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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일 Feb 21. 2019

흥미로운 학급 발표 시간

    수업 시간.


“야, 남자들은 다 저렇게 생각해?”


    학급 전원이 돌아가는 개인 발표 시간이었다. 오늘 발표하는 아이는 나랑 별로 친하진 않았는데, 평소에 이 반 저 반 여자애들에게 껄떡대는 걸로 유명한 놈이었다.


“굳이 얘기하자면 남자 중에서도 쟤의 특출 난 생각이라고 해두지 뭐.”


    발표자가 준비한 스크린에는 땅속에서 빠른 속도로 굴을 파며 길을 만들고 공간을 만드는 크고 시끄러운 건설 장비가 있었다. 땅을 헤집고 시끄럽게 돌아다니다가 결국은 여자들을 구하는 뭐 그런 내용이었다.


“저렴한 SF영화 같은 눈물 나는 스토리네. 아무튼, 너는 안 그렇단 얘기잖아? 하하”

“뭐... 일단은.”


    이 수업은 매주 학급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각자 나름대로 상상해온 어떤 허구의 이야기를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선생님 말에 따르면 남학생과 여학생이 만들어온 이야기에 뚜렷하게 차이가 생기는 부분이 있다. 그런 것들을 발견하고 해석하면서 개인의 성향이나 남과 여의 다름을 이해해보자는 취지의 시간이었다. 벌써 발표는 중반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고, 눈치 빠른 애들은 기말고사에서 고득점 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해석을 정리하고 있었다. 수업 의도에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네 발표도 얼마 안 남았으니 기대되는걸?”

“나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드러날까 봐 걱정되는데? 하하”

“거기 조용히 해라. 발표 중이잖니.”


    이 수업이 개인의 모든 것을 까발리는 그런 허술한 수업은 아니었다. 그저 현재의 관심사나 성향을 조금 이해하는 정도였는데, 악취미 있는 애들은 그런 것으로 놀리기도 했으니까. 아무튼 새로운 수업이라고 우리 학년부터 시작했는데, 이야기 만들라고 했더니 영화나 소설을 보고 베껴오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선생님은 크게 화를 내지는 않았고, 베껴온 내용도 결국 발표자가 어떤 매력에 이끌려서 가져온 것이라며 그 이야기를 발표자에게 대입시켜 해석해주곤 하셨다. 그런데 그것도 꽤 맞는 편이었다. (선생님이 화난 것 같기도) 선생님은 이게 무의식의 내 취향이 드러나는 수업이라 설명했지만 조금 어려운 이야기였다.


    개인적으로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들을 좋아하는 편이라 이 수업이 꽤 재밌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 발표는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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