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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일 Feb 15. 2019

가짜가 주는 씁쓸한 행복

"저 아파트 진짜 오래됐나 보다. 페인트도 벗겨지고 녹물 흐른 자국도 많고... 다시 칠하기 버거워서 그냥 두는 걸까?"


"그래 이 동네가 좀 낡긴 했지. 재개발될 거라는 이야기도 들리던데?"


"난 이상하더라."


"뭐가?"


"외국에 보면 오래된 건물들이 고풍스럽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에 반해서 한국에서 근대화되면서 지은 건물들은 조금만 지나면 흉물스러워 진단 말이야."


"한국에도 오래되고 아름다운 건물도 많이 있지 않나?"


"응 맞아.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잘 정리가 안 되는데... 어째서 어떤 건물은 오래될수록 멋져지고, 어떤 건물은 흉물스러워 지냐는 거지."


"정답은 아니겠지만 내가 생각했던 거 얘기해줄까?"


"너도 그런 생각 해본 적 있었구나?"


"꼭 그런 건 아닌데, 뭐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지."


"말해봐."


"나는 아마도, 각종 화학제품? 산업혁명? 뭐 그런 것들이 일어나기 전... 그러니까 20세기 중반 전에 지어진 건물이나 의복, 생활용품들은 모두 진짜였다고 생각해. 지금은 진짜와 가짜가 섞인 시대이고 말이야."


"가짜가 섞인 시대라고?"



"사람들은 원래 아름답고 비싼 것을 가지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잖아? 그런데 예전에는 그런 걸 만들려면 정말 진짜 비싼 재료들을 가지고 만들어야 했단 말이야."


"그렇지"


"그래서 그 제품이나 건물을 만들 때는 정성을 다 해야만 했고"


"양산된 공산품이 아니었다?"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는데, 더 들어봐... 그런데 산업혁명이 있고, 공장식 산업이 발달되면서 사람들이 갖고 싶어 하는 비싼 재료들을 대체할 수 있는 흉내내기 재료들이 나오기 시작한 거야."


"흉내?"


"예를 들면, 건축 외내장재에 나무 무늬가 들어간 플라스틱 마감재나, 장판. 투명한 보석을 흉내 낸 유리와 플라스틱 공예품, 면과 가죽을 대체한 합성 섬유들 뭐 그런 거지."


"음..."


"신소재들이 나쁘다는 건 아니야, 그런 것들이 저렴하게 생산되면서 가질 수 없는 걸 저렴한 가격에 소유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건물이 오래된 거랑은 무슨 상관이지?"


"건물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 내가 소가죽으로 된 구두도 신어보고, 합성 가죽으로 된 신발도 신어 봤는데, 소가죽은 오래될수록 뭔가 내 몸에 맞게 자리를 잡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더 멋스러워졌어. 그런데 합성 가죽은 손상되면 그냥 버려야 했지. 그게 건축에도 비슷하게 적용되는 것 같다는 거야. 일제시대에 근대화하면서 지은 건물들은 부수기가 어려울 정도였대, 역사의 아픈 부분이지만 건물 자체로 놓고 보면 지금 봐도 멋진 건물들이 많아. 물론 조선시대에 지은 건물 중에 남아있는 한옥이나 사찰도 마찬가지지, 정말 정성을 들여 진짜 재료로만 지어진 건물들 말이야. 지금 봐도 아름답고 그 세월이 만들어 낸 분위기가 느껴져."


"대충 알겠다. 맞는 말인 것 같아."


"단지 외관을 아름답고 현대적으로 장식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아름다워질 수 있는 그런 건물을 지었으면 좋겠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모든 것에 적용될 수는 없는 이야기야. 워낙 방대한 분야에 해당하는 얘기이기도 하고... 정리가 잘 안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이게 맞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어."


"그게 나쁘지만은 않은 거지?"


"그렇지, 나 같은 사람은 저렴한 가격에 그런 분위기를 낼 수 있으니까 좋지. 기업에서도 더 많은 물건을 팔기 위해서 그런 걸 만든 걸 테고...  대량생산, 다양한 소재의 개발 같은 것 덕분에 예전에는 꿈도 꿀 수 없는 저렴한 가격으로 비슷하고 멋진 제품을 만들고 구매할 수 있게 된 거야.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면 결국 진짜와의 차이가 나타나니까, 일부 소비자들은 저렴한 걸 계속 새 상품으로 대체하거나, 진짜 제품으로 길게 가거나 하는 식으로 또 나뉘어 가는 게 아닐까 싶어. 고유의 예술이나 건축 양식이 요즘엔 없어지고 혼종이라고 해야 되나? 그런 것들이 나오는 이유가 신소재와 양식이 복제되어서 그렇다고 생각해. 이런 것도 결국엔 시간이 지나면 하나의 양식으로 남겠지?"


"오랜만에 뭔가 말이 터졌다? 네가 그렇게 신 나서 얘기하는 거 보니까 평소에 그런 생각을 많이 했는 모양이네."


"어? 뭐 그런 건 아닌데... 그렇다는 거지 ㅎ"


"요즘에도 제대로 진짜 재료들로 건물을 지으려면 엄청난 돈이 들어갈 거야. 그러니까 그냥 콘크리트와 여러 가지 흉내내기 재료들로 마감을 하는 거지... 그러다 색이 바래고 훼손되면 민낯이 드러나는 것 같은 느낌이야. 과연 양산형 복제품들은 나를 행복하게도 슬프게도 하는구나 ㅋㅋ"


"내가 건축가라면, 콘크리트를 가지고 오래되어도 아름다울 수 있는 건축물을 만들어 보겠어! 너의 의견에 반박하기 위해서 말이야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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