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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일 Feb 22. 2019

사마리아인

“굿모닝!”


“그래. 상쾌한 아침... 이었으면 좋겠네.”


“뭐야, 퀭한 눈은? 어제 밤샜냐? 게임?”


“네가 재밌다 해서 ‘배드 사마리안(Bad Samaritan)’ 엔딩 보려고 달렸지. 근데 밤 안 새웠거든?”


“그거 분기별로 선택하는 게 은근 압박이던데, 행동에 따라 스토리 진행이 엄청나게 달라지니까. 그래서 엔딩은 봤어?”


“어... 그럴 뻔했는데, 이제 몸이 게임을 거부하기 시작했나 봐.”


“무슨 소리야?”


“뭔가 3D 화면이 울렁거리더니, 갑자기 엄청 메스껍더라고.”


“뭐야. 멀미했냐?”


“나는 그런 거 없는 줄 알았는데, 아무튼 머리가 엄청 아프더라고. 그래서 게임 끄고 바람 좀 쐴까 하고 집 앞 공원에 갔지.”


“방구석 폐인의 모험 1장이 시작된 건가? 하하”


“아무튼 공원에서 좀 웃긴 일이 있었는데 들어봐. 처음에 좀 걷다가 공원 한 바퀴만 뛰어야겠다 싶어서 달리려고 하는데 중간에 난데없이 바닥이 꺼져있는 거야.”


“공사 중?”


“모르겠어. 사람 대여섯 명 정도 들어갈 크기였는데, 공사 중인 모습은 아닌 거 같았어. 그 뭐냐? 싱크홀? 그런 느낌?”


“어두웠을 텐데 큰일 날 뻔했네?”


“응. 근데 그거 피해서 지나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구멍 속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더라?”


“헐. 고양이가 빠졌어?”



“자세히 보니까 두 마리가 안에서 ‘야옹-’ 하고 있더라고. 그래서 내가 구해주려고 내려갔어.”


“야. 바닥 꺼지면 어쩌려고 거길 들어가냐?”


“몰라. 그냥 고양이 데리고 나와야겠다 싶어서 들어갔지.”


“그래서 고양이 구했어?”


“근데 진짜 웃긴 게, 내가 지나갈 때는 뭔가 애타는 ‘야옹-’ 소리를 내더니. 막상 내려가니까 엄청 경계하더라고.”


“뭐. 그럴 수 있지. 길 고양이니까.”


“그러더니 냅다 뛰어서 바깥으로 번쩍 올라가더라? 그리고 사라졌어.”


“하하. 그게 뭐야. 알아서 나올 수 있었던 거였어?”


“아무튼, 다시 올라오는데 무릎까지고 난리도 아니었다. 올라오는 건 쉽지 않더라. 완전 거지됐었음.”


“근데 그 고양이들 뭐냐? 완전히 속았잖아?”


“아무튼, 한바탕 하고 나니까 머리는 좀 맑아진 것 같긴 했어. 고양이들 나름대로 거기가 좋았던 건가? 그런 생각도 들고.”


“에? 나 같으면 욕 한 사발 했을 듯.”


“처음엔 좀 어이없었는데, 생각해보니까 둘이 숨어있을 만한 좋은 곳을 찾았는데 내가 방해한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내가 오지랖 떨다 무릎 까진 거지.”


“하하. 고양이 반응을 보니 그럴지도 모르겠네. 원래 고양이는 독립적인 성격이니까. 그래서 무릎은 어떠냐?”


“아침에 보니까 멍이 좀 들었는데 별로 아프진 않아.”


“야. 인생은 실전이야. 물러 터졌군? 따라가서 잡았어야지.”


“뭔 소리야. 아무튼 고양이가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던 거잖아. 다쳤지만 후회는 없다고. 그리고 잡아서 뭘 어쩔 건데? 물러 터지다니. 내가 괜찮다는데. 상황 파악이 안 돼?”


“워워. 그냥 하는 소리지. 아무튼 됐고. 이따 학원 끝나면 네 집으로 가자. 나는 이미 엔딩 본 게임이니까, 다른 선택 하면 내가 못 봤던 엔딩 볼 수 있을걸? 제대로 훈수 둬 줄게.”


“야. 스토리 게임은 혼자 하는 거라고. NPC들에게 더 이상 자비는 없다.”


“고양이한테 맞고 NPC에 화풀이? 그러지 마.”


“너랑 얘기하다 보니까 이상하게 화가 나네? 하하”




* 본문에 언급된 게임은 가상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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