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과 자유
외로움이라는 파도에 휩쓸려 커다란 바다에 빠지게 되면, 수면 위의 드넓은 세상을 보지 못한다. 짜디짠 소금물로 피부와 눈을 감싼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뒤, 온몸이 흠뻑 젖어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태가 된다. 눈이 따가워서 멀리 볼 수도 달려갈 수도 없다. 바닷속에서 허우적거릴 때면, 온갖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어떻게 하면 다시 수면 위로 올라갈 수 있을지, 이대로 심연 속으로 가라앉으면 어떻게 하나, 누군가 외부에서 구조하러 오지는 않을까? 조금이라도 버둥버둥거리면서 버티어야 할까? 아니면 이제 포기를 해야 하나? 때로는 몹시 울부 짓을 지도 모른다. 폭포수 같은 눈물을 쏟아내어도 아무도 모른다. 눈물을, 고독을 입안에 삼키는 동안 그 짧은 찰나의 순간이 마치 인생의 전부가 된 것처럼 느리게 느리게 시간은 흐르며 경직된 근육이 조금씩 풀어져 간다. 그리고 깜깜한 심연으로 향할지도 모른다.
파도 위에 올라타서 헤엄을 치거나 서핑을 하면서 즐길 수도 있다. 국내의 캐러비안베이 같은 물놀이 시설들이 인기가 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파도에 열광하며 즐긴다. 파도가 높고 거칠수록 더 재미있어한다. 무엇이 그들에게 재미를 가져다주는 걸까? 평소에 우리가 서 있는 땅과 다르게, 물 위의 표면은 멈춰있기보다는 출렁인다. 수면이 멈춰있으면 물 일지라도 썩기 마련이다. 고약한 악취와 함께 죽은 물(웅덩이)로 바뀐다. 출렁이는 물은 끊임없이 요동을 치며 혼란을 조장하는 듯이 보이지만, 공기를 머금고 골고루 섞으면서 정화한다. 외로움이라는 파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파도는 고착되어 있는 마음을 가차 없이 흔들며 정신을 다시 가다듬게 만든다. 특별한 이벤트 없이, 오랫동안 똑같은 일상만 반복하다 보면 자기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보기 어렵다. 정해진 일상을 반복하며 자신을 정의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사실 점점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런 자극 없이, 스스로 자신을 정좌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파도를 타면 무엇이 좋을까? 머리 위에 하늘이 있다. 물 대신 공기가 자리한다. 높이 솟아오르는 파도 위에서 더 멀리 볼 수 있고, 몸을 앞으로 나아가는 저항이 훨씬 적어진다. 다양한 변화 속에서 자유를 느끼며 온전히 자신의 의지를 더 표출하기 좋다. 어딘가에 몰두해서 무엇을 해내기에 참 좋다. 이후의 말은 쇼펜하우어의 철학으로 대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