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의 시작
요란한 굉음과 경찰차량의 소리가 어디에선가 들려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시끄러운 소리들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느덧 마주 보고 있던 빌딩과 나 사이에 경찰차량이 점차 끼어들더니, 차량에서 전경들이 나와서 도로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알록달록한 경광봉을 든 사람들이 도로를 막으며 수신호를 하고 있었다. 거리에서 고립되어 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어서 앞에서 들렸던 굉음 소리들이 더 커지더니, 귀를 사정없이 때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옷까지 맞춰 입고 행렬을 진행하고 있었다. 보통 거리에서 볼 수 있음 직한 옷 장착은 아니었다. 머리에는 적색 띠를 두르고 있었다. 앞서 보았던 경광봉 만큼이나 알록달록한 원색 가로 줄무늬의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앞서 행진하는 사람들은 커다란 플랜카드를 들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하늘이 노하셨다.]
[지금 세상은 가을의 추수가 시작되었고, 곧 겨울이 올 것이다.]
[선택받은 자만이 살아남고 구원받아 초인류가 탄생할 것이다.]
플랜카드 이외에도 깃발이 있었는데, 어떻게 들고 움직일 수 있을지 의문이 들만큼 큰 깃발이 달린 창대를 쥐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보기에도 근육질이 울룩불룩해 보였다. 그들이 들고 있는 깃발은 빨간색 배경에 금색 무늬의 용이 그려져 있었다. 몸통이 기다란 용으로, 날카로운 손톱으로 여의주를 쥐고 있었다.
"쟈들 또 저카네, 하튼 또라이 시키들"
거리에서 멍하니 행렬을 보고 있는데, 옆에서 머리 중간이 조금 비어있는 어르신이 와서 불쑥 말을 이어서 내뱉었다.
"지들이 먼 무당이가, 먼 색동 저고리만치로 입고 뻘건 거 들고 난리치노. 옥동자야 머야?"
나도 모르게 '옥동자'라는 말에 죄책감에 휩싸인 것은 잊고 푸웁 뿜어버렸다. 계속 어디에선가 본 것 같은 의상과 모습이었는데 그게 바로 개콘의 '옥동자' 코스프레였다.
"저시키들 때매 길도 못 건너고, 이게 머고"
바로 근처까지 그 행진이 다가오자, 대담했던 어르신의 목소리가 조금씩 작아지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점점 작아지는 볼륨 소리에 웃음이 났다. 자연스럽게 내 시선은 그 행렬에서 어르신으로 눈길이 갔다.
"총각, 니는 저러지 마래이! 에잇~ 상노무 사이비들" 그러면서 귓속말을 하듯이 내 귀 앞에 입을 대고 조심스럽게 다시 말을 내뱉었다.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어르신은 가까이 있는 그 '용신교'라는 단체의 눈치를 살피었다. 그러면서도 말을 끊지 않고 계속 이어갔다.
'하긴, 저런 사이비들은 물불 안 가리고 덤벼드니깐, 더 무섭지. 그것도 어두운 밤중에 무슨 알록달록한 옷에 섬뜩하게 빨간 깃발까지 들고 가는 건지' 그들의 외침 속 그리고 플랜카드에 쓰인 글자들을 선명하게 보였다.
[용신교 한국총회]
"미친 노무 시키들 아니가, 저거들끼리 피를 나눠 마시고 몸에도 바른다 카데. 그 머냐, 하여튼 전염병에 걸려가 죽을 수도 있다카던데 그게 먼 짓인지." 어르신의 말을 들으니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저들이 지금도 말하고 들리는 '축복'이라는 단어가 '드래곤 하트'를 가리키는 것이라는 것을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저 사이비종교의 이름이 용신교라고 하는 듯했다. 무슨 용신이 축복을 내려서, 용의 힘을 가진다는 논리였다. 그리고 같은 병에 걸려서 죽는 사람들은 '낙엽'이라고 지칭했다. 가을에 쓸쓸히 떨어지는 '낙엽'같은 존재. 그러니깐 겨울이 오기 전에 죽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겨울이 오면 선택받은 자기네들만 살아남는다고 한다. 이제 시작이라고 한다. 드래곤 하트가 유행하는 지금이 가을. 그리고 겨울에는 더 큰 무엇인가 벌어진다고 한다.
지금 나에게 '드래곤 하트'는 죄책감의 근원이었다. 저주받은 피라고 생각했다. 내가 체력이나 몸이 좋아지면 뭐해. 사람을 죽이는 피인데...
경찰들의 무력에도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깃발을 들고 있었던 사람만큼이나 근육질의 남자들이 경찰들과 몸싸움을 하는데, 거의 일방적으로 전경들의 방패가 밀리는 듯했다. 그리고 그 용신교라는 무리 속에서 급하게 마련된 무대에 한 남자가 올라서서 무릎을 꿇더니, 옆에 보조하는 듯한 여성이 세숫대야 같은 것을 가져다가 남자에게 전달했다. 남자는 그 세숫대야의 새빨간 피를 자기 머리 위에 부었다. 머리에서부터 흘러내리는 피는 그의 옷과 무대 바닥까지 붉게 물들게 만들었다. 정말 섬뜩하게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트라우마가 남을 정도로 아주 강하고 더러운 이미지였다. 그 혐오스럽고 기분 나쁜 피가 내 몸속에도 흐르고 있다는 생각에 나 자신이 더럽게 오염되었다고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