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죽음을 거부하는 존재

by 창일

"아오, 이거 마시니까 살 것 같다."


"고작 아이스 아메리카노 마시고?"


"그냥, 하루 종일 청소하느라 죽는 줄 알았거든."


"이사할 오피스텔은 아직도 정리 안 끝났어?"


"말이 오피스텔이지, 전에 쓰던 사람이 얼마나 시궁창으로 만들어놨던지... 말도 마라."


"그래서 좀 싸게 들어갔다며."


"그렇긴 하지. 하하."


"근데 이 커피 평소랑 좀 맛이 다른 거 같지 않아?"


"그런가? 지금 너무 피곤해서 차갑다는 거 말고는 못 느끼겠어. 흐흐"


"그냥 뭔가 좀 오래된 느낌도 나고... 기분 탓인가."


"아, 맞다."


"갑자기 뭐가?"


"아까 오피스텔 베란다 안쪽에 곰팡이 엄청 핀 것들 다 긁어냈거든."


"곰팡이?"


"그 베란다 안에 작은 창고 같은 게 있는데, 여름에 물이 샜는지 곰팡이가 엄청 덮여있더라고. 그걸 긁어내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라."


"곰팡이 긁다가 또 뭔 망상을 했나 보구먼?"


"그게 말이야... 음... 그 곰팡이라는 게 작은 포자들이 날아다니다가 적당한 환경을 만나면 번식하는 거잖아?"


"그랬나?"


"맞아. 아무튼, 내가 마스크랑 안경 쓰고 곰팡이를 막 긁어내는데, 그 포자들이 엄청 날리는 게 보이는 거야. 무슨 미세먼지 날아다니듯이 말이지."


"마스크 써도 소용이 없었겠네."


"그래, 바로 그거야!"


"엥?"


"그 포자들을 우리가 들이마시잖아. 싫든 좋든 간에. 근데 폐 속에는 그 곰팡이가 증식하질 못한다고."


"별... 당연히 뭐... 우리 몸에는 면역 체계가 있으니까..."


"생각해봤는데, 그 포자는 어둡고 습하고 뭔가 꿉꿉한 공간에 피어나. 죽은 동물의 사체에도 그런 곰팡이나 미생물들이 달라붙어서 분해하는 거라고. 왠지 곰팡이라는 것 자체가 죽음을 표시하는 느낌?"


"멀리 가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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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주변에 그런 미생물 같은 것들이 항상 있을 텐데, 우리는 아직 멀쩡하잖아. 그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뭔가... 공기 중의 미생물이나 여러 가지 것들이 우리의 죽음을 기다리며 호시탐탐 이 육체를 노리고 있다는 생각이 번뜩 드는 거야."


"뭐라고?"


"이 생각날 때, 혼자 그 좁은 곳에서 곰팡이 긁고 있었거든, 진심으로 소름 돋았었다."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기는 한데... 정말 너답다."


"아주 예전에 바닷가에 갔을 때, 그 소금기 있는 비릿한 바다 냄새 있잖아? 그 냄새가 뭔가 죽음의 냄새 같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었거든?"


"이건 또 뭔 소리야?"


"왜 그렇잖아... 바다에 사는 생물들도 바닷속에서 죽을 텐데... 그리고 강이나 육지에서 밀려드는 여러 가지 찌꺼기들도 있을 테고 말야. 결국 그 넓은 바다에 녹아있는 소금은 죽음의 냄새를 조금이나마 지우기 위해 녹아있는 무슨 과학 실험실의 용액 같다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고."


"..."


"아무튼 생명이라는 것의 주변에는 그 생명의 죽음을 조용히 기다리는 어둠의 존재들이 따라다니는 것 같아. 그게 과학적인 것이든 그냥 어떤 느낌적인 것이든 말이야. 그 죽음의 그림자를 필사적으로 지우는 행위 자체가 삶이고 말이야."


"그래서 진이 빠지도록 죽음의 곰팡이를 필사적으로 긁어내셨나? 너무 진지해서 으스스해지려고 하네."


"그래? 아... 빨리 이거 마시고 오피스텔 환기하러 가야겠다. 곰팡이 다 날려버리게. 가는 길에 곰팡이 제거제도 좀 사 가야겠어."


"곰팡이 제거제 정도로 죽음의 그림자를 몰아낼 수 있을까?"


"괜히 이상한 생각 해서, 악몽 꾸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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