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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일 May 10. 2019

나이를 먹을수록 화를 참을 수가 없어요

가득 차 버린 감정의 창고

“나이를 먹으면서 화를 더 자주 내는 것 같아요.”


“예전엔 어떠셨는데요?”


“그게 말이죠. 화가 나도 그냥 참기만 했던 것 같아요. 딱히 하소연할 곳도 없었어요.  아무튼, 나이를 먹으면 너그러운 어른이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참기가 힘들어요.”


“친구가 별로 없으신가요? 스트레스 푸는 방법 같은 건?”


“별로. 남한테 제 얘기하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고. 밖에 어디 혼자 돌아다닐 데도 없고요.”


“그럼 어렸을 때 친구들과는 뭘 하셨죠?”


“학교도 못 마쳤는데 집안 형편이 좋질 않아서 닥치는 대로 일을 하기 시작했어요. 생각해보니까 다들 스쳐간 친구들인 것 같아요. 그러다가 이런 현실을 벗어나고 싶다. 그런 느낌으로 결혼했던 것 같아요. 가족과 떨어지려고요. 나중에 아이 낳아 기르면서 정 붙이고, 식당이고 모텔이고 잡일 하면서 생활비나 벌었죠. 다들 이런 인생이구나 생각하면서 살았던 것 같아요.”


“크게 뭐 하고 싶었다든가 꿈 그런 건….”


“딱히 없어요. 음…. 나중에 어디 시골 내려가서 살고 싶은 생각은 있네요.”


“늘 말씀드리는 거지만, 그냥 제가 하는 말은 참고만 하세요.”


“네.”


“평소에 화를 내는 빈도가 잦아졌다고 오신 거죠?”


“네.”


“저한테 이런저런 얘기 하시니까 어때요? 마음이 좀 진정되시나요?”


“몇 번 본 사이는 아니지만 이런 얘기 남한테 한 적이 없어서 그런지…. 조금 쑥스럽기도 한데, 기분 좋기도 하네요.”


“스스로 외부의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을 잘 모르시는 것 같아요.”


“네. 맞는 것 같아요. 시간이 남으면 뭘 해야 할지 모르기도 하고….”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어요.”


“저 같은 사람도 알기 쉽게 설명해주세요.”


“상상해보세요. 마음속에는 커다란 창고가 하나 있어요. 내가 잊어야지. 묻어버려야지 하고 생각하는 것들을 치워두는 ‘창고’가 있다고 그려보세요.”


“네.”


“지금이 아니라 젊었을 때의 창고는 어땠을까요? 내가 그 창고에 여러 가지 사연을 꾹 눌러 쌓아도 비어있는 공간이 많았을 거예요. 지금과 비교해보자면 그렇다는 얘기죠.”


“네. 비어있긴 해도 별로 깨끗한 창고의 느낌은 아니네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애써 누르고 참아낸 이야기와 스트레스들이 가득 쌓이게 되고 빈 공간은 줄어가겠죠. 무슨 말인지 감이 오시나요?”


“이제는 창고가 꽉 찼다는 말씀인가요?”


“비어있는 공간은 내 마음의 ‘여유’라고 볼 수 있어요. 그 공간이 적어졌다는 건 화를 눌러 담을 공간이 적어졌다는 거죠. 창고에 여유 공간이 없으니 자주 넘치게 될 테고, 넘친 화를 어찌할 줄 몰랐을 거예요. 자주 화를 내게 된 이유를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여유의 공간을 잘 관리해야 화내는 빈도를 줄일 수 있는 겁니다. 스트레스를 덜어낼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찾지 않으면 쌓이기만 하는 창고를 비울 수 없는 거죠.”


“그 창고를 그냥 비워버릴 순 없는 건가요?”


“창고라는 건 일종의 비유예요. 내가 잊고 싶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데 그걸 깨끗하게 사라지게 할 수 있나요? 충격이 크면 사라지는 기억도 있긴 하지만 보통 그렇지 않죠. 잠시 잊고 지낼 뿐 마음 깊은 곳에는 분명 남아있습니다.”


“네.”



“좋은 기억의 창고도 있어요. 마음속에서는 여러 창고의 가치가 다를 바 없지만, 바깥의 나에게는 둘을 잘 조절할 필요가 있죠. 일단 급한 대로 마음속에 눌러둔 것들도 조금씩 꺼내서 흘려보내야 하는데 그동안 그 방법을 몰랐던 거죠. 음…. 그냥 간단한 개념만 알아두셔도 돼요.”


“맞아요. 정말 그런 느낌이에요. 젊어서는 그래도 참으려고 하면 참아졌는데, 이제는 화가 막 얼굴로 올라오고 말부터 거칠게 나가요. 그 창고라는 게 꽉 차있는 느낌…. 답답할 때가 많아요. 어쩜 그렇게 설명을 잘해주시나요.”


“화가 나는 경우는 각자 다르겠지만, 상담자 분의 경우는 스스로를 억눌러서 분노의 상황을 피하려는 경향이 매우 강해요. 사람은 성장하는 동안 감정을 처리하는 방법에 대해 자연스럽게 배우게 돼요. 그런데 며칠간 얘기를 들어온 바로는, 일찍 사회에 나오게 된 상담자 분께서 어른들 속에서 내 감정을 참고 억누르는 방법만 배우신 것 같아요.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겁니다.”


“그렇지만 제가 뭘 해야 화가 풀리는지도 모르겠는걸요?”


“보통 가족들 외에는 화를 내지 않으시죠?”


“맞아요. 저도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가족들한테는 막 대할 때가 많아요.”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이 어렸을 때 봐왔던 강압적인 어른들의 모습으로 투영된 것일 수도 있어요. 당연히 화를 낼 수도 가깝게 지내기도 힘든 거죠. 가족은 모든 걸 터놓고 지내는 관계이기 때문에 내가 마음을 열어 보일 수 있는 거죠. 많은 분들이 그렇지만, 스스로에 대해 무관심하게 살아오셨어요. 이제라도 여러 가지 안 해봤던 것들을 해보면서 방법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나중에 시골에 가고 싶다고 하셨죠?”


“네.”


“많은 분들이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곤 해요. 지금 당장은 멀리 시골로 갈 수는 없으니, 시간을 정해놓고 산책을 가보면 어떨까요? 아니면 매일 일과가 끝나면 혼자서 예쁜 카페에 가본다든가 하는 작은 일탈을 시작해보는 거죠.”


“그런 건 어색해서….”


“제가 말씀드린 건 그냥 예시일 뿐이에요. 일반 병원에서 치료를 위해서 주사를 놓고 약을 먹는 것처럼, 제가 드릴 수 있는 처방은 이런 거예요.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여도 막상 해보면 기분이 많이 달라지실 거예요. 나를 들여다볼 여유를 가지면 길이 열리게 될 겁니다. 마음이란 게 보이지 않지만 어떤 규칙과 흐름이 있어요, 잘 관리해주지 않으면 상황이 더 나빠질 수도 있을 겁니다. 여기까지 오신 것도 답답해서. 그리고 큰 용기를 내셨다는 걸 알아요.”


“네. 맞아요. 제가 스스로에게 너무 무신경했던 것 같기도 하네요.”


“꼭 그렇지도 않은걸요?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아마 제가 말씀드린 것 말고 그동안 내가 화나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했던 행동이나 습관이 있을 거예요. 어쩌면 그동안 이미 잘해오고 계셨는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직접 해결해보려고 찾아오셨잖아요. 저는 그저 경험에 비추어서 조언해드리는 거예요. 결국 창고의 문을 직접 열어서 조금씩 정리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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