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화. 혼밥의 시대, 우리는 진화하고 있는가?

: 고독한 미식가와 외로운 늑대 사이

by 창고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 검지를 펴며 "한 명이요"라고 말하는 건 꽤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점심시간 붐비는 식당에서 4인 테이블을 혼자 차지하는 미안함은 둘째 치고, 주변의 시선이 더 신경썼던 시절이었습니다. "저 사람은 같이 밥 먹을 친구도 없나 봐."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키오스크로 주문하고, 칸막이가 쳐진 1인석에 앉아, 스마트폰 거치대를 세팅하고 유유히 라면을 먹습니다. 대학가나 오피스 상권에는 '혼밥 환영'이라는 문구가 내걸리고, 고깃집조차 1인 화로를 내놓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르고 거대한 변화, 바야흐로 '대(大)혼밥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수백만 년 동안 무리지어 밥을 먹던 우리는 왜 뿔뿔이 흩어져 밥을 먹게 된 걸까요?


호모 혼밥피쿠스(Homo Honbapicus)의 탄생

인류가 함께 밥을 먹었던 이유는 사실 생존때문이었습니다. 맹수로부터 안전하게 식사하고, 귀한 식량을 공평하게 분배하기 위해서였죠.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밥을 먹다가 호랑이에게 물려갈 걱정은 없습니다. 냉장고와 편의점 덕분에 식량 보관의 문제도 해결됐습니다.

생존의 위협이 사라지자, 우리는 '효율과 자유'를 택했습니다.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주인공 이노가시라 고로는 말합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신경 쓰지 않으며 음식을 먹는다는 포상의 행위... 이 고고한 행위야말로 현대인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최고의 치유다."


직장인들에게 점심시간 혼밥은 일종의 '동굴 들어가기'입니다. 오전 내내 업무와 상사의 눈치, 감정 노동에 시달린 뇌를 잠시 끄고, 오로지 나와 내 앞의 돈가스에만 집중하는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메뉴 통일 강요도 없고, 싫어하는 부장님의 건배사도 없는 이 완벽한 자유야말로 현대인이 누리는 특권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뇌는 여전히 외롭다

하지만 우리의 유전자는 아직 이 급격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것 같습니다. 혼밥이 편하긴 한데, 왠지 모를 허전함이 밀려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밥상 앞에 앉아 스마트폰을 켜고 유튜브들의 먹방을 봅니다.

남이 밥 먹는 모습을 보며 내 밥을 먹는다니, 조금은 어색하고 이상한 모습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사회적 대리 만족'이라고 분석합니다. 뇌는 혼자 밥을 먹을 때 스트레스 호르몬을 내뿜기도 하는데, 화면 속에서 누군가 맛있게 먹으며 떠드는 소리를 들으면 마치 함께 식사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켜 안도감을 느낀다는 것이죠.

우리는 자유를 얻었지만, 수백만 년 묵은 연결의 욕구는 버리지 못했습니다. 몸은 혼자이지만 정신은 디지털 세상 속 누군가와 끊임없이 건배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소셜 다이닝: 느슨한 연대의 식탁

재미있는 건, 최근 들어 혼밥의 반작용으로 새로운 형태의 식사 문화가 생겨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바로 '소셜 다이닝(Social Dining)'입니다.

혈연이나 지연으로 묶인 끈끈한(때로는 질척거리는) 관계가 아니라, 오로지 '취향'과 '관심사'로 묶인 타인들이 한 끼 식사를 위해 모입니다. "이번 주 금요일, 스페인 요리 같이 드실 분?" 하고 모여서, 맛있게 먹고 쿨하게 헤어집니다.

이는 현대인이 원하는 관계의 적정 온도를 보여줍니다. 너무 가까워 데이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얼어붙은 채 고립되고 싶지는 않은 마음. '따로 또 같이' 먹는 이 지혜로운 식탁이 앞으로 더 늘어나지 않을까요?


혼자 먹더라도, 차려 먹읍시다

혼밥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혼자 먹는다는 핑계로 스스로를 대접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씽크대 앞에 서서 찬밥을 물에 말아 후루룩 넘기거나, 컵라면으로 대충 때우는 식사는 배는 채울지언정 마음은 채우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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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은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라고 했습니다.

오늘 혼자 드시나요? 그렇다면 더더욱 예쁜 그릇을 꺼내세요. 편의점 도시락이라도 접시에 옮겨 담고,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보세요. 가장 소중한 손님인 '나 자신'에게 근사한 한 끼를 대접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고독한 미식가'로 진화하는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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