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물든 광장
가로막힌 건널목에서 신호등의 붉은색과 광장의 뿌려진 피가 겹쳐 보였다. 스산하고 기괴한 소름 끼치는 모습이었다. 나와 같이 횡단보도 앞에 있던 아주머니는 그 광경을 마주하자 짤막한 놀람의 소리가 끝나자마자 급히 아이의 눈을 가리고 품 속으로 안아 들었다.
"눈 가려! 이런 거 보면 안 돼"
순간 아주머니의 손에 힘이 실렸었는지, 아이가 불평을 내뱉었다.
"엄마, 눈 아파! 눈 감을 테니깐 손 좀"
"영호야, 미안해. 엄마가 놀라서. 눈 계속 감고 있어. 뜨면 안 돼!"
그렇게 아이를 다독이며, 아주머니는 아이를 안은 채 행렬의 반대편으로 빠른 걸음으로 도망쳐 나갔다. 아주머니가 사라지는 그 길 속에서 이쪽을 향해서 걸어오고 있는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야! 야! 여기 좀 와 봐!"
앞서 가던 사람이 뒷따라 오는 일행에게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우와~ 저게 뭐야?"
도착한 일행들은 광장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놀랐지만, 당황하는 기색은 크게 없어 보였다.
아니, 오히려 흥분하며 신이 나 보이기까지 했다.
"와~ 대박! 말만 들었는데 저걸 여기서 보네"
그리고 주변에서 웅성 거림과 함께 카메라와 동영상 촬영이 시작될 때의 찰칵 거리는 소리가 뒤를 이었다. 거리에는 다양한 움직임들이 보였다. 피신을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신기한 구경거리인 마냥 다가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길 건너편 광장에는 용신교들의 섬뜩하게 만드는 외침이 울렸고, 그들 주변에는 경찰들이 커다란 검은색 방패를 들과 교인들과 대립하고 있었다.
도로를 따라 줄줄이 서있는 경찰들은 이쪽에서 들어가는 것도 저지하고 있었다.
"잠깐 저기 좀 지나가자니깐."
"여긴 지금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바로 저기가 우리 집인데 저 싸이비 때문에 집에도 못 가게 하나!"
동네 주민인지 막무가내로 경찰을 밀치면서 넘어가려 했다.
"야! 거기 똑바로 저지 못하나? 정신 안 차릴래!"
저 멀리에서 호통의 소리도 들려왔다. 그야말로 광장을 에워싼 도로와 주변은 아수라장 같았다. 확성기로 떠드는 교인들의 찬양소리, 용신교를 비난하는 소리, 너튜브인지 실시간 라이브로 중계하는 소리, 여기저기에서 울려대는 호루라기 소리와 불구경하듯 지켜보면 나누는 대화들.
혼란의 중심 속에서 뒤섞여 들려오는 소음들이 귀를 주기적으로 간지럽혔다. 더 이상 그곳에 서 있을 인내심은 없었지만 몰려든 사람들을 헤치고 빠져나갈 기운도 더 이상 없었다. 그렇게 가만히 서 있을 수도 없어서, 바로 뒤편, 공원 입구 근처에 덩그러니 홀로 남아있는 갈색 나무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구경을 하러 나온 사람들은 이내 내 앞의 시선을 가려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앉은 거리에 모여든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뿐이었다.
윗 머리가 살짝 휑하지만 깔끔한 검은색 양복에 점잖아 보이는 중년이 한 무리를 이끌고 다가왔다. 그는 광장을 마주 보고 고개를 숙이더니, 눈을 감은채 흥분한 듯 빠른 박자의 목소리를 내었다.
"주여~ 저기에 사탄의 무리들이 피의 축제를 하고 있나니, 길 잃은 어린양들을 가엽게 여기시어 이 고난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아멘~" 기독교 신자로 보이시는 분이 용신교를 향해서 격양된 음성으로 기도를 올렸다.
그들을 보며 잠시 일렁인 호기심도 길게 가지 않고 쉽게 식어버렸다. 주변의 소음들이 귀를 찌르며 계속 괴롭혀 왔기 때문이었다. 벤치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인 채 두 귀를 감싸고 시끄러운 그 소음들이 점차 멀어지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광란의 행렬이 지나간 뒤, 고개를 들고 유난히 뿌옇게 보이는 밤하늘과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었다. 시뻘건 피로 물들었던 광장도 청소차와 물차가 지나간 덕분에, 본래의 모습으로 서서히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횡단보도를 건너갈 용기는 없었다. 마치 그 사이비 종교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느낌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대로 벤치에서 초점 없는 눈으로 광장을 지켜보았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멍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들이 어지럽게 떠다니고 있었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타인을 죽음으로 몰고 간 억울한 마음과 죄책감, 그리고 혁이에 대한 미안함. 나 자신에게 일어나는 변화들. 그 모든 것들을 한 번에 나의 작은 뇌에 담아내기에는 모자라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그리고 순간순간의 감정들도 소름 끼치는 기억 속에서 떠올랐다. 용신교의 행사를 보고 있을 때의 심정도 스쳤다. 그 당시에 나의 마음은 슬피 울고 있는 것 같았는데, 한편으로는 교인들에게 현혹되어 그들의 말이 귀에 닿을 때면 '지금 웃어야 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는 신의 축복을 받았고, 살아남을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 자신을 위로하려고 했지만, 마음의 멍울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광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광장 시계탑의 시침이 몇 번 움직임이 있고 난 뒤, 흥분되었던 감정의 쓰나미 속에서 조금은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았다. 이제 현실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가고 있었다.
'내가 무슨 판타지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주인공도 아니고,
마주친 현실을 살아나가야지.'
믿기지 않는 현실 속에 처해져 있지만, 현실을 헤쳐나갈 수 있는 것도 앞으로의 답을 찾을 수 있는 것도 당사자인 '나'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이 한차례 정리가 되자, 차가운 이성의 끈이 연결되었다. 현 상황을 정면으로 바라보기 위해, 스스로에게 질문의 꼬리를 물고 되물었다. 소리 내지 않은 중얼 거림이 계속되었다.
'어째서 똑같이 전염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증상이 양갈래로 나눠지는 걸까?'
'어떤 이는 죽음을 맞이하고, 누구는 초인 같은 힘을 가지게 되고...
드래곤 하트라는 바이러스가 진짜 신의 심판인 건가?'
'그런데 나는 무슨 선한 일을 한 기억도 별로 없고, 종교에 귀의한 것도 아닌데 이런 선택을 받고 초인의 힘을 가지게 된 걸까?'
'내가 병원에서 보았던 그 많은 링거와 전선들이 투명한 해파리의 다리와 겹쳐 보였던 것이 착각이 아니었던 걸까?'
바다를 좋아해서 수영도 다이빙도 즐겨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때 한 순간 바닷속에서 정신을 잃은 듯했었다. 하얀 무리들이 우연히 마주쳤던 것들은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것은 어떤 형체도 없어 보였다. 반쯤 투명한 그 무언가였다. 그것들을 알아차렸을 때, 입술이 따끔했었던 것은 기억난다. 그러나 그 이후는 가위로 자른 듯 기억이 흐려졌다. 눈을 감았다가 뜰 때마다 장면들이 바뀌어져 있었다. 바다에서 어떻게 육지로 왔었는지, 숙소를 어떻게 찾았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단지 내가 어느 정도 정신을 차렸을 때, 현지 경찰을 마주하였던 것은 또렷이 기억난다. 하지만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했을 뿐이었다. 그때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 아니, 혹시 어제 마신 술에 환각제라도 섞여 있었던 것은 아닌가?라는 의심에 긴장되었다. 현지인들로 가득 찬 비좁은 낯선 감옥에 갇히는 건 아닌지, 두렵고 막막한 생각마저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으로 두 여인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