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동양화 올림피아>


21.jpg

이번에도 인센 티브 였다. 이번에도 모인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이유이다. 우리나라의 전통놀이인 고스톱을 치기 위해서 였다. 유럽까지 가서 고스톱을(?) 인센티브에선 흔한 경우이다. 가장 큰 문제는 연수 팀의 대부분이 본인의 경비로 온 것이 아니라 회사에서 제공해준 돈으로 여행을 온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여행에는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유럽까지 가서는 관광에는 관심이 없고 말도 안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고대 올림픽이 열렸던 곳에서 때아닌 동양화 올림피아가 열린 것이다.


특히 부부동반은 더더욱 관광 보다는 본인들의 친목을 위해서 움직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엔 또 다른 형태의 부부 모임이라 처음엔 어색한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는 모 대기업 지방 핸드폰 대리점 사장단과 그의 부인들 24명이 함께 이집트 그리스 터키를 함께 하기로 했다. 전국에서 순위가 좋은 대로 유럽과 동남아 중국을 나누어 포상 휴가를 보내주는 것이다.

좀처럼 나오기 힘든 유럽 연수에 특히 사모님들은 많이 들뜬 모습이었고 같은 회사 이름으로 같은 직종의 일을 하고는 있지만 서로를 알지는 못하는 대표들께서는 약간의 어색함을 뒤로 하고 나름대로의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면서 몇일의 시간이 흐르자 남자 분들끼리는 같은 업종에서의 업무로 공감대를 형성해 가면서 친해 지기 시작했다.


그게 문제가 될거 라곤 생각하지도 못한 채 말이다.

연수팀의 단점은 일정이 끝나고 나면 그 시간을 견디기 힘들어 하는 것이다. 저녁 이후 문화가 없는(특히 밤문화라고 꼬집어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유럽 에서는 호텔 주변에 갈 곳도 없고 번화가를 가려면 다른 이동 수단을 이용해야 했기 때문에 번거 롭다는 이유로 호텔 방에서의 뭔가의 건수를 만들려고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술 한잔을 하려면 로비에 있는 바를 이용해도 되는데 말이다.


문제는 나도 이해가 안가는 것이었는데 가방안에는 항상 화투가 있었다는 것이다.(사실 전에 있던 여행사 담당자 께서 나이 많으신 분들 여행을 담당하다 보니 화투 찾으실 수도 있다는 말에 사가지고 가지고 다니던 것이 계속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해서는 안 될 말을 나도 모르게 뱉어 내고 말았던 것이다.

“혹시 심심하시면 화투 드릴까요?”


이후의 후 폭풍은 생각도 하지 못 한 채 말이다.

꼭 이런 팀의 특성은 누구 한명이 분위기를 만들어 가려는 경향이 있다. 부부 동반의 두드러지는 특징은 남편들이 너무 심심해 한다는 것이다. 물론 오랜 시간 동안 고생해온 부인 들과의 시간 이지만 일정이 끝난 후에는 마땅히 할말도 없고 할 일도 없고 그러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가 주동을 하여 한 방에서 모이기로 한 것이다. 문제는 누구도 우리 방으로 오라고 하지 못 한채…..



21-1.jpg

<그리스의 부서진 유적지 처럼 이날은 내 마음도 부서지고 말았다.>

그때였다. 어디서 모이느냐고 어디로 가지고 갈까요? 라고 말을 하던 나에게 청천벽력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 가이드 방으로 갑시다 어짜피 다들 부인들이 있으니까 모이기도 에메하고 하니 가이드 방이 차라리 낫겠네…”

“그래요 그러는게 낳겠네, 거기로 갑시다. “

‘젠장 이건 아니다 정말 아니다. 하필 내방으로 오다니 ㅠ.ㅠ. 요놈의 입방정 요놈의 오지랖. 괜히 쓸데 없는 소리는 해가지고 24시간 일을 하게 생겼다. 정말 아이고 …’


시간을 정하고 나의 방으로 모이기로 했다. 그나마 다행 인건 일행 중에 한 분이 내 마음을 이해해 주는 분이 계셨던 것이다. 시간을 정하고 모이기로 하자 한 분이 내 팔을 슬쩍 잡아 끌더니 이렇게 말씀하신다.

“어짜피 거기 있어봐야 불편하고 고생만 할 것 같으니 저랑 로비서 맥주나 합시다. 시간 맞춰 방만 안내해 주고 빠져요. 내가 몇일 경험해보니 이 분들 보통 아니던데 괜히 잔심부름 하면서 고생하지 말고 ”


이런 천사가 없었다. 다행히 나를 구해주는 분이 나타난 것이다. 오케이 이렇게 된 이상 로비가 아닌 밖으로 갈 데가 있나 알아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호텔이 아테네의 번화가인 신타그마 광장까지 택시로5분 정도의 거리였다. 방을 안내하고 그분과 둘이서(사모님도 말씀을 드렸지만 일정 초반이라 시차 적응이 아직 안된 관계로 빠지시고)신타그마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문제는 다음 날이었다. 이미 나의 방은 더러울 데로 더러워져 있었고 그나마 다행인 것은 침대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상태였다. 거울 밑의 책상은 어제 고스톱을 치면서 마셨던 플라스틱 소주 병과 작은 신라면 사발면의 흔적들이 그득했고 나름 치운다고 치운 상태 였지만 만약 이 방이 본인들 방이었으면 이렇게 하고 갔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저분 해져 있는 상태였다.


다음날 일정이 끝나고 호텔에 들어 가는 순간 갑자기 어제의 기억이 생각났다.

‘아 설마 오늘 또 모이는건 아니겠지?’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나름대로의 작전이 생각났다. 버스에서 내린 다음 바로 인사를 드려야지 아니면 엘리베이터나 로비에서 또 다시 방키를 빼앗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서 버스에서 내리는 데로 인사를 다 드렸고

“수고하셨습니다. 잘 쉬시고 내일 뵐게요”


들어가지 못하고 밋밋하게 엉거주춤 하고 있었는데 그날은 마침 이번팀 담당 여행사 임원분이 우리팀과는 반대 방향으로 일정을 돌고 계신 상황이라 일정이 겹치는 날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만난김에 로비 ‘바’에서 잠깐 시간을 내서 만나자고 하셨다. 그분은 우리와 달리 이집트를 가셔야 해서 저녁 비행기로 공항 가는길에 잠깐 들리셨다는 얘기 였다. 일정의 문제가 없느냐는 말과 함께..


일정에 문제가 없지만 일정후의 문제가 있다는 말씀을 드리자 그리고 어제의 전후 상황을 얘기를 드리자 절대로 오늘은 방으로 들어가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여기 있다가 나 갈때까지 숨어있다가 가라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이번 호텔은 5성 호텔이면서 내부가 나름 복잡해서 ‘바’를 찾으려면 안쪽으로 깊숙히 들어와야 하는 구조였다. 그래서 상무님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다음 있을 팀의 계획도 함께 얘기 하고 있었다. 시간이 한 30여 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어디선가 한국말이 들리는듯 하더니 어제의 그 행동대장 격이었던 분이 한 마디 하는 것이었다.

“아니 여기 있었어? 한참 찾았잖아”(인솔자 초창기엔 나이도 어리고 경험이 적다보니 반말을 하는 손님들이 많았다. 지금도 가끔 있지만 지금은 참지 않고 한마디 한다. 왜 반말 하시냐고)

그 분은 나를 찾아서 호텔 여기저기를 찾았던 것이다. 심지어는 밖에 있는 줄 알고 호텔 주변도 찾았다는 것이었다.( 지금 같았으면 전화를 하거나 톡을 하겠지만 그때 당시에는 전화가 거의 되지 않았고 방번호를 알려 줄 때 였는데 방에 사람이 없으니 아마도 여기저기 찾아 다니신 듯 했다.)


모르는척 한마디를 슬쩍 건넸다.

“무슨 일이세요? 필요한거 있으세요?”

“방키 방키..얼른..지금 어제 복수전 한다고 난리 났으니 얼른 방키 달라고”

그렇게 나는 오늘도 방키를 빼았기고 말았다. 오늘도 내 방은 남의 손에 의해서 아니 손님들의 하우스가 되고 말았다. 이제 임원분도 공항 갈 시간이 다 되어가고 지금 이라면 책을 좋아하니 책을 볼 수도 있고 와이파이면 유트브도 볼수 있었겠지만 그때 당시는 그런게 될 때가 아니었다. 고민을 하던 끝에 어제 그 손님에게 다시 전화를 드렸다. 상황이 또 이렇게 되었다고..


“아 진짜 못된 사람들이다. 아무리 사장이라도 나도 대리점 사장이지만 이건 너무 하는데..그래서 어디에 있어요? 어제 거기 괜찮던데 오늘도 나갑시다. 오늘은 우리 집사람도 함께.. 어제 다녀온 얘기를 했더니 오늘 같이 가보고 싶다고 하네요. 안 그래도 어제 분위기 좋아서 혼자 나갔다 온게 마음에 걸렸는데 같이 갑시다. 어제 여운도 있고 ”


너무 감사했다. 너무 너무 감사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한번 신타그마 광장을 가게 되었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중의 하나인 터키의 대표적인 케밥을 먹으면서 맥주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들어왔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12시가 조금 넘어서 들어왔는데 아직도 내방에선 게임이 한창이었다. 그리곤 게임을 하는 모습을 보곤 경악을 금할 수가 없었다. 침대 위에 5명이 앉아서는 돌아가면서 화투를 치는게 아닌가..게다가 어제 조금은 치워 진 듯한 모습이였던 사발면과 소주의 빈병들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너무 일찍 온건가?’

‘이게 뭐지? 12시가 넘었는데 그리고 각방의 사모님들은 이런 모습을 상상이나 하시겠는가 그리고 이시간까지 이미 익숙하신건지 참….’

그렇게 경악을 하지 못하고 얼른 씻고 준비를 하는데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러고는 이불을 침대 바닥 옆으로 던지더니 누군가가 마치 본인 방인냥 한 마디를 하신다.


“저기서 자. 끝날려면 아직도 멀었어. 자~~~ 얼른 돌리시고”

‘여기가 누구 방인지 도대체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는 건지’

헐~~~

‘우리나라 처럼 일반 바닥도 아니고 신발을 신고 다니는 곳에서 자라고라고라’


도저히 그냥 잘 수가 아니 자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맥주를 거나하게 마시긴 했지만 이 상태로는 도저히 불가능 했다. 책상을 보니 여분의 소주가 남아 있었다. 물론 따르고 남은게 아니라 플라스틱 몇 개 몇 병에 소주가 남아 있었다. 화장실에서 컵을 가지고 와서는 소주를 따랐다. 그리고는 뜨거운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맥주를 마셨지만 허기도 조금 있고 해서 사발면에 소주를 먹기로 한 것이다. 얼른 물을 끓여 사발면에 붓고는 익기를 기다렸다. 그리고는 소주를 벌컥 벌컥 단숨에 마신 다음에 사발면을 먹고나니 급하게 마셨는지 취기가 올라오는 듯 했다. 도저히 잠 잘 엄두가 나지 않았고 그래도 다른 이불을 깔아 바닥에 깔고 다시 덮는 이불로 덮은 다음 나름대로의 잠자리를 만들었다. 그러고는 소주를 마시고는 과감해 졌는지 한마디를 하고 눈을 감았다.


“가실 때 방 값 내고 가세요.”

취기에 나온 용감한 한마디 였다. 하지만 게임에 빠져서 인지 아무도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잠이 들었고 잠깐 깨어서 일어나보니 시간이 새벽 5시반 침대위는 깨끗이 치워져 있었고 나는 다시 침대위로 올라가서 한시간여의 시간을 좀 더 자고는 다음날 일정을 소화 할 수 있었다. 물론 그때 부턴 열이 받아 있는 상태로 말이다.


그래도 국방부 시계는 간다고 했던가? 나의 투어도 이제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는 날이왔다. 수속을 끝내고 게이트 앞에서 탑승을 앞두고 있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각 지방에서 오신 분들이다 보니 인천에선 나름대로 인사할 시간이 될 수 없을 것 같아 미리 인사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각자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드디어 끝나는 구나 그래 시간은 다 가게 되어있어.’


속으로 이렇게 혼자 말을 하고 있는데 그날 게임의 주동자였던 그 분이 갑자기 가운데로 나오시더니 고생 많았다며 갑자기 나를 부르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얼마 되지 않는다면서 손으로 꾸욱 누르시더니 나의 손바닥 안으로 돈을 밀어 넣는 것이다.

“얼마 안되니까 너무 서운해 하지 말고”

끝까지 반말 이었다. 그분은

그러고는 인사를 다같이 하고 공항 화장실에서 몰래 돈을 세어봤다.(여기서 공감하는 분 많으실 것이다. 사람의 생각은 거의 비슷하니까)


헉.

사회 초년병 시절이었고 수입이 들쭉 날쭉 했던 입장에서 봤을 때 굉장히 많은 금액이었다. 현재 돈으로 30만원 정도 되는 돈이었으니 그때 당시면 큰 돈이었다. 물론 지금도 작은 금액은 아니지만)

‘아니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쿨하게 빌려 드릴 걸 그랬나? 아님 하루만 더 있었어도 되는데 그럼 쿨하게 빌려 드릴 수 있는데..뭔가의 아쉬움이었는지 이런 생각이 드는건 왜 였을까.’.

참 인간은 간사하다.

그렇게 모든 스트레스를 날린 난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기내에서 편안히 잠이 들고 말았다.


여행쟁이의 팁 : 단체 여행을 가더라도 호텔내에 있는 BAR 라던가 근교를 다녀 보시라 얘기 드리고 싶다. 위치에 따라 어려운 곳은 있겠지만 요즘은 구글을 조금만 이용하면 접근이 쉽다보니 조금만 용기가 있다면 도전해 볼 만하다. 나중에 ‘그리스까지 가서 방에서?’ 라고 후회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경찰을 부르겠어요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