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y

기억상실

by 러닝

일어나자마자 마주친 것은 사각 턱에 매서운 눈으로 나를 지켜보는 낯선 사나이였다.

'어딘가로 잡혀 온 건가?'라는 착각은 끼기긱 거리며 돌아가는 낯익은 선풍기를 보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 남자의 어깨에 달린 은빛 장식들이 눈에 띄었다. 그제야 눈에 들어오는 복장으로, 그가 경비원이나 경찰일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었다. 일단은 다행이었다. 안전에 대해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의 무미건조하게 툭툭 던지는 말투는 나를 움츠려 들게 만들었다.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그 남자의 말은 걱정되는 상황을 생각하도록 이끌었다.

'마약인 건가? 어젯밤이 기억나지 않는다. 무심코 마신 술에 마약이 섞여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 말로만 듣던 셋업인 건가? 그들이 계획했던 상황으로 빠져든 것인가?' 어떤 식으로든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기에는 어려웠다. 이방인으로서 낯선 타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렇게 식은땀을 흐르며 낯선 남자와 대치하고 있을 때, 낡은 나무 문이 다시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드르르륵" 나무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낯익은 여성이 들어왔다. 호텔 입구에서 인사를 건네던 지배인이었다. 그녀의 뒤에 누군가 뒷따라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한국 대사관 이미경 서기관입니다. 병원에서 며칠 동안 입원해 계시다가 갑자기 사라져서 실종신고를 해놓은 상태였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저도 기억이 잘 안 나요. 여기 제 호텔 방에서 방금 깨어난 상태예요. 오히려 제가 물어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저기 저 남자는 왜 여기 있는 거죠? " 경찰로 보이는 그를 조심시럽게 가리키며 이미경 서기관에게 물었다.

"아, 잠시만요. 한번 확인해 볼게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현지말로 대사관과 지배인 그리고 경찰이 한동안 얘기를 주고받았다.


"저 남자는 여기 지역 경찰관이고, 어제 호텔 근처 상점에서 무단 취식과 이상 행동을 보여서 상점 주인과 몇몇 목격자가 신고를 했었다고 하네요."

"제가요? 제가 무단 취식을 했었다고요?"

어디 숨길 곳도 없는 작은 호텔 방 여기저기를 뒤져봤지만, 여권도 지갑도 보이지 않았다.

"제가 가지고 있던 소지품이 모두 사라졌어요."

"가지고 계셨던 소지품은 여기 있어요."

그녀는 종이가방에 들어있는 소지품들을 건네주었다.


"이게 왜 서기관님이...."

그녀는 한심하다는 듯이 나를 보며 불평처럼 말을 내뱉었다..

"당연하죠. 병원에서 사라지셨는데..... 진짜 기억이 안나세요? 병원에서도 잠깐 저랑 대화를 나누셨었는데요."

"제가요?"

처음 보는 그녀와 대화를 했었다는 것이 황당했다.

'여기에서 흔치 않은 한국사람을 내가 봤었다면, 못 알아봤을 리가 없었을 텐데....'

"진짜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시는 듯 하니, 제가 알고 있는 것들을 설명해 드릴게요." 그러고 그녀의 뒷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

"일단 여기 이 분들에게 먼저 양해 좀 구해야겠네요."

그러고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현지언어로 사뭇 진지한 표정을 한 채 그들과 말을 한동안 이어갔다.

대화가 끝이 나고 그녀가 상황과 조치내용을 설명해 주었다.

일단 한국 대사관이 병원비와 무전취식 비용 보상을 약속하며 현지 경찰을 돌려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병원비 내역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제가 일주일이나 병원에 있었다고요?" 영수증을 전부 읽을 수 없었지만, 날짜들이 찍힌 것을 보았다. 그 기간 일주일이었다.


'단순히 몇 시간 정도 기억이 안나는 줄 알았더니, 일주일이나 있었다고....'

실타래처럼 기억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듯했다.

처음 바다에서 구조된 뒤, 병원으로 옮겨지며 당시에 가지고 있던 여권, 국제면허증을 보고 대사관으로 연락이 왔었다고 한다. 그때 서기관이 방문했을 때, 무의식과 의식을 수 없이 오가며, 가끔 이상 행동을 했었다고 한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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