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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일 Feb 14. 2019

의미 없는 것들로 부터 위로 받는 시대

“오랜만이다.” 


“그래. 뭐 얼굴을 보니 별 일 없었던 모양이군.” 


“음... 이런 저런 일이 있었지만, 결국엔 널 마지막으로 봤을 때랑 별 차이가 없다는 얘긴가...” 


“뭘 또 그렇게 까지 얘기 하냐? 그냥 하는 소린데” 


“응. 알지. 근데 요즘에 좀 뭔가 꽉 막힌 느낌 같은 게 들어서 말이야.” 


“꽉 막힌 느낌?” 


“왜 한창 여론에서 소확행이다. 먹방이다 뭐 이런저런 것들이 유행하고 있잖아? 서점에 가면 힐링이다 위로다 하는 에세이가 인기 많고” 


“이제 세상 돌아가는 게 좀 보이는 모양이지?” 


“그게 실은 나한테도 작은 위로를 주는 일들이었거든. 근데 뭔가 한동안 그런 시간을 보내고 나니까 그것들도 결국 다 의미 없다는 생각이 확 드는거야. 좀 소름 돋게 말야.” 


“왜? 너 자신에게 어떤 만족감이나 위로 같은걸 주려고 한 거잖아? 뭔가 만족스럽지 않았다는거야?” 


“그게 말이지. 예를 들면 소확행 이라고 친다면...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이잖아? 그게 나한테는 맛있는 거 사먹고 가끔 혼자 극장에 가고 그런 것들이었거든.” 


“괜찮네. 적은 돈으로 만족감을... 근데 뭐가 맘에 안 들었어?” 


“그 순간에는 괜찮았지. 나도 나를 위한 선물을 준다. 힐링된다. 만족감을 느낀다. 뭐 그랬지. 그런데 시간이 지나 보니까 ‘내가 이러고 있을 때인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결국엔 다 손바닥에서 빠져 나가는 ‘모래 같은 힐링’이었구나. 근본은 달라지는 게 없는데 착각하고 있었구나 뭐 그런...” 


“너 또 멀리 나가는 거 아니냐? 어떤 형태로든 힐링이 필요했다는 건, 마음이라든가 몸이 상처 받았거나 지친 상태였다는 얘기잖아. 그만큼 바쁘게 살았단 거고.” 


“생각해보면 그 바쁘게 살아온 시간들에서 내가 얻은 것도 딱히 없었어. 돈이라도 벌지 않았냐고? 그건 그동안 날 봐온 네가 잘 알겠지. 아무튼, 결국엔 회사나 남의 이익을 위해서 소모된 느낌이 들었어. 나 자신을 위한 진정한 어떤 삶의 이력서 몇 줄 남은 게 없다고. 나 아니어도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면서 스트레스 받고, 그걸 위로한답시고 ‘없는 행복’을 억지로 만들면서 ‘와! 이건 소소하지만 지금 난 정말 행복해!’하고 착각하는 모습이었어. 내가 내 모습을 멀리서 지켜볼 수 있었다면 조금 소름 돋았을 것 같아. 영혼 없는 일들을 하면서 상처 받고, 혼자서 위로랍시고 하는 행동들이 그런 시덥잖은 일들이었으니까.” 


“뭐 언제나 그렇지만 생각하기 나름 아니겠냐. 영화를 보든 덧없는 취미에 돈을 쓰든 시간과 돈을 낭비한다고 생각하면 다 할 수 없는 행동이지. 그럼 회사 다녀와서 무슨 기숙학원에라도 다니게? 전에도 그런 얘기 하지 않았었냐? 돈 벌면서 다른 일 하는 거 쉽지 않다고.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는 행동이면 자기관리에 필요한 거지, 그런 취미에서 스트레스 더 받으면 안 하느니만 못한 거 아니겠냐. 다른 걸 찾아봐. 운동이라든가.” 


“그래, 뭔가 나에게 맞는 취미이자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지 못했을 수도 있어. 그런데 관련된 뉴스나 SNS를 보면서도 사람들이 위로받는 것의 주체가 뭔가 허망하다는 생각을 지우기는 힘들더라고. 결국엔 위로와 만족을 주는 존재가 내 성취로부터 기인해야 하지 않나 하고 생각했어. 음식을 먹고 물건을 사는 건 아주 일시적인 거잖아. 뭐랄까...” 


“즉각적인 보상?” 


“그래. 아주 쉽게 보상을 얻을 수 있다는 거지. 만족감을 말이야. 긴 시간 동안 내가 원했던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낸 다음 얻을 수 있는 인생의 성취가 아니라. 약간 즉각적인 약물 주사처럼 인간의 본성? 육체의 욕구? 그런 걸 즉각적으로 마취시키는 그런 행동과 보상이라고 생각했어. 맛집에서 줄을 조금 서고 돈을 내면 멋진 시간과 잠깐의 육체적 만족, 예쁜 인증샷이 남지. 그게 얼마나 오래 갈까?” 


“만족과 행복이라는 면에서는 네 말이 어느 정도 일리는 있긴 하네. 생각해보지 않았던 건데 소확행이 결국엔 일시적인 만족이긴 하구나. 그래도 나는 여전히 그게 나쁘다는 생각은 안 드는데? 일종의 취미일 뿐이지 생활의 큰 줄기가 되는 일이나 공부는 따로 하는거잖아.” 



“젊은 층이 취업을 못하고 연애나 결혼을 포기한다는 뉴스 못 봤냐? 결국엔 지금 유행하는 먹방이든 소확행이든 결국 나 처럼은 아니더라도 내가 무슨 시간을 보낸거지 하면서 조금 갸웃하는 시간이 올 거라는 생각이 들어. ‘포기하면 편하다’라는 말은 누가 지어냈는지 몰라도, 다들 그렇게 하나 둘 포기하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안타까워. 물론 네 말대로 스트레스 관리 차원에서 필요한 행동들이긴 한데 너무 빠지지 않아야겠지.” 


“적당히” 


“그래 적당히. 내가 이런 걸 내 모습에서 봤다는 사실이 신기할 뿐이다. 즉각적인 만족을 위한 행동을 조금 줄이면서 점차 중장기적인 성취를 위한 행동을 하기 위해 시간을 투자해야겠어.” 


“대충 뭔 뜻인지는 알겠는데, 그렇다고 나를 네 기준으로 평가하지는 말아줘. 그리고 네가 무슨 수도승이 될 건 아니잖아. 나는 널 이해하지만 여전히 작은 행복을 맛보는 일에도 장점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해. 너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지 말라는 얘기야.” 


“알겠어. 나는 내 마음의 벽 안쪽에 무슨 히키코모리 같은 자아가 있었는지 몰라. 내가 말한 것들이 어떤 변명일진 몰라도. 그 녀석이 달걀에서 병아리로 알을 깨고 나오고 싶었나봐.” 


“얘기 듣다 보니까 생각났는데, 힐링 같은 게 유행하기 전에는 내 생각에 어떤 ‘매니아 문화’가 조금씩 인정받는다는 생각이 들었어. 취미에 깊이 빠진 사람들을 철 없게 여기던 시절을 지나서 이제는 전문가로 인정 받고 취미가 강점이 된 거지.” 


“그건 조금 소확행 같은건 아닌거 같은데?” 


“그래 다르지. 먹고 살려면 일을 해야하는데 그 중에서도 만족감을 느끼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면 가장 좋을 것 같아서 이런 얘기를 한 거야. 그게 안 되면 소확행 같은 거라도 해야 스트레스 풀 수 있으니까... 뭐 그런 거 아니겠냐?” 


“그래. 내가 뭔가 더 어렵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뭔가 시대의 흐름이 있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일부일 뿐이니까. 나 자신에 충실하는 게 중요한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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