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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일 Feb 16. 2019

끊임없이 죽음을 거부하는 존재

"아오, 이거 마시니까 살 것 같다."


"고작 아이스 아메리카노 마시고?"


"그냥, 하루 종일 청소하느라 죽는 줄 알았거든."


"이사할 오피스텔은 아직도 정리 안 끝났어?"


"말이 오피스텔이지, 전에 쓰던 사람이 얼마나 시궁창으로 만들어놨던지... 말도 마라."


"그래서 좀 싸게 들어갔다며."


"그렇긴 하지. 하하."


"근데 이 커피 평소랑 좀 맛이 다른 거 같지 않아?"


"그런가? 지금 너무 피곤해서 차갑다는 거 말고는 못 느끼겠어. 흐흐"


"그냥 뭔가 좀 오래된 느낌도 나고... 기분 탓인가."


"아, 맞다."


"갑자기 뭐가?"


"아까 오피스텔 베란다 안쪽에 곰팡이 엄청 핀 것들 다 긁어냈거든."


"곰팡이?"


"그 베란다 안에 작은 창고 같은 게 있는데, 여름에 물이 샜는지 곰팡이가 엄청 덮여있더라고. 그걸 긁어내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라."


"곰팡이 긁다가 또 뭔 망상을 했나 보구먼?"


"그게 말이야... 음... 그 곰팡이라는 게 작은 포자들이 날아다니다가 적당한 환경을 만나면 번식하는 거잖아?"


"그랬나?"


"맞아. 아무튼, 내가 마스크랑 안경 쓰고 곰팡이를 막 긁어내는데, 그 포자들이 엄청 날리는 게 보이는 거야. 무슨 미세먼지 날아다니듯이 말이지."


"마스크 써도 소용이 없었겠네."


"그래, 바로 그거야!"


"엥?"


"그 포자들을 우리가 들이마시잖아. 싫든 좋든 간에. 근데 폐 속에는 그 곰팡이가 증식하질 못한다고."


"별... 당연히 뭐... 우리 몸에는 면역 체계가 있으니까..."


"생각해봤는데, 그 포자는 어둡고 습하고 뭔가 꿉꿉한 공간에 피어나. 죽은 동물의 사체에도 그런 곰팡이나 미생물들이 달라붙어서 분해하는 거라고. 왠지 곰팡이라는 것 자체가 죽음을 표시하는 느낌?"


"멀리 가지 마라..."



"생각해보면 주변에 그런 미생물 같은 것들이 항상 있을 텐데, 우리는 아직 멀쩡하잖아. 그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뭔가... 공기 중의 미생물이나 여러 가지 것들이 우리의 죽음을 기다리며 호시탐탐 이 육체를 노리고 있다는 생각이 번뜩 드는 거야."


"뭐라고?"


"이 생각날 때, 혼자 그 좁은 곳에서 곰팡이 긁고 있었거든, 진심으로 소름 돋았었다."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기는 한데... 정말 너답다."


"아주 예전에 바닷가에 갔을 때, 그 소금기 있는 비릿한 바다 냄새 있잖아? 그 냄새가 뭔가 죽음의 냄새 같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었거든?"


"이건 또 뭔 소리야?"


"왜 그렇잖아... 바다에 사는 생물들도 바닷속에서 죽을 텐데... 그리고 강이나 육지에서 밀려드는 여러 가지 찌꺼기들도 있을 테고 말야. 결국 그 넓은 바다에 녹아있는 소금은 죽음의 냄새를 조금이나마 지우기 위해 녹아있는 무슨 과학 실험실의 용액 같다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고."


"..."


"아무튼 생명이라는 것의 주변에는 그 생명의 죽음을 조용히 기다리는 어둠의 존재들이 따라다니는 것 같아. 그게 과학적인 것이든 그냥 어떤 느낌적인 것이든 말이야. 그 죽음의 그림자를 필사적으로 지우는 행위 자체가 삶이고 말이야."


"그래서 진이 빠지도록 죽음의 곰팡이를 필사적으로 긁어내셨나? 너무 진지해서 으스스해지려고 하네."


"그래? 아... 빨리 이거 마시고 오피스텔 환기하러 가야겠다. 곰팡이 다 날려버리게. 가는 길에 곰팡이 제거제도 좀 사 가야겠어."


"곰팡이 제거제 정도로 죽음의 그림자를 몰아낼 수 있을까?"


"괜히 이상한 생각 해서, 악몽 꾸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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