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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일 Feb 14. 2019

사막에서 찾은 바늘

“한국에도 사막이 있다는 거 알고 있어?” 


“설마” 


“관광객을 모으기 위한 포장이 조금 있긴 한데, 바다와 인접한 지형에 모래가 많이 쌓이는 곳이 있어. 사진 찍으면 사막의 거대한 사구 같아 보이는 그런 곳들 말야.” 


“진짜야?” 


“근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내가 얼마 전에 여행 다녀오면서 그 해안 사구를 걸었는데, 재밌는 일이 있었어.” 


“야. 기대하게 하지 마. 별로 재미없는 거잖아. 다 알고 있다고.” 


“눈치 빠르네? 별건 아니고, 내가 그 작은 사막에서 걷는 동안 왼쪽 발이 불편한 거야. 그래서...” 


“신발에 모래라도 들어갔어?” 


“나도 그런 줄 알고 신발을 봤거든? 근데 밑창에 웬 바늘이 박혀있는 거야. 금속 핀 모양인데 조금 녹슬어 있긴 해도 끝은 부러져서 갈라져 있는 게 영락없는 바늘이었어.” 



“하하. 사막에서 바늘 찾았네? 이건 좀 웃겼다.” 


“나도 그 생각 했지. 어라? 나는 사막에서 바늘 찾은 녀석이잖아? 운도 좋군. 근데 정작 나는 이걸 찾은 적이 없었는데 얻어걸린 거라는 생각도 들더라고.” 


“쓸데없이 진지해지는 게 네 특기지. 아무튼 우연이지 뭐.” 


“그냥... 누군가 바늘이 필요해서 찾는다고 가정한다면, 그 사람이 정말 이 바늘을 찾을 수 있을까? 사막에서 바늘 찾는다는 속담이 원래 어려운 일을 비유하는 말이잖아. 거의 불가능을 의미하는 거고. 찾겠다고 나서면서도 못 찾을 걸 아는데... 그렇다고 희망을 버릴 수는 없는 비효율적이고 불합리하고 그런 시도이긴 한데... 해보긴 해봐야 하는 뭐 그런 어중간한 상태의 모습이 떠오른 거지.” 


“넌 운 좋게 그 바늘을 찾았잖아.” 


“하지만 난 전혀 생각지도, 원하지도 않았던 일이었지. 오히려 성가신 일이었잖아.” 


“세상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냐?”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그 모래 언덕 한가운데 앉아서 바늘 뺀다는 핑계로 한동안 풍경을 보고, 바람을 쐬고, 모래를 맞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지. 머리 식히러 간 여행이었는데 신발에 박힌 바늘 한 조각이 ‘나’라는 풍선을 터뜨린 느낌? 원하는 대로 되는 거 하나 없고,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방해가 될 뿐인 바늘이 누군가는 애타게 찾는 물건이었을까 싶기도 하고.” 


“그래서 그 바늘은 어쨌는데?” 


“가져오긴 좀 그렇더라. 바늘을 보고 있으면 더 복잡한 생각이 들까 봐. 그래서 모래를 좀 판 다음에 깊은 곳에 묻어두고 왔어. 우연히든 뭐든 간에 다음 사람이 찾을 때쯤이면 닳아버렸을 수도 있겠지.” 


“악취미 아니냐? 모래밭에 바늘을 묻어두는 여행자라...”




<브런치북 소개>


[머릿속을 한 국자 떠냈더니, 이상한 글이 써져버렸다.]


남의 머리를 들여다볼 수 없기에 시작했던 '내 머릿속 들여다보기' 프로젝트. 에세이면서 동시에 창작이기도 한 '대화체' 글들은 가벼운 생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내 안의 여러 자아가 나누는 대화를 받아적어 볼 수 있을까?', '먹고 입는 게 내 모습을 만든다는데, 반대로 내 안에서 튀어나오는 건 뭘까?'라는 조금 엉뚱한 생각을 20대 초반에 가졌습니다. 내면에 귀 기울이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된 글쓰기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남들과 나눌 수 없는 이야기를 스스로 다뤄보는 재밌는 창작 도구가 되었습니다. 자아의 대화는 활자로 퇴적되면서 단단한 생각의 나를 계속 만들어 가고 있고, 조금은 의미 있는 혼잣말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방송 프로듀서를 거쳐 콘텐츠 제작을 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30대 후반의 평범한 지구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오늘도 내 머릿속에는 호기심이 몽글몽글  끓고 있습니다. 한 국자 퍼서 다듬어 짧은 상을 차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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