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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일 Feb 20. 2019

그 자리에 남아있는 음악

“여기에 성함하고 연락처 적어주시면 돼요.”


“네. 번호 적고... 이름을...”


“기다 씨?”


“네?”


“와. 이름 멋지네요. 이기다 씨”


“네. 좀 그렇죠?”


“죄송해요. 처음 보는 이름이라. 왠지 좋은 기운이 느껴지는데요?”


“등록비는 카드로 결제할게요.”


“네. 그런데 어쩌다 장구 배울 생각을 하게 되셨어요? 요즘은 수강생도 별로 없어서 말이죠.”


“그게... 저는 뭔가 즉흥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개인기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없어서 고민이었거든요. 회사 회식이나 뭐 그럴 때 필요할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예전부터 악기 하나는 꼭 다뤄보고 싶었는데 건반이나 복잡한 악기는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아-”


“그리고 예전에 라디오를 많이 듣던 때가 있었는데, 우연히 틀게 된 국악 방송을 한참 들었어요. 타악기 리듬이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양하구나. 멋지다. 그러면서 배워보고 싶어 졌죠. 여러 가지 이유예요.”


“대부분 그렇겠지만, 깊이 들어갈수록 어려운 게 악기 다루는 일이죠. 감정이나 그때의 느낌이라는 게 미묘한 차이고 가치를 매긴다는 게 주관적이어서 세상사는 데는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사물놀이는 비교적 접하기 쉬운 편이에요. 그래서 학교나 체험 교실에서 풍물을 처음 접하는 경우도 많죠. 자- 여기 영수증 하고 카드 받으세요.”


“그런데 여기에서 춤 같은 것도 가르치나요?”


“아니요. 악기 위주로만 강습해요. 춤도 관심 있으세요?”


“아니요. 벽 전체가 거울이길래 혹시나 해서요.”


“아- 예전엔 전통무용 강사님도 계시긴 했죠. 그런데 꼭 무용이 아니더라도 사물놀이 악기를 다루는 내 모습도 거울로 꼭 봐야 해요.”


“네...”


“거울을 꼭 설치해야 한다는 법은 없어요. 하지만 저는 악기 다루는 제 모습을 볼 때마다 뭔가 남을 대하듯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같이 연주하는 사람들과 합을 맞추는 것도 편하고요.”


“거울을 보는 게 뭔가 부끄럽긴 하지만, 좋을 것 같네요. 그런데 강습은 저 혼자 하나요?”


“일단은 그렇네요. 초급반에서 같이 할 사람이 없어서 말이죠. 다른 수강생은 공연 준비하는 심화반 학생들 몇 명뿐이라서.”


“왜 사물놀이 배우려는 사람이 별로 없을까요? 왠지 제가 시대를 못 따라가는 사람인가 싶기도 하고... 죄송해요. 말해놓고 보니 무례한 질문이네요.”


“하하. 기다 씨처럼 관심 가져주는 사람은 계속 있어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계속 국악을 좋아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지금 시점에서 인기 있는 장르는 아닌 거죠. 사람들은 계속 새로운 걸 원하는데 북이나 장구, 징, 꽹과리 치는 법은 변한 게 없어요. 다른 악기들도요. 그 자리에 남아있는 음악이라고 할까?”



“시대가 바뀌면 새로운 걸 접목한다거나 변화해서 더 많은 사람을 끌어모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그런 분들도 있긴 하죠. 유행하는 음악과 섞어도 보고 하지만 그것도 잠시 호기심을 끄는 정도일 뿐인 거예요. 결국 오랫동안 살아남는 것은 묵직하게 중심을 잡고 있는 무언가예요.”


“장구 치는 법이 달라진 게 없다면, 왜 그걸 계속해서 반복하고 배워야 하는 걸까요? 나쁘게 말하면 의미 없는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아니 물론 저는 관심 있어서 왔지만 그렇다는 거죠.”


“하하. 강습생이 줄고 저도 ‘이 일을 접고 다른 걸 찾아봐야 하나?’ 싶은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때 기다 씨와 비슷한 고민을 했던 것 같네요. 일단 관심을 가지고 시작하셨으니 채를 잡으면 그 매력을 조금씩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아주 먼 옛날 사람들이 느꼈던 감정을 밟아가면서 말이죠. 아까 말한 묵직한 무언가가 사람의 마음을 때리는 힘이 있어요. 그게 꽤나 재밌는 거죠. 장구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리듬이 별로 없을 것 같지만 10분 남짓 하는 설장구만 들어도 정말 다양한 리듬이 뽑혀 나오거든요.”


“저도 인터넷에서 이것저것 들어보면서 그런 게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여기까지 온 거죠.”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장구 리듬의 조합은 대부분 나와 있다고 보시면 될 거예요. 더 특이한 것들도 있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리듬은 살아남고 어떤 것은 사라졌겠죠. 하지만 기다 씨가 배울 때, 몰입하며 어느 선을 넘어가면 진짜 장구의 맛도 알게 되고 한국 사람들에게 흐르는 특유의 흥 같은 것에 대해서도 느끼게 될 거예요. 단순하게 말하면 돈 되는 일은 아니지만, 인간의 한 부분을 채워주는 일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어져 온 거라고 봐야 할까 싶네요. 사물놀이에 매력을 느낀 사람이든 클래식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든 모두 같은 거예요. 인간을 우주의 외딴 별에 가져다 놔도 클래식이나 국악처럼 살아남는 어떤 음악을 만들어 낼 거라고 생각해요.”


“묵직한 그 무언가 말이죠? 선생님도 꽤 진지하신데요? 빨리 배워보고 싶네요.”


“이런 얘기를 한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네요. 단순한 취미를 갖고 싶어서 오신 건 아닌 것 같은데요? 기다 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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