 있었지만). 마지막 직장에서 느꼈던 건 일을 하면서, 내 일을 주도적으로, 적극적으로 해나가기보다는 남들의 눈치를 많이 봤다. 내가 이 아이디어를 내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혹은 그 일이 내 일이 되서 귀찮아 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많았다. 좀 놀랬었다. 그렇게나 주도적으로 대학생 때 대외활동을 해왔었는데, 회사에서는 그게 잘 되지 않았던 것에 놀랬다. 대외활동과 일은 달랐다. 일단 회사는 돈을 버는 곳이었고, 성과가 확실히 나오며, 책임을 지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때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생각보다 나에게 좋은 아이디어가 별로 없고, 말을 조리있게 잘 못하며, 피피티도 짧은 시간안에 뚝딱뚝딱 잘 못 만들고, 회의도 매끄럽게 진행하거나 잘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기가 많이 죽어 있었다. 그 생각은 '이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교육기획과 운영보다는 교육을 하고 싶다'는 그럴싸한 이유로 자기를 포장하며, 사람들에게 말하며 지금까지 버텨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 나의 역량을 제대로 확인한 순간 그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여겨졌고, 도망치고 떠나오고 싶었던 것이다. 관계에서의 회피성향이 일에서까지 있었다. 무언가를 책임지고, 부족하더라도 조금씩 실험하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며 성장하는 그 과정을 나는 매우 힘들어하고 있었다. 예전에 잘해왔던 것들도, 그 시기에는 잘하지 못했다. 예를 들면, 글을 쓴다던가 책을 읽는다던가, 말을 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속히 말하면 조직 부적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사람들과 함께 큰 프로젝트를 해나가는 데서 부담을 느끼고 눈치를 보는 사람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참 헷갈렸다. 이곳이 나의 길이 아닌지, 아니면 나의 길인데 역량이 부족한 것에 대해 스스로 실망하여 도망치고 싶었던 것인지 말이다. 아마 둘 다 혼재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도망치고, 도망치다가, 결국에는 도망칠 수 없는 지경에 처해졌다. 바로 통장잔고가 0에 수렴하고 있었다.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부모님께 더 많은 지원을 요청하기도 그랬다. 더 이상 그들에게 도움을 받는다면, 내가 못 견딜 것 같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청소년 진로교육 강사이다. 예전에 보조강사로 참여했었고, 대학생 멘토로 여러 번 그 현장들을 경험해봤기 때문에 조금은 잘 아는 분야였다. 그리고 묘한 자신감이 있었다. 내가 가진 유쾌함과 진지함으로 잘할 수 있으리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가득할 때였다. 열정도 있었다. 그렇다. 나의 청소년 진로교육 강사로서의 시작점은 거창한 이유가 아니었다. 교육으로 선한 영향력을 펼치고, 내가 만나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게 첫번째 이유가 아니었다. 도망치고 도망치다가 도망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간신히 잡은 하나의 기회이자, 생계를 해결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2016년부터 지금까지 청소년 진로교육을 해오면서, 여러 번 좌절을 느꼈다. 이 길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생계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다. 해외여행을 가고 싶어도, 돈이 여유있지 않아 가지 못했다. 친구들이 해외여행을 가자고 해도, 일정 핑계로 다음에 같이 가자고 했지만 진짜 문제는 돈이었다. 더 견딜 수 없었던 건 이 길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았고, 비전도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신감과 자존감이 바닥을 칠 때가 많았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혼란스러웠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 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사람들은 길이 다 정해져 있는지 

아니면 자기가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또 걸어가고 있네


나는 왜 이 길에 서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무엇이 내게 정말 기쁨을 주는지

돈인지 명옌지 아니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인지

알고 싶지만 알고 싶지만 알고 싶지만

아직도 답을 내릴 수 없네


자신있게 나의 길이라고 말하고 싶고 그렇게 믿고

돌아보지 않고 후회도 하지 않고

걷고 싶지만 걷고 싶지만 걷고 싶지만

아직도 나는 자신이 없네


나는 왜 이길에 서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나는 무엇을 꿈꾸는가 그건 누굴 위한 꿈일까

그 꿈을 이루면 난 웃을 수 있을까

지금 내가 어디로 어디로 가는 걸까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살아야만 하는가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일까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나는 무엇을 꿈꾸는가

그건 누굴 위한 꿈일까

그 꿈을 이루면 난 웃을 수 있을까

 

길, GOD [Chapter 4] 2번째 트랙



이 노래를 들으며 많이 위로 받았다. 꿈도 잃고, 현실도 잃어가고 있을 때 한 줄기 빛과 같은 역할을 이 노래가 해주었다. '나 혼자만이 가지고 있는 고민이 아니다'라는 걸 이 노래를 들으며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음악과 대화를 할 수 없지만, 음악은 자기 자신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좋은 촉매제가 된다. 위로받고 위안 받을 수 있는 친구의 따뜻한 한마디, 쓴소리가 내게 음악이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듣고 싶을 때 내가 선택해서 들을 수 있다는 점은 왠만한 친구보다도 음악이 더 나은 대표적인 이유다. 


솔직히, 아직도 답을 잘 모르겠다. 내가 이 길을 왜 걷고 있는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지 말이다. 그러나 확실한 건 이 길을 선택해서 걷고 있다는 것이다. 닭장 같은 회사를 뛰쳐나와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을 때 하고 있다. 돈은 얼마되지 않더라도 이제 좋아하는 사람들과 차 한잔마시며, 밥을 먹으며, 술 한잔 할 수 있는 정도의 여유도 생겼다. 조금만 더 한다면 이제 유럽여행을 함께 가자는 친구의 말에 흔쾌히 수락할 수 있을 정도의 통장잔고를 가질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가난해보니, 돈에 궁핍해보니, 돈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게 되었다. 소중한 이들을 지킬 수 있는, 나를 지킬 수 있는 든든한 울타리를 돈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다. 그래서 난 앞으로 돈을 많이 벌거다. 강의로 혹은 내가 지닌 또 다른 강점으로, 나만이 할 수 있는 콘텐츠로 무진장 돈을 벌고 싶다. 한시간에 3만원 받는 강사가 아니라, 한시간에 3백만원 받는 사람이고 싶다. 그만한 돈을 받기 위해서는 그만한 경험과 지식과 지혜, 기술을 지녀야겠지. 그렇다고 돈만을 좇아가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돈이란 녀석은 내가 좋다고 졸졸 따라다닌다고, 원한다고 아무리 외치고 외쳐봐도 내게 모습을 짠 하며 보여주는 존재가 아니니까. 난 앞으로 돈이란 녀석이 나를 졸졸 따라다니고 싶을 정도의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많이 모은 돈으로 호랑이기운 장학재단을 설립하고 싶다. 돈이 없어서, 공부를 하지 못하거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1억을 대출해주는 장학재단이다. 돈이란 녀석 때문에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젊은이들을 돕고 싶다. 10년 동안은 단 한푼도 갚지 않아도 되며, 이자도 안 갚아도 된다. 그리고 10년 뒤에 몇 년간, 어느 정도의 이자로 갚아나갈지 정하며 조금씩 꾸준히 갚아나가면 된다. 서류를 지원하면, 무조건 면접을 볼 수 있게 해줄 것이다. 그 서류의 특징이 있는데, 분량이 좀 길다는 것이다. 나에 대해서 a4 20장을 써야 한다. 각종 질문에 대한 답과 함께 자서전을 써내려가는 것이다. 그리고 왜 내게 1억이 필요한지, 그리고 그 1억으로 어떤 것을 왜 하고 싶은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를 써내려가야한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면접관들앞에서 그 서류를 10분으로 축약해서 발표해야 한다.  나는 그게 가능하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그 시스템을 제공해주는 재단을 만들고 싶다. 1억을 왜 공짜로 주지 않느냐?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그 1억이 소중히 쓰일려면 공짜로 주어선 안되니깐. 이런 말도 안되는 상상을 나는 요즘 가끔한다. 근데 못할 것도 없을 거 같다.


길을 걷다보니,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됐고, 좋은 꿈을 지닌 이들을 보면서 나도 꿈을 꿀 수 있게 되어버렸다. 어떤 길을 걸어갈지, 이 길의 끝에 뭐가 있을지 이제 별로 궁금하지 않다. 단지, 누구와 걸으며 어떤 이야기들을 하게 될지, 우리가 어떤 역사를 만들어나갈지 궁금할 뿐이다. 하고 싶은게 많은 요즘이다. 나는 호랑이기운 장학재단을 2050년에 반드시 세울 것이며, 나는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나는 그렇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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