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절뚝 2>

*이어서 계속 됩니다.*


일반적으로 런던에서 투어를 끝내고는 유로스타를 타고 파리로 이동하는 스케줄이 일반 적인데 이번에는 비행기로 런던 게트윅 공항으로 이동을 하여 비행기로 로마로 먼저 향하는 스케줄이다. 별로 추천 하고 싶지 않은 일정. 하지만 여행사 입장에서는 모든 상품을 셋팅해서 상품 판매를 해야 하기 때문에 여러가지 변동을 주어 상품을 판매한다.


이번 코로나를 통해서 단체 여행이 어떻게 진행이 될지 이제 아무도 알 수는 없지만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여행사 입장에서의 상품이 아니라 고객의 입장에서 상품을 셋팅 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렇게 일정이 일반 적이지 않으니 나도 함께 불편한 입장 이었다.


그리고 유럽의 공항에는 이미 많은 시스템이 바뀌어 있다. 우리 나라 공항도 이제 많이 바뀌 었지만 이미 5년전인 이 때도 게트윅 공항의 모든 시스템은 기계화가 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도와 주지 않는다. 기계로 탑승권을 빼고 짐표까지 붙여서 개인이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차분히 기다리면서 손님들과 수속을 마치고 대기하기 까지 불만 없이 손님들이 잘 따라와 주신다. 감사하게도.. 고마운 분들이 너무 많지만 이 팀에도 함께하면서 이해해 주신 손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그렇게 비행기는 런던을 떠나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에 도착을 했고 수속을 마치고 얼른 호텔로 이동을 하니 이미 시간이 자정이 훌쩍 넘었다. 참 이 스케줄 정말 맘에 안 든다. 다음날은 6시반에 나가야 하는데.. 누가 그랬던가? 서유럽 스케줄은 여행이 아니라 훈련 이라고 또한 어떤 가이드는 시어머니 보내 드리는 스케줄 이라고도 했다. 매일 매일이 전쟁이었다. 그나마 다행인건 로마와 파리에선 같은 호텔을 이틀씩 자는 여유가 있다. 매일매일 바뀌지 않고 말이다.


그렇게 몇 시간 뒤인 5시 40분에 식사를 하고 6시반에 호텔을 출발하려고 하는데 어제의 피곤한 스케줄 탓인지 지각자가 속출했다. 솔직히 오늘은 나도 늦게 나왔다. 첫날 병원에 절뚝 거림에 두배로 힘든 스케줄을 소화하고 게다가 2시가 넘어서 잠이 아닌 잠을 청하니 제대로 일어 날 수가 없었다. 절대로 늦지 않는 편인데 몸이 말을 안 들으니 어쩔 수가 없나 보다. 6시반을 훨씬 넘긴 시간에 꾸역 꾸역 모여 이탈리아 남부인 나폼소 (나폴리 폼페이 소렌토)로 가는 이탈리아 남부 일정.


편도로 3시간에서 3시간 반을 이동을 하고 나면 그 근방에서 투어가 이루어지고 소렌토와 함께 카프리라고 하는 곳이 옵션 관광으로 진행이 된다. 로마 다른 가이드님에 비해 젊은 우리 가이드는 굉장히 열심히 버스에서 설명을 한다. 모든 사람들이 많이 지쳤을 법도 한데 굉장히 열정적이다. 작은 키에 열정이 나를 생각하게 하지만 지금 컨디션이 엉망인 나는 계속 졸음이 온다.


그렇게 3시간을 달려 폼페이 유적지에 도착을 하고 나는 여전히 절뚝 거리고 있다. 무슨 대책이 필요 할 듯 했다.

가이드 님께 양해를 구하고 점심 식사를 할 식당에 남기로 했다. 팀은 폼페이 유적지를 한 시간 가량 투어를 하곤 근방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이후 일정을 진행을 한다. 일정이 끝나려면 한 5시는 되어야 하고 그리고 다시 호텔이 있는 곳까지 이동을 하려면 3시간 이상 적어도 9시는 되어야 호텔에 도착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정말 바보 처럼 이곳 저곳 왔다 갔다 했지만 도움은 하나도 되지 않았고 통증만 계속 되었다. 점점 심해 지는 듯 하더니 정말 누가 보면 마치 장애인 처럼 다리를 심하게 절똑 거리기 시작했다.


1997년 훈련소에서 고개를 잠깐 딴 데를 본다고 앞으로 나오라고 해서 엎드려 뻗쳐 있었던 적이 있었는데 정말 서러웠다. 갑자기 그때의 나쁜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서러웠다. 견딜 수 없는 고통이 계속 밀려 오기 시작을 했다. 그 사이 팀은 도착했고 팀들의 식사가 끝나고 팀은 무슨 문제가 있느냐 는듯 나는 신경쓰지 않고 다음 일정을 위해 또 다른 장소로 이동을 했다. 너무 고통이 심한 나는 도저히 안되겠다 는 듯 식당 직원에게 요청을 하여 병원에 데려 달라고 애기를 했다. 알아 듣는지 못 알아 듣는지 우선 병원으로 택시를 타고 이동을 했고 사람들이 그 안에 많이 기다리고 있었다. 접수를 하기 위해 두리번 두리번 거리고 있는데 아무도 나에게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도와 주는 사람도 물론 없다보니 더 아픈 것 같았다.


‘아 미치겠다. 너무 아픈데 왜 아무도 도와 주지 않는 거지? 그래 말이 안 통하니 어디다가 하소연 할 수도 없고’

이제 생각해보니 코로나가 터진 지금 왜 그리 많은 이탈리아가 코로나 초창기에 왜 그리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도 병원에서 신경 써주지 않고 자기가 스스로 나서서 하지 않으면 치료를 받을 수 없는 그런 시스템인 것으로 기억이 난다. 결국 30여분간의 고통 스런 시간을 보내고 다시 식당이 있는 제자리로 왔다. 아침에 아니 어제부터 절뚝 거리던 모습을 보던 기사님이 안 쓰러운지 다른 기사들과 나에 관한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여기 봐라 이 인솔자는 어제부터 아파 하던데 도대체 뭐가 문제 인지 계속 저러고 다니고 있어. 어디가서 치료를 받을 수가 없을까? ”


기사들과 얘기하며 나를 손가락으로 가르치는 기사를 보니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의 얘기를 들었다고 해도 이탈리어로 얘기하니 알아 들을 수는 없지만

(이 재미있는 기사는 이후 나를 만나면 장난으로 절뚝 거리는 흉내를 내곤 한다. 정말 큰 도움을 준 기사이다.)

27-1.jpg

<사진 상으로는 크게 보이진 않지만 발목이 엄청 부어 있었다. 한국에 와서 치료를 다시 받아보고 나서 나는 이게 통풍이라는 것을 알았다.>


고통스런 시간은 그렇게 흘러 투어를 마치고 온 팀과 합류한 나는 호텔 근방으로 3시간 여를 또 이동을 했고 물론 고통 스런 시간은 그대로 계속 되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 시간을 버텼는지 아직도 생각하면 까마득 하다. 하지만 결국 시간은 흐르고 호텔로 이동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호텔 직원한테 아니 가이드님을 통해서 우리 버스 기사는 의견을 전달을 했다. 여기 응급 치료를 할 수 있는 곳이 있으니 거기를 가 보는 것이 어떻냐는 것이다. 당연히 무조건 간다고 얘기를 했다. 물론 로마에 있는 큰 병원은 아니 겠지만 이곳 피우지(우리 숙소는 로마를 1시간 반 정도 벗어난 아주 작은 도시)에도 사람이 사는 곳이기 때문에 병원이 당연히 있을 것으로 생각을 하고 데려다만 달라고 말을 했다.


여러 번 와서 숙소를 사용 했던 곳이지만 이렇게 이런 치료 시설이 있는 지는 나도 처음 알았다. 그렇게 기사는 팀을 데려다 놓고는 나를 위해 다시 운전을 해서 마을 위쪽에 위치한 병원에 데려다 주었다. 런던에서의 병원에서도 크게 치료를 받지 못한 나 였지만 여기서는 뭔가 다른 치료를 원한다는 마음을 꼭 전달하기 위해 이 작은 마을의 응급 센터를 찾게 된 것이다. 8시 이후부터 아침 9시까지 응급 상황에서만 운영이 된다는 그런 아담한 응급 센터였다.


뭐 가봤자 낳아지지는 않겠지만 아무튼 방문은 하게 되었는데… 하지만 여기서 커다란 반전이 일어났다.

작은 곳이었고 의사 선생님도 가운을 입지 않고 평범한 (우리로 따지면 동네 아저씨 같은 모습)으로 나를 안내했고 나는 하루 종일 걷느라 고생을 한 발을 처음으로 편안한 자세로 의자 위에 올려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띄엄 띄엄 영어를 하면서 안내를 하는 의사는 별로 믿음이 가지 않았고 그냥 영국에서 처럼 또 시간만 지나고 가나 보다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의사는 굉장히 꼼꼼히 나의 몸상태를 체크하면서 이름 모를 로션과 함께 붕대를 감아 주었고 마무리로는 엉덩이 주사를 한 대 선물 해 주었다.


엉덩이 주사? 유럽에서? 18년 동안 적어도 1년에 한 두 번은 거의 손님들 문제로 병원을 다녔던 나 였지만 주사를 놓아 주는 곳은 처음 이었다. 사실 주사는 우리나라도 요즘 웬만해서 처방 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얼마전에 맞은 어깨 주사 정도 말고는 주사는 정말 오랜만에 구경 하는듯 했다. 하지만 그 효과는 정말 말 그대로 직방 이었다. 말 그대로 직방…



27-2.jpg


<보험 처리를 위한 의사 소견서를 적어주고 있는 의사 분, 정말 세세한 치료에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린다. 하지만 너무 적은 금액이어서 보험 처리는 하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 온지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 순간부터 발목의 붓기는 빠져 부상이 없었을 때와 거의 같은 수준의 상태 였고 정말 얼마만에 멀쩡해진 발목을 보는 건지 반갑 기도 했다. 거의 3일이 되었고 너무나도 아픈 상태로 절뚝 거리면서 다녔는지 갑자기 다시 한 번 의사의 얼굴이 떠오르는 순간 이었다. 너무나도 고마웠고 너무나도 기분이 좋았다. 이 작은 피우지 라는 동네에서 이런 치료를 할 수 있는 곳이 었었다니…


그렇게 발목은 정상을 되찾았고 멘탈도 거의 정상을 되찾은 듯 했다. 하룻밤을 자고 나서 아침에 손님들을 즐거운 얼굴로 맞이하며 멀쩡하게 걸음 걸이를 걸으니 손님들도 이젠 괜찮으냐고 한 분 한 분 물어보기 시작한다. 그랬다. 거의 컨디션이 괜찮아 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방심을 해선 안된다. 가장 걷는 코스가 많은 로마에서 방심을 하면 안 되었고 이후엔 3일 정도는 현지 가이드가 없는 일명 노 가이드 구간이 나온다. 베네치아를 떠나서 스위스 그리고 떼제베를 타고 파리로 가는 동안 까지는 혼자서 일정을 진행 해야한다. 그러므로 오늘은 휴식이 필요 했고 그리고 휴식을 하면서 가능 한 동안은 병원에서 마무리 치료를 받고 싶었다. 그렇게 모든 분들께 오랜만에 인사를 드리고 나서는 전후 상황을 말씀을 드리고는 하루 더 쉬겠다고 허락을 받은 후 호텔에 남기로 했다.


그렇게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호텔 직원과 함께 시간이 되어 병원을 찾았는데…어제 처럼 그 의사는 밝은 표정으로 나를 맞아 주었다. 앞이 보이지 않았던 아픔의 끝이 끝나가는 순간 그렇게도 열악하게 느껴지던 이탈리아의 의료 시스템이 조금 이나마 나에게 도움이 되는 순간 이었다. 그런데 어제 치료를 처음 받으러 왔을 때 등록 이라는 걸 하면서 등록비를 15유로를 냈는데 비슷한 치료를 받고 그냥 가려니 한국 정서상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무료라는 얘기를 듣기 전에는 자연 스럽게 얼마 인지를 묻게 되었는데 의사는 계속 무료 이니까 가도 된다고 했다. 그냥 가도 된다고 했는데 그냥 가도 된다고 했는데 왜이리 발은 떨어지지 않는지 물론 이미 영국에서 치료를 받은 후에도 아무것도 지불하지 않고 나오기도 했지만 여기서는 달랐다.


심지어 영국에선 약이 비싸니 편의점을 가면 진통제를 먹으라고 했는데 그 진통제도 잘 듣질 않았고 그 잘 듣지 않는 진통제도 오남용을 막는 다는 목적으로 두개 이상 사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그런데 너무나도 친절한 여기에선 그냥 가려니 찝찝함이 계속 남는 느낌 이었다. 우선은 두 번째 치료를 마치고 남는 시간을 이용해서 다시 한번 가기로 했다. 교통이 불편한 시골 동네에서 여러 번 요청을 하는데도 번거 롭기도 할 텐데 불평 없이 데려다 주는 호텔 매니저 에게도 너무나도 감사했다. 아무튼 마지막 치료를 하러 병원에 도착했고 이번에도 혼자 있던 의사는 나를 정성 스럽게 치료를 해 주었고 정말 치료를 받고 그냥 나올 수 없었던 나는 습관 적으로 돈을 꺼내서 팁이라며 전달을 했더니 의사가 고맙다며 받는 것이었다.


병원에서 팁 이라며 의사에게 건넨 사람이나 그걸 받는 사람이나 정말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을 정도로 재미있는 상황 이었지만 그래도 마무리 치료를 받고 20유로를 받은 의사는 웃으면서 나를 보내 주었다. 생각 해보니 치료를 받기 위해서 등록을 할 때는 15유로를 냈는데 고맙다며 팁을 20유로를 준 것도 재미있는 상황이었다. 알고보니 이탈리아의 의사들은 공무원이라고 하던데 정확한 시스템 까지는 모르겠지만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기사님과 호텔 매니저님) 그렇게 완벽한 치료를 받은 나는 이후에 남아 있는 스위스 일정과 프랑스 일정을 잘 마무리 하고 귀국 할 수 있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18키로를 감량하여 가지고 있던 질병을 모두 떨쳐내고 혈압약, 통풍약, 고지혈증 약등을 끊고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여행쟁이의 팁 : 패키지 여행중의 기본 포함 사항 중에 여행자 보험이 들어 있다. 그래서 여행중에 발생 한 부분에 대해서는 기본 적으로 정해진 한도 내에서 병원 치료를 해 주는데 가끔 비용을 두려워 한 나머지 치료를 꺼리는 부분이 있는데 투어 도중 발생 하는 건강상의 문제에 관해서는 어디 서든지 치료를 받고 해당 서류를 챙겨서 한국으로 가져 오게 되면 향후 치료나 보험 처리 하는데 사용될 수 있으니 치료가 끝날 때까지는 꼭 가지고 있는 것이 좋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어쩌다 절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