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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닝 May 19. 2024

2화. 무더위 속의 보초병

휴게소에서...

"여기는 신림 휴게소, 잠시 쉬었다가 가겠습니다"


어느새 귓가에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창 밖을 보니 굳이 나가보지 않아도 충분히 덥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마와 등에 땀이 흘러내리는 것이 보였다. 아직 6월인데도 불구하고 올해 이상기후로 한여름처럼 몹시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었다.

2시간 정도 차를 타고 온지라,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 시원한 버스에서 내렸다. 아직 잠이 덜 깬 상태에서 햇빛을 최대한 피해 가며 화장실을 향해 걸어갔다.

앗! 먹거리 코너와 화장실 사이에서 지호가 초조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냥 지나치려다, 지호에게 말을 꺼냈다.


"꽤 덥다야~, 여기서 뭐 해? 갔다 온 거야?"

"아니, 잠깐 기다리라고 해서..."

아, 무슨 말을 하는지 짐작이 갔다. 곧이어 시우패거리가 화장실에서 나와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어! 도윤이 아니가, 왜 지호랑 둘이서만 맛있는 것 먹으려고?"

"아냐 아냐, 그냥 화장실 가는 거야"

괜히 같이 엮이기 싫어서 시우의 눈치를 살피며 후다닥 화장실로 들어가려고 했다.


"이야, 지들끼리만 맛있는 것 먹는다고 내 말 그냥 씹네. 모른척하는 거 봐라"

시우가 한마디 내뱉자, 시우 패거리는 내 앞을 가로막았다.

주위를 돌아봤지만, 이미 방송시간이 나오고 한참 지난 터라 선생님이나 다른 아이들은 먹거리 골목코너나 버스로 돌아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 화장실 금방 갔다 와서 같이 먹자고. 내가 쏠게"

딱딱해져만 가는 이 상황을 벗어나려고 재빠르게 내뱉었다.


"아~ 맞쟤? 난 또,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역시 도윤이네"

당연하다는 듯이 맞장구치고 있는 시우는 빙긋 웃어 보였다.

마치 게임 속, 마왕의 웃음 같아 보였다. '저 악랄한 놈한테 잘못 걸렸네. 안 엮이고 빨리 여기서 벗어나야 되는데.'


"그러면 우리는 저기에서 먹을 것 고르고 있을 테니, 후딱 오너라. 가자~ 지호야"

지호에게 어깨동무를 하고 인질인양 끌고 가는 뒷모습이 보였다. 망설이고 있을 틈은 없었다. 괜히 핀잔을 듣기 싫었던 도윤은 급하게 볼일을 보았다.


'이런 제길' 시우 패거리는 주문대에서 장바구니에 이것저것 엄청 담아놓고 있었다.

'2박 3일 동안 쓸 돈인데,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다 쓰게 돼버렸네'


"야, 야! 니도 빨리 골라라. 니 때문에 기다리잖아"

시우의 독촉에, 그나마 조금 가격이 저렴한 '소떡소떡 실속형'을 선택했다.

결제를 하자마자, 시우 패거리는 휴게소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주문한 간식 다 챙겨서 휴게소 안으로 들어오라는 무언의 독촉이었다.


"아후, 진짜 점마들 머꼬"

패거리들이 휴게소 안으로 들어간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서야, 짜증 나는 말투로 내뱉었다.

"도윤아, 내가 챙겨갈 테니깐 먼저 가라"

지호는 자신 때문에 도윤이 피해봤다고 생각하고 어쩔 줄 모르면서 말했다.

"무슨 소리하노. 이게 도대체 몇 개인데, 네가 다 챙기노" 

간식이 나오길 기다렸다가, 둘 다 양손에 가득 든 채 식당 안으로 군말 없이 들어갔다.


도윤은 혹시라도 시우 패거리에게 같이 끌려다닐까 봐, 너무 불편하고 불안해서 자신이 무엇을 먹는지도 몰랐다.

"야~이, 시키야. 네가 왜 내 거 먹는데! 네가 돈 냈다고 티 내는 거가!"

'어? 내가 먹는 건 소떡소떡이 맡는데... 시우는 또 왜 트집을 잡지? 이제 어떻게 하지. 으아아아'

당황하고 있던 나에게 지호가 귓속말을 했다.

"니껀 실속형이고, 시우껀 그냥 소떡소떡이다. 갯수가 다른 거 같다."

상황을 이제야 눈치챈 도윤은 반사적으로 말이 나왔다.

"미안, 미안. 내가 진짜 몰랐다. 내가 두 배로 사 올게"

"모르면 다가! 내가 거지가! 니 좀 이리 와봐라!"

황소처럼 흥분한 시우는 씩씩 거리며, 달려들 기세였다.



때마침, 휴게소 안으로 구세주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xxx학교 xx반 학생들, 고속버스가 고장이 나서 지금 수리하고 있으니깐 1시간 정도 더 기다리고 있어라"

담임 선생님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다시 한번 말했다.

"날도 더운데, 어디 나가지 말고 식당 안에서 기다리고 있어라. 지호야, 맛있나?"

"아, 네네 네네" 

당황한 나는 더듬거리며 긍정의 대답을 자동으로 응답했다.

"야! 니는 이제 꺼지라. 쌤이 이상하게 본다아이가!"

얼렁뚱땅 위기를 넘긴 것인지, 어쨋든 도윤은 그 상황을 피할 수 있었다.

식당 밖을 나오니, 무더위로 주변은 푹푹 찌는 듯했다.

선생님은 다시 고속버스가 있는 방향으로 사라지셨다.


'아휴~ 그래도 더워도 여기가 낫지. 저 안에는 진짜 다시 못 들어가겠다.'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있는데, 지호도 식당 밖으로 걸어 나왔다.

지호가 자신에게 올 줄 알았는데, 식당 유리창 밖에서 그냥 가만히 서 있었다.

그 뒤로 식당 안에서 지호를 보면서 시시덕 거리는 시우 패거리가 보였다.

'참나, 괴롭히는 것도 가지가지다. 이 무더운 날씨에 우째 저렇게 하노'

시우 패거리의 괴롭힘을 비난하면서, 잠시 동안 지호를 지켜보고 있었다.

지호의 티셔츠에는 땀이 범벅이 되기 시작했는지 젖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러는 동안, 내 옷도 땀에 젖어들고 있는 것을 느꼈다.


 '나 라도 시원한데 좀 찾아보자.' 

지호를 뒤로 한 채, 자신이 살 궁리를 찾으러 휴게소 이곳저곳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휴게소 식당과 주유소 사이에 검은색 철문이 반쯤 열려 있는 것이 보였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자, 철문 주변에는 철망으로 둘러쳐져 있었다.

텅 빈 공터인 줄 알았는데 철망 사이로 보이는 뒤편에는 푸르른 나무 아래 시원해 보이는 그늘이 보였다.

주변에는 몇몇 차량들이 주차되어 있었고,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아, 그래 이거다. 저기 가면, 눈에도 안 띌 거고 편하게 쉴 수 있을 거야'

휴대폰에 선생님이 말씀해주신 출발 시간으로 알람을 맞췄다.

철문 안쪽에는 내려가는 돌계단이 있었고, 그 아래에는 시원한 그늘이 기다리고 있었다.


도윤은 휴게소 뒤편 검은 철문을 열고 거침없이 내려가, 드디어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휴식처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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