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가 '진로할인마트'라는 상호명의 슈퍼마켓을 본 적이 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진로'를 살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어떨까? 앞으로 내가 어떠한 길을 걷게 될지, 어떻게 살 것인지, 어떤 직업들을 가지며, 어떤 사람들과 함께 어떠한 일을 하는지에 대해 상세히 설명되어 있는 '진로할인마트'가 있다면 나는 어떤 진로를 살 것인지 상상해 본 적이 있다.
진로할인마트의 손님이 된다면 청소년, 청년들과 함께 그리고 각자 진로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일, 이야기를 듣고, 하고, 나누며 자신을 보다 더 이해하고 자신의 모험을 떠날 수 있게 돕는 일을 구매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과 같다. 만 6년째 이 일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초심을 까먹고 있었다. 얼마나 내가 이 일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미워했는지, 또다시 좋아졌는지 등에 대한 서사가 기억이 났다. 진로는 단 한 번의 구매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구매 후에도 계속해서 돌봄이 필요한 것이었다. 물을 자주 줘야 하는 반려식물처럼 말이다. 진로는 정해진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서 다르게 자라나는 생명과도 같다.
그리고 진로 구매는 '돈'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돈으로 당장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시간과 노력, 과정이 필요하다. 지불해야 할 것은 '시간'이다. 이 진로를 위하여 내가 지불해야 할 것들이 명확히 진로할인마트에 적혀 있다면 그 선택이 더 쉬워질까? 오히려 모르기에 그 모험을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상상해 보자. 당신이 진로할인마트의 손님이라면 어떠한 진로를 구매하고 싶은가? 어디까지 지불할 수 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왜 이 진로를 사고 싶은 걸까? 진로할인마트가 생긴다면 장사가 잘 될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삶을 살며 이와 유사한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하게 될 것이다. 100세 시대를 넘어 120세 시대가 성큼 다가왔기에 90대까지 일하는 삶이 더 이상 상상이 아닐 수 있다. 자신의 직업과 진로는 여러 번 바뀔 것이고 변화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