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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닝 May 20. 2024

3화. 천국의 계단

시원한 그늘 아래에서...

철문 안쪽에는 돌계단이 늘어져 있었다.

'저기에 나의 시원한 쉼터가 보이는구나.'

도윤은 휴게소 뒤편 검은 철문을 열고 거침없이 내려가, 드디어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휴식처를 찾았다.


검은 철문을 사이에 두고, 안과 밖은 꽤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바깥은 푹푹 찌는 더위와 시우 패거리에게 벗어나야만 하는 곳이었고,

검은 철문 안에는 드넓은 강물이 길을 따라 흐르고, 길쭉길쭉한 편백나무들이 하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왼쪽 길가에는 몇몇 승용차와 트럭이 주차되어 있었지만, 그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더워서 전부 차 안에서 쉬고 있겠지.'

오른쪽 길은 마사토 같은 흙으로 뒤덮여 있는 비탈길이었다.

운전자들이나 기사들이 머무고 있을 것만 같은 왼쪽의 포장도로를 멀리하고 발길을 돌렸다.

낮은 오르막길로 올라서니, 꽤나 잘 정돈된 공원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혼자 쉬기에는 안심맞춤이었다.

널찍하게 펼쳐진 나뭇잎이 가지를 감출만큼, 잎이 무성한 나무가 보였다.

그늘을 한 아름 품고 있는 나무 아래 기다란 벤치가 놓여 있었다.

'와~ 진짜 나를 위한 곳이네.'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나무 곁으로 걸어갔다. 

휴대폰을 머리맡에 놓아두고 벤치에 누워서 하늘을 보았다.

푸르른 나뭇잎 사이로 살짝살짝 파란 하늘이 이따금씩 고개를 내밀었다.

강을 타고 불어온 바람인지, 이마에서 흘러내리던 땀과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싱긋한 풀내음이 올라와서 코를 간지럽혔다. 공원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맑고 청아한 새소리가 지친 귓속을 맴돌았다.


옷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던 탓일까, 서늘한 느낌에 눈을 떴다.

어느새, 파란 하늘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어!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을 뿐인데, 벌써 어두워졌다고?'

순간 잠이 확 달아났다. 머리맡으로 손을 뻗어 더듬거려서 휴대폰을 집었다.

휴대폰은 검은 화면만 보여주고 있었다. 재빨리 전원버튼을 다시 눌러봤지만 검은 화면은 변하지 않았다.

'아, 진짜! 언제 배터리가 다 되었지... 1시간이 넘어간 거 같은데 어쩌지...'

검은 화면만큼이나 내 머릿속은 깜깜해졌다.

울음이 날 틈도 없었다. 번쩍 정신이 챙긴 후 공원을 빠져나가 지나왔던 길을 내달렸다.

조금 전에 보았던 강 옆의 포장도로가 보이기 시작했다.

휴게소에서 걸어 내려왔던 계단에 섰을 때, 어안이 벙벙했다.

'계단이 원래 이렇게 많았었나? 많아도 몇십여 개의 계단이었던 것 같았는데...'

눈앞에 있는 계단은 족히 백여 개는 넘어 보였다.

'내가 아직 잠을 덜 깬 건가?'

깊게 생각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달려서 오느라고 숨 가쁜 호흡을 겨우 몰아 쉬고는 쉬지도 않고 바로 계단을 올라섰다.

대충 서른 개의 계단을 올랐을 때쯤, 거친 나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허~헉, 헉. 허억"

'이거 왜 이리 힘들지. 고작 몇 계단이나 올라왔다고?'

숨이 차서 호흡이 흐트러지고 머리가 핑핑 도는 것만 같았다. 

뱃속도 거북해져서 신물이 올라와서 시큼한 맛이 났다.

'일단, 여기서 조금만 쉬었다가 한번에 올라가자.'

어지러워서 잘못하다가는 계단에서 떨어질 것만 같아서 1분만 쉬려고 했다.

'아마 위에서는 날 찾고 있어서 출발은 안 했을 텐데... 아! 시우 패거리가 이 핑계로 또 괴롭히려고 할텐데...'

호흡이 조금 가라 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이제 다시 뛰어 올라가자. 더 늦기 전에.'

다시 힘내서 뛰어 올라갔지만, 계단 열개도 더 오르지 못하고 숨이 차고 심장이 쿵쿵거리고 있었다.

'몸 어딘가 안 좋은가, 더 이상 올라 가질 못하겠네...'

점점 머리가 지끈거리더니, 낮에 흘렀던 땀은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 옷이 흠뻑 젖어 있었다.

더 이상 계단을 올라가는 것은 무리였다. 현기증에 비틀거리기까지 했다.

"저기요~ 저기요~ 누구 없어요?"

몰아치는 숨을 겨우 붙잡고 계단 위로 있는 힘껏 소리쳤다.

마치 계곡에서 소리친 듯이, 소리가 다시 되뇌어 메아리쳤다.

"저기요~ 저기요~ 누구 없어요!"

목 놓아 부른 외침에도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여기! 있어요! 나 여기 있다고"

다시 한번 외쳐보았지만, 아무런 응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조용한 공기 속에 귀뚜라미 울음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흐른 걸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에서 기다려봤지만, 점점 더 어두워져만 갈 뿐이었다.

'도대체 계단을 왜 못 올라가는 거지. 몇 개나 된다고...'

지금 상황을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머릿속은 검은 먹물에 흰색 잉크를 풀어놓은 것 마냥 새하얗게 번져갔다.

주르륵, 도윤의 눈에서 새하얀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제 주위는 깜깜해져 버렸다.

여기 계단 위에서 밤을 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더 어두워지면 계단을 내려가는 것도 위험하게 느껴졌다.

가파른 계단을 한걸음 한걸음 조심히 내려왔다.

오를 때와는 다르게 발을 헛디딜지 몰라 두려웠지만 숨이 차 올라오지는 않았다.

눈물 때문인지 시야마저 흐릿해졌다.

"어! 저거 뭐야! 와아~"

계단을 내려오면서 불 빛을 보았다.

저 멀리 포장도로 끝에 화려하게 보이는 네온 간판에서 비치는 불빛 같았다.

'그래~ 저기 반대편으로 가면, 사람들이나 지나가는 차량이 있겠지. 왜 내가 왔던 길만 봤을까? 저쪽으로 나가면 될 텐데.'

"휴~ 나도 참 바보도 아니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입가에는 미소가 올라왔다.


계단을 다 내려오자, 흙길은 촉촉이 젖어 있었고 비릿한 흙내음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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