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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일 Jun 26. 2019

‘눈물 편집’에 관한 부끄러운 고백

때로는 시청률보다 출연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

 내가 제작했던 방송 프롤로그 중에 ‘눈물’로 시작하는 것이 몇 개 있었다. 일반인 출연자가 등장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가장 극적인 인터뷰와 눈물 흘리는 장면을 연결시킨 도입부였다. 나름 강렬한 첫 카드를 던지고 시청자의 이목을 한 시간 동안 집중시키겠다는 생각이었다.


 프롤로그는 해당 회차의 화두를 던지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로 만들어지지만, 요즘에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 프롤로그는 가장 흥미로운 장면을 나열하는 하이라이트 방식이 될 수도 있고, 모든 결론을 다 지어놓고 이유를 파보는 추리 영화의 첫 시퀀스가 될 수도 있다. 형식은 파괴되고 있고, 연출의 제약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 와중에 첫 장면부터 눈물을 흘리는 일반인 시청자의 모습이란…. 이제 와 다시 보니, 그것만큼 부담스럽고 보기 민망한 시작도 없었다.


 시청자는 TV를 보며 불편한 느낌을 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 2018년 국민여가활동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 여가 활동 1위는 압도적으로 TV 시청(46.4%)이다. 여가는 일상의 반복적이고 피곤한 시간을 벗어나 휴식과 즐거움을 취하는 것이니, 가볍고 편한 마음으로 리모컨을 드는 시청자가 많다는 뜻이 될 수 있다.


 그런 마음으로 소파에 앉아 TV를 켰는데 프로그램 시작부터 일반인 출연자의 눈물을 보게 된다면? 이목을 끌겠다던 원래 연출 의도와 다르게 불편함을 끼얹게 되지 않을까?


 사실,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마음 깊이 담아둔 무언가를 어렵게 꺼내놓는 일이거나 진심을 강력하게 호소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드라마 배우들의 눈물 연기에 많은 시청자들이 감탄하고 칭찬하는 일이 흔하게 일어난다. 깊은 감정을 훌륭한 연기로 표현하고, 극 중 인물에 공감시키며 입장을 이해하게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연기가 아닌 실제의 눈물도 다르지 않다. 뉴스나 다큐멘터리, 심지어 예능 프로그램에서 조차 진심에서 우러나온 눈물은 시청자들의 감정을 크게 흔드는 큰 효과를 발휘한다.


 하지만, 잘못 계산된 편집과 연출 때문에 그 눈물의 의미가 퇴색되거나 시청자의 몰입에 방해되는 경우가 있다. 내 경우가 그랬다. 출연자의 애틋했던 사연을 프로그램 시작부터 터뜨려 버린 것이 눈물을 가볍게 만들었다. 시청자의 마음은 아직 공감의 예열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간과했다. 혹 누군가는 '왜 눈물을 흘렸을까?' 호기심을 가지고 시청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더 많은 누군가는 '시작부터 왜 저래?' 하며 채널을 돌렸을 것이다. (사실, 프롤로그부터 에필로그까지 온전히 시청하는 사람도 별로 없지만.) 내가 느끼는 요즘 시대적인 분위기에 비추어 봤을 때 오프닝에서 흘리는 눈물은 큰 매력(흡인력)으로 다가오지 못한다.



 눈물이 주는 연출상의 긍정적인 효과와 부정적인 효과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하나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있다. 나의 ‘거짓 눈물’ 편집에 대해 고백해 보려 한다.


 큰 빚을 지고 시골로 내려온 부부가 가게를 차리고 빚을 갚으며 성공한 이야기를 편집하던 때였다. 방송을 통해 한 시간 분량에 걸쳐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다 보면, 연출자 입장에서 한 번쯤… 으레… 이쯤에서 눈물 흘리는 장면이 있었으면 바라곤 한다. 그리고 당시 촬영 내용 중에는 아내 분께서, 몇 달 전 돌아가신 친정어머니 생각에 눈물 흘리는 장면이 있었다. 하지만 친정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는 전체 이야기 흐름 때문에 빠지게 되었고, 눈물 장면은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이후 편집 과정에서 눈물 장면이 버려지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며 고민이 시작되었다. 결국, 빚지고 낙향한 인터뷰에 어머니 생각 때문에 흘린 눈물 장면을 이어 붙였다. 나는 거짓 연출을 하고 말았다.


 생각난 김에 그때 영상을 찾아서 다시 봤는데, 일반인 출연자였던 그분께 큰 미안함이 든다. 당시에도 방송이 나가기 전에 미리 연락을 드리고 이러이러한 프로그램 내용 때문에 편집을 그렇게 하게 되었는데 양해 부탁드린다고, 죄송하다고 말씀을 드리기도 했다. 알겠다고 쿨 하게 넘어가시긴 했지만, 나 스스로 불편함이 더 컸다. 방송이 나간 후 다시 한번 출연자 가족을 찾아뵙게 되었을 때, 본방송을 보면서 남편분이 ‘넌 언제 저렇게 눈물을 흘렸어?’라고 물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원래는 아닌데 이러이러하게 편집되었노라 설명하셨다고 했는데 내 얼굴이 화끈했다. 나는 속으로 프로그램을 잘 만들기는커녕 연출 핑계로,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감정을 이용한 것 아닌가 하는 죄책감마저 들었다.


 사실, 촬영 후 편집을 거치는 동안 작가를 비롯한 팀 내부 인원들의 의견, 그리고 방송국 시사 후 수정 지시 등에 의해 편집 방향이나 느낌이 달라지는 경우가 생기곤 한다. ‘이런 장면 없어?’, ‘이럴 땐 이게 붙어줘야지.’, ‘있는데 왜 안 썼어?’라는 말을 듣는다. 그때마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면 휘둘리게 된다. 나중에 출연자를 마주했을 때 양심에 찔릴만한 거짓 연출을 하게 될 수 있다. 프로그램을 책임지는 PD는 ‘나’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니라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어야 한다.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물론 대부분의 선배와 팀원의 피드백은 큰 도움이 되곤 한다. 하지만, 가끔은 고집을 부릴 필요도 있다. 전국에서 방송을 보는 불특정 한 시청자보다, 직접 교감했던 출연자의 감정이 PD에게는 더 중요하다. 방송이라는 매체에 자신을 오롯이 노출한다는 것은 큰 결정이고, 감사한 일이기 때문이다. 방송에서 그분들의 진심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나는 그걸 확실하게 정리하는데 오래 걸렸다. 여러 의견 때문이었다는 핑계를 대고 싶지만 결국 내 선택이었고, 아쉬움이 남았다.


 앞서 얘기했던 ‘프롤로그를 눈물로 시작했던 일’에 대해 더 적어보자면, 이제는 시청자들의 시각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특히, 아주 작은 거짓 연출도 시청자들은 단박에 알아낸다. 그것은 말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 플랫폼의 확산과 빠른 학습 성질에 있기도 하고, 일반인 출연자를 대상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오랫동안 많이 제작되어 오면서 알음알음 방송 출연 경험을 듣게 된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선배 PD들이 추구했던 ‘시청률 중심’의 기술적 완성도보다는 ‘진실성, 도덕적 프로세스 중심’에 기대하는 시대 분위기가 된 듯하다. 과거의 경험에 굳어진 시청률 공식이라는 낡은 정답을 놓아 보내고, 현재의 진심을 담는데 시간을 더 할애하여 나 같은 과오를 범하지 않으시길 바란다.


 다른 시각으로 보면, 눈물 흘리는 장면을 담아내는 것만이 진심을 전하는 길은 아니라는 점이다. 촬영과 편집 과정에서 얼마든지 다른 선택지가 있다. 남들은 모르고 넘어갈 수 있는 일도 나와 출연자 본인에게는 큰 거짓말이 될 수 있다. 거짓 연출을 최대한 배제하는 것이 나와 출연자를 지키고 시청자를 기만하지 않는 가장 기본이 되는 셈이다. 실제로 시청률을 분석해 봤을 때 내가 언급했던 프로그램 회차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지도 않았다.


 연출을 위한 연출로 사용된 눈물은 단지, 상급자에게 어필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될 뿐이다. 양심적이고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연출되어 보일 때, 눈물은 진심을 오롯이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더 큰 소구력과 감동을 시청자에게 전달할 것이다. 만약 그것이 나의 경험담 같은 거짓 트릭이었다면 차라리 빼버리는 용기를 내도록 하자. 때로는 완성도라는 집착을 버리고 출연자에게 진심을 다하자. 나는 이제 보여주기 식 연출로 양심을 저버리지 않으려 한다.


 오랜만에 생각난 나의 어리석었던 연출 에피소드에 대해 적어보면서, 시청자의 입장을 예측하고 출연자와의 의리를 지키며 편집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고민해본다.



BGM♪ Saito Marina 'Crazy for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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