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의 잔과 나의 잔을 섞어라, 우리는 안전하다"
요즘에는 회식이 많이 줄었다지만, 그래도 아직 직장인들의 피로를 푸는 방법 중에 하나는 퇴근 후 동료들과 맥주 한잔하며, 업무 이야기나 상사 뒷담화하는 재미일텐데요. 차가운 맥주잔 표면에 물방울이 맺히고, 거품이 꺼지기 전에 동료들과 잔을 "짠!" 하고 부딪치는 재미는 하루의 스트레스를 날리는 시작 알람과도 같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축하할 때도, 위로할 때도, 혹은 단합을 위해서도 습관처럼 잔을 들어 부딪칩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상합니다. 굳이 내 잔을 상대방의 잔에 쾅 부딪쳐서 술을 출렁거리게 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 유쾌한 의식의 뿌리를 파고 들어가 보면, 우리는 아주 살벌하고 비정한 역사와 마주하게 됩니다. 바로 '독살(Poisoning)'의 역사입니다.
중세 유럽, 혹은 그 이전의 고대 사회에서 술자리는 마냥 즐거운 곳이 아니었습니다. 권력 다툼이 치열했던 귀족이나 왕족들에게 연회장은 정적(政敵)을 제거하기 딱 좋은 장소였죠. 독이 든 술잔을 권하고, 아무것도 모른 채 마신 상대가 쓰러지는 일은 역사 드라마나 <왕좌의 게임> 같은 미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두려웠습니다. "저 녀석이 나에게 호의로 술을 주는 걸까, 아니면 나를 죽이려고 하는 걸까?" 이 지독한 의심을 해소하기 위해 고안된 생존 전략이 바로 '건배'입니다.
초기의 건배는 지금처럼 살짝 갖다 대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잔과 잔을 아주 세게 부딪쳐야 했습니다. 내 잔의 술이 넘쳐서 상대방의 잔으로 들어가고, 상대방의 술이 내 잔으로 튀어 들어올 정도로 격렬하게 말이죠.
의미는 명확합니다. "보시오. 내 술과 당신의 술이 섞였소. 내가 이 술을 마시고 무사하다면 당신도 무사할 것이오."
즉, 건배는 "나는 당신의 술에 독을 타지 않았습니다"라는 무죄 증명이자, "우리는 운명 공동체입니다"라는 생명 보장 계약이었던 셈입니다.
서양에서 건배할 때 상대방의 눈(Eye Contact)을 똑바로 쳐다봐야 하는 예절도 여기서 유래했습니다. 만약 술에 독을 탔다면, 잔을 부딪치는 순간 자신의 술에 독이 섞일까 봐 시선이 흔들리거나 잔을 보게 될 테니까요. 그러니 눈을 피하는 건 곧 '배신'을 의미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야만의 시대가 가고, 독살의 위협이 사라진 현대에 와서도 우리는 여전히 잔을 부딪칩니다. 생존의 도구였던 건배가 이제는 '축제의 도구'로 진화했기 때문입니다.
와인이나 맥주를 마실 때 우리는 눈으로 색을 즐기고(시각), 코로 향을 맡으며(후각), 손으로 잔을 느끼고(촉각), 혀로 맛을 봅니다(미각). 여기에 잔이 부딪치는 경쾌한 소리(청각)가 더해질 때 비로소 오감(五感)이 완성됩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술을 마시는 즐거움이 오감 중 네 가지만 만족시키는 것을 아쉬워해, 소리를 통해 귀까지 즐겁게 하려고 건배를 했다는 낭만적인 설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회식 자리에서는 "위하여!"를 외치곤 합니다. 무엇을 위하는 걸까요? 상대의 건강, 회사의 발전, 혹은 우리의 우정...
하지만 건배의 기원을 알고 나니 그 의미가 조금 더 비장하게 다가옵니다. 내가 든 이 잔을 당신과 부딪친다는 것은, "나의 가장 무방비한 상태를 당신에게 보여주겠다"는 신뢰의 선언이니까요.
오늘 저녁, 소중한 사람들과 술 한잔 기울일 기회가 있다면 평소보다 조금 더 경쾌하게 잔을 부딪쳐 보세요. 그리고 슬쩍 눈을 맞추며 웃어주세요. 옛날 사람들처럼 독을 확인하는 게 아니라, "당신을 믿습니다. 그리고 이 시간을 함께해서 행복합니다"라는 마음을 담아서 말이죠. 뜬금없어하는 그 사람에게 건배에 담긴 이야기를 전해준다면, 그 자리는 좀 더 즐겁고, 유쾌한 자리가 될 것입니다.
자, 그럼 다 같이 잔을 들어볼까요? 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