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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일 May 01. 2019

미인대회 폐지 말고

방송의 매력 상품화에 관한 대화

“왜 요즘엔 미인대회를 안 하는 걸까?”


“글쎄. 성 상품화 그런 것 때문에 사라진 거 아니야?”


“그렇긴 하지. 근데 나 어렸을 때 내 주변 어른들이 미스코리아 나가보라고 했었거든. 얼마 전에 그 얘기가 갑자기 생각났는데, 가만 보니까 언제부턴가 미스코리아나 슈퍼모델 대회를 볼 수가 없더란 말이지.”


“미스코리아? 으하하. 진심 아니지? 슈퍼모델 대회는 케이블에서 본 것 같은데 생각보다 인기가 없었던 듯?”


“야! 지금은 뭐 보시다시피 이런 상태고…. 내가 어렸을 때, 엄마 졸라서 화장하고 찍은 사진도 어디 남아 있을걸? 그땐 진심이었다고. 아무튼, 노골적인 성 상품화는 눈살 찌푸려지는 거니까 사라져야 하는 게 맞겠지. 근데 생각해보면 이상하지 않냐? 이성에 대한 매력을 뽐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잖아? 그걸 뽐내고 순위 매기는 거에 대해서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분명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은 거야. 그런 대회를 열면 참가자들이 엄청나게 몰리잖아.”


“갑자기 뭐, 미인대회를 다시 하자는 캠페인이라도 열게?”


“그런 게 아니고, 미스코리아가 성 상품화…. 아니. 정확히 말해서 여성성의 상품화였다면 그걸 폐지할 게 아니라, 반대로 남성성의 상품화를 TV 전면에 똑같이 내세워달라고 요구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거지. 무조건 폐지할 게 아니라.”


“나 참. 너는 재밌는 게, 어쩌다 하는 말들이 황당하지만, 또 희한하게 그럴듯하단 말이야.”


“아니, 미스터코리아 대회도 분명 있는데 왜 그건 TV에서 축제처럼 안 해줬냐고. 방송국에서 채널 편성하는 분들이 남자였던 거 아냐? 하하. 기왕 보여주려면 골고루 다 보여주라 이 말이야. 근육만 뽐내는 대회 말고 미스코리아 대회처럼 전체적으로 멋진 한국 남성을 뽑는 그런 대회! 아니면 미녀 미남 대회를 한 날 동시에 해버리는 거야!”


“음…. 그게 말이지. 아름다운 여성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은 남자도 여자도 모두 관심이 많은데, 멋진 남자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은 여자들만 봐서 시청률이 안 나올까 봐 그런 게 아닐까? 방송국도 먹고살아야지. 하하”


“뭐야 멋대로 분석하지 말라고. 아무튼 내가 가수 솔비나, 홍진영 같은 사람들 좋아하잖아. 예전에 TV에서 치마가 짧아서 진행자가 수건 같은 걸로 가려주려고 하니까, 예쁘게 입은 건데 왜 가리냐고 그러더라고.”


“하하. 안 봐도 그 말투 상상된다.”


“그렇지? 연예인이라서 그런지 천박해 보이지 않는 기술도 있는 것 같고, 자기만의 매력을 잘 사용하는 것 같아. 나는 분명 그런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엄청 많다고 생각해. 매력을 보여주고 싶고, 그걸 즐기는 사람들.”


“그래. 지금 말한 건 여성성 남성성의 매력만 얘기했잖아? 그런데 한동안 오디션 프로그램이 많이 방영된 것 같은데, 생각해보면 음악성의 상품화, 요리 실력의 상품화. 결국엔 다 무언가의 상품화라는 면에선 비슷해 보인다.”


“말 잘했다. TV에 나가기를 꺼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정말 내 끼를 주체할 수 없어서 방송 한번 나가고 싶어 하는 사람도 엄청 많다고. 내가 그래서 전국노래자랑 같은 프로그램을 좋아하잖냐.”


“너는 방송에 나오는 웬만한 프로그램 다 좋아하지 않냐? 그걸 다 보고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라니까.”


“사실 2배속으로 틀어놓을 때도 많아. 볼 게 너무 많아서.”


“대단하다.”


“아무튼, 노골적으로 성적인 부분만 부각하는 건 불편하고, 지양되어야 할 부분이겠지. 그렇지만 시대의 변화에 맞게 세심한 구석을 갖춘다면 분명 매력을 상품화하는 방송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남자나 여자 연습생들 데리고 오디션 하는 거나, 여자 트로트 가수 뽑는 것도 변형된 미인대회 아닐까? 네가 생각하고 있는 건 이미 전문가들도 다 계산해보고 있는 문제라고. 매력 상품화에 대한 의견 충돌을 방지하려고 순위를 매기는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잖아. 국민 프로듀서라든지, 더 팬이라든지. 결국엔 포장하기 나름이지만.”


“뭐야. 왜 이래?”


“옛날처럼 얼굴과 몸매만으로 시선을 사로잡기엔 부족한 시대야. 뭔가 공통된 범주 안에 있으면서 개개인이 미묘하게 다른 매력을 잡아낼 수 있어야 방송이 가능할 거야. 개성 있어야 살아남는 시대 아니냐.”


“그래. 얼굴만 보고 뽑는 게 아니라 힙스터 대회라든지 뭔가 그런 거 만들면 진짜 재밌겠다!”


“어휴…. 진짜 힙스터들이 그런 방송 나가겠냐?”


“기껏 얘기했더니 무시하냐? 모든 첫 아이디어는 구리다…. 그런 말 몰라?”



♪ Foster The People ‘Best Friend’ (from album SUPERMODEL)

사진. 창작글 ⓒ composition83(CP83)



<덧붙이는 글>

- 글 속 화자는 고등학생 정도의 남녀 친구사이입니다. 글을 쓰다 보니 예전의 미인대회는 폐지될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미의 매력 집중이 만드는 편견이라는 게 사회적으로 건강한 문화를 만들지는 못할테니까요. 그래서 나온 것들이 다양한 개성을 뽐내는 오디션이라는 방송 포맷인데 이것 역시 조금씩 다듬어져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 커다란 문제는 사람들의 인식 변화에 의해서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뀌는데, 그 속에 남아있는 이상한 사람들과 사건 때문에 문제가 커져버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나중에 보니 미국엔 베첼러(미혼남에게 구애하는 여성들이 나오는 경쟁 프로그램), 베첼러렛(미혼 여성에게 구애하는 남자들이 나오는 경쟁 프로그램) 같은 방송 프로그램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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