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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일 Mar 03. 2019

맨발로 도시를 걷는 방법

문득 눈이 떠진 새벽의 충동

나는 요즘 이상하게 새벽이면 말똥말똥 눈이 떠져서 30분 정도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잠들곤 한다.


그날은 비 오는 밤이었다. 깨지 않았으면 비 오는 줄도 몰랐을 정도의 세차지 않은 비였다. 문득 맨발로 비 오는 거리를 걷고 싶어 졌다.


‘미쳤나?’


새벽에 눈이 떠졌을 때는 꿈을 꾸다가 깨어나는 경우가 많았고, 뭔가 평소에는 생각지 못했던 단어의 조합들이 무작위로 일어나기도 한다. 그런데 나조차도 미쳤다고 느낄 법한 생각. 맨발로 밖에 나가보고 싶다니?


‘뭐 맨발로 밖에 나가는 게 불법은 아니잖아?’



잠옷 대신 가벼운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습관적으로 신으려던 양말과 신발을 제쳐두었다. 현관 거울 앞에서 어둠 속의 나를 한 번 쳐다보고는 우산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차갑다.’


이미 복도에서부터 발바닥에는 차갑고 까슬 거리는 낯선 먼지의 느낌이 가득했다. 마지막 현관 밖으로 나와서 ‘정말 나 미쳤어 그런데 새벽에 누가 보겠어?’ 생각하며 비 내리는 축축한 아스팔트에 발을 내디뎠다.


가장자리에 얕게 고인 물웅덩이에 발이 들어가고 이내 찰박거리기 시작했다. 발가락과 발등을 간지럽히는 빗물에 헉하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순간, 평소에 느껴보지 못했던 발바닥의 감촉들이 다양하게 전해져 오면서 잠이 확 달아났다. 만약 누군가와 마주쳐서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더라도, 그 민망함을 이겨낼 수 있을 정도의 신선한 감각들이 나를 깨웠다.


나에게 비 오는 날의 발은, 신발과 양말이 젖어 찝찝했던 기억만을 남겼다. 하지만 오늘 신발 없이 맨살을 드러낸 발은 오롯이 비를 맞으며 자유로웠다. ‘비는 찝찝하다’는 기억에 금이 갔다.


도로는 비교적 깨끗해서 발이 다칠 일은 없었다. 주차장을 넓게 한 바퀴 정도 돌고 집으로 들어왔다. 가벼운 일탈을 짧게 마쳤다. 복도에는 이내 사라질 내 발가락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샤워기로 발을 닦고 다시 잠에 드는데 발을 간지럽힌 흙과 빗물의 감촉이 환각처럼 계속 느껴졌다.


언젠가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속 주인공은 깊은 숲 속에서 맨몸으로 비를 맞는 시간을 보냈었던 것 같다. 그 정도가 아니어도 나에겐 충분했다. 이런 느낌이었구나.


그 책을 선물해준 너는 이런 기분을 알까?



♪ 아이유 ‘사랑이 잘’ (feat. 오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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