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181004)
#문장
“나는 내 인생에서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어요.”
이런 사람에게 어떤 대답을 해주어야 할까? 가장 필요한 것은 삶에 대한 태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공부해야 했고, 더 나아가 좌절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 주어야 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시간마다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말이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에서 찾아야 했다.
#생각
나는 매번 삶으로부터 무언가를 기대했다. 고등학생일 때는 좋은 대학교를 기대했고, 대학생일 때는 좋은 직장과 직업을 기대했다. 내가 원하는 것이었든, 강요된 욕망, 타인의 욕망이었든 나는 그런 길을 남들처럼 걸었다. 그 길에 지쳐버려, 질려버려 다람쥐 쳇바퀴같은 그 길을 떠나기로 했다. 이곳을 떠나면 무언가 근사한게 떡하니 있을 줄 알았다. 그곳에서 느낄 수 없는, 찾을 수 없는 그 무언가를 다른 곳에서 기대했다. 그래서 온전히 내가 선택한 혹은 누군가에게 강요되지 않고 삶이 내게 건네준 길을 걷기로 했다. 하지만 그런 꽃길은 없었다. 어떠한 길이든 어느 정도 반복된 일상은 있기 마련이고, 그 일상 속 지루함은 곧 다람쥐 쳇바퀴 같은 느낌을 주기 마련이다. 지금도 여전히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 조금은 덜했다.
현재는 나의 콘텐츠로, 좋은 조건으로 강의와 강연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기대하고 있다. 말이 강연이 되고, 글이 책이 되는 일련의 수련 과정을 통해서 나의 가치를 더욱 높이고 싶다. 시간당 강연비가 오르고, 내가 지닌 지식과 지혜와 경험과 전문성이 점점 쌓이며 그것을 바탕으로 더 많은 이들의 변화와 성장을 돕는다면 삶이 더 행복하고 평온하지 않을까. 그 기대감이 나를 더욱 나아가게 하지만 때론 큰 압박과 부담으로 되돌아와 잠을 설치게 만들기도 한다. 큰 기대는 큰 부담으로 돌아오는 오묘한 관계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삶이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본 적은 별로 없다. 어떤 깨달음을 얻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 질문을 진정으로 스스로에게 묻고,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에서 찾아나가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근데 요즘 개운치 않은 생각이 든다. 내가 삶에 무언가를 기대하고, 그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어떤 성과를 내는 과정이 만족감과 행복감을 주기도 하지만 허무함과 공허함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거꾸로 질문해 보려 한다. 익숙하지 않은, 낯선 물음을. 삶이 내게 무엇을 기대할까?
삶은 왜 나에게 삶을 주었을까. 왜 '지금 이 순간'을 매번 주고 있을까.
이 질문은 지금 당장 답을 내릴 수 없다. 물음을 품고 살다보면 언젠가 해답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까하면서도, 빼곰이 다른 이들의 답을 어느 정도 보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의 답은 그들의 답일 뿐이다. 내가 생각하는 올바른 태도와 행동으로 주어진 길을 걷다보면 삶이 내게 기대하는 바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언뜻 드는 생각은 삶은 내게 '이야기'하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이면서,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안에 곪아있는 상처와 어두움을 쉽사리 이야기 하지 못하는 편이면서도, 잘 이야기한다. 타인들과의 관계가 편안하면서도 불편하기도 하다. 이야기를 통해서 성장하기도 하지만, 편견으로 가득찬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든다. 내가 겪고 있는 이 모순과 딜레마는 누구나 보편적으로 겪는 것이기도 하다.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다보면, 유사한 문제를 겪고 있는 이들이 그들 스스로 잘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삶은 그래서 내게 그런 시련을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