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리스에서 소울풀이 되는 방법에 대한 고찰
내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말들이 있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현재 내가 결핍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을 건드리는 말들은 나의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든다. 이 쿵쾅거림을 들키고 싶지 않아 애써 태연한 척하거나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가슴이 철렁거린다. 무언가를 들킨거 같아, 기분이 그리 좋지만은 않다. 그러니 그 말을 한 상대에게 예리하게 구는 건 어쩔 수 없다. 그 말들중 하나가 '영혼'에 대한 이야기다.
너 영혼 좀 넣어서 말해
상대방의 말을 잘 듣지 않고 자동적으로, 습관적으로 '아~', '오~', '음~' 이런 리액션을 하다보면, 감정을 제대로 실지 않고, 그저 내 생각을 무미건조하게 말하다보면 간혹 '영혼이 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지금도 아주 가끔 듣기도 한다. 이런 류의 말을 듣는 모든 순간이 속상한 건 아닌데, 특히나 속상할 때는 오해를 받을 때다. 내가 정말 영혼없이 말을 할 때는 상관이 없지만, 나의 솔직한 생각과 감정을 이야기했을 때 '영혼이 없다'는 소리를 들을 땐 억울했다. '영혼이 없다'는 건 타인의 판단이기에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 들었던 경험이 있다면, 소중한 이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땐 억울함으로만 남겨둘 수는 없다. 사람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고,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우리는 말을 할 수 밖에 없고, 서로 대화를 나눌 수 밖에 없다. 그런 말을 자주 듣는다면, 우리는 '대화'에 있어 무언가를 변화시켜나가야 할 때다.
몇 편의 글로 이 고찰을 이어나갈지 모르겠다. 이 주제에 대한 어떤 혜안을 발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계속해서 써나가보려고 한다. 나의 관심 분야인 '대화'와 '소통'에 있어 '영혼'은 매우 중요한 주제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목적은 타인에게 '영혼이 없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함은 아니다. 이 책의 결과일 수는 있겠으나 진정한 목적은 아니다. 그 목적은 바로 나의 영혼을 찾는 것이다. 그 영혼을 잘 표현하는 나만의 방법을 발견해내고 발굴하는 것이다. 아직 잘 표현되지 않는 잠재되어 있는 '소울'과 '소울'이 있음에도 '소울리스'라는 말을 듣는 이들을 위해서 여러 이들과 함께 고민하고, 내게 맞는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글에 담아보려고 한다.
이 글의 최초의 독자이자, 가장 큰 도움을 받는 사람은 아마 나일 것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말하기'와 '대화'에 고민이 있는 독자들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글이 될 수 있도록 꾸준히 써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