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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일 Jun 05. 2019

PD 입봉 후 직면한 ‘결정 장애’

창의적 명확함이 필요한 직업

 프로듀서(PD)와 연출자 본연의 역할은 별개이지만 보통의 방송 PD는 그것을 겸한다. 프로듀서로서 기획 및 제작 총괄, 연출자로서 무형의 결과물을 유의미한 그림으로 실체화시키는 작업을 동시에 해내야 한다. 외주 프로덕션의 PD였던 나였기에 그 의미를 섞어서 사용한다는 것을 적어둔다.


 조연출 시절을 보내고 PD로 입봉 하게 된 후, 가장 먼저 직면했던 것은 ‘결정의 어려움’이었다. 연출의 방향이라는 것이 확실하지 않았고, 다양한 과정에 익숙지 않아 생기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흔히 말하는 결정 장애의 순간을 자주 맞닥뜨려야 했다.


 그 당시, 한 번은 나이 지긋하신 카메라 감독님과 촬영을 간 적이 있었다. 음식과 풍경을 담는 촬영이었는데, 필요한 컷들의 사이즈, 앵글, 움직임에 대해 자신감 있게 설명드리지 못했다. 감독님의 디테일한 물음에 나는 머뭇거렸다. 심지어 미리 짜 놓은 촬영 콘티에 대한 설명마저도 꼬여버리고 말았다. 마침내 촬영 감독님은 나의 불명확한 요구 사항에 화를 내고 말았다. 당연한 반응이었고, 내가 미숙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지금의 내가 생각하는 방송 프로듀서는 미리 생각해 둔 구성 흐름과 향후 편집 방향, 그리고 현장의 상황을 염두에 둔 판단으로 제작 일정을 진행시키는 사람이다. 시간이 부족하다면 다소 평범한 영상이 될 지라도 일단 밀고 나가는 추진력과 판단력도 필요하다. 종합구성물이나 중계 PD가 되어, 만나는 스텝이 많아진다면 그 영역은 더 확장될지 모른다. 어찌 됐든,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만났더라도 답답했을 것은 분명하다.


 조연출 시절에도 많은 것들을 배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PD로 입봉 한 후 매 순간 책임과 부담을 느껴야 했다. 가끔은 몸이 떨리고 침이 마를 지경이었다. 학창 시절에도 작은 것들에 대한 결정을 하지 못해서 친구들로부터 우유부단하다는 말을 듣곤 했던 나였다. 음식을 고른다면 메뉴판이라도 있으니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방송 제작의 연출 방향이라는 것에는 객관식 보기조차 없다. 그 속에서 ‘창의적이고 명확한 추진력’을 가진다는 것은 초보 PD였던 나에게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방송 PD라는 직업은 제작 과정 전반을 책임지고, 다양한 전문가들과 함께 작업해야 하는 작은 리더이다. 그 과정에서 정확한 연출 방향이 없다면 PD라는 직업을 그만둬야 한다. 머릿속에 이미 완성된 상상 속의 영상(창의성)을 가지고 정확한 지시(통제와 의견 조율)를 내려 최선의 결과물을 얻어야 한다.


 지금도 영상을 제작할 때마다 컴퓨터에 워드 프로세서를 띄워 놓고 앉았다 일어났다 적었다 지웠다 하면서 머리를 싸맨다. 그러나 예전과 비교해본다면 구체적인 목표가 있는 영상에 대해서는 확실한 방향을 가지고 빠르게 작업을 추진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초보 PD 당시에 내가 무슨 정신이었는지는 몰라도 그 순간들을 버티고 부딪혔다. 그리고 많은 PD들이 느꼈을 시간들을 나 역시 비슷하게 보냈다. 그리고 문득, 지금의 나는 어떻게 그 ‘결정 장애’를 극복했는가 싶었다.


 사실, 재미없는 대답이지만 ‘익숙함’에 답이 있다.


 유명 카피라이터인 정철 님의 말에 따르면 상상력의 적(Enemy)은 ‘부담감’이라고 한다. 심지어 그는 부담감이 뇌를 쪼그라들게 만든다고도 했다. 매우 공감되는 말이다. 앞서 언급했던 초보 PD가 가졌던 부담은 실수를 낳았고, 상상력은커녕 알고 있던 것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익숙하지 않았고 긴장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아직도 방송 PD는 제작 과정 전반을 도제식으로 배운다. 조연출은 선배 PD의 업무를 보조하고 따라다닌다. 나 역시 그렇게 배웠다. 이런 시스템이 지금까지 계속된 이유는 그 ‘익숙함’을 배우는데 시행착오의 시간이 꽤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마저도 입봉 한 후 겪는 시행착오가 더 많지만...)


 그렇다면 무엇에 익숙해져야 그 부담을 덜고 ‘창의적인 명확함’을 가질 수 있을까? 내 경험을 토대로 생각해보면 ‘내용상의 명확함’과 ‘기술적인(설명의) 명확함’이 함께 필요하다. 미리 적어두지만 이것은 내 개인적인 생각임을 밝혀둔다.


 내가 마지막으로 참여했던 TV 프로그램은 50분 분량의 휴먼 다큐멘터리였다. 정통 다큐가 아닌 비교적 자유로운 형식이었다. 팀 내에서 프로그램의 포맷과 해당 회차의 아이템이 확정되고 나면, 영상의 촘촘한 결을 채워나가는 것은 PD의 몫이 된다. 사전 취재를 통해 간략한 흐름이 나오긴 하지만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의외의 에피소드와 출연자를 향한 인간적인 발견 등,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해 가면서 가장 소구력 있는 주제를 도출해 나가야 한다. 이것이 초반에 확실하게 자리 잡으면 인터뷰 질문이나 촬영의 방향성(기법)이 확고해지게 되고, 작가와의 협업도 명확해지게 된다. 내용상의 명확함은 단지 이야기(주제)의 명확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출연자를 대하는 내 양심의 마지노선이라든지, 조연출과 스텝들을 통제할 때 가지는 태도의 기준점을 잡아두는 것도 포함된다. 당연히 시각적 결과물을 도출해야 하기 때문에 영상미에 대한 방향성도 확고하게 해두어야 한다. 이런 개념적인 상황들에 대해 생각해두고 확실하게 새겨놓는 과정이 ‘내용상의 명확함’을 구축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면 기술적인 문제를 고민해야 할 때가 온다. 앞서 초보 PD로서 결정 장애를 겪은 가장 큰 이유는, 하나의 장면을 촬영할 수 있는 수십 가지의 기술과 기법이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길이 많으니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먼저 장비의 다양함 속에서 결정이 필요하다. 아궁이 앞에서 전통주를 증류하는 장인을 촬영한다고 했을 때, 현장 카메라, 관찰 카메라, 셀프 카메라, 부착 가능한 초소형 카메라 등을 활용할 수 있다. 여러 가지 느낌을 얻어내기 위해서 고속 촬영, 인터벌 촬영, 핸드헬드 촬영, 항공(드론) 촬영 등을 추가할 수 있다. 아름다운 앵글을 담을 것인가, 현장감에 비중을 더 줄 것이냐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며, 인터뷰를 즉석에서 할 것인가 따로 담을 것인가, 조명을 사용할 것인가 등의 고민도 필요하다. 사전에 연출 방향에 대한 명확함이 있다면, 필요한 예산에 맞추어 불필요한 가지를 잘라내며 장비를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표현 기법의 다양함을 고민해야 한다. 연출자의 색깔이 드러나는 가장 큰 부분이라고도 생각되는데, 앞서 예를 들었던 아궁이 앞에서 작업 중인 장인의 모습이라면 과연 어떤 컷들이 필요할까? ‘과정을 담는다’는 식의 막연함이 아닌 아주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인물의 얼굴을 클로즈업하거나 천천히 줌인하는 것은 감정이 고조되는 효과를 일으킨다. 인물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장면이나 회상 장면 직전 등에 사용될 수 있다. 작업 중인 손을 클로즈업한 장면은 장인으로서의 세월을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막연한 느낌이 확실해지는 연출의 순간이다. 주인공의 행위를 관찰하며 다양한 느낌의 컷들을 담는 치열한 선택의 시간이 계속된다. 이런 효과를 염두에 두고 촬영 구성안에 밑그림을 그려본다. 불확실할 때는 꼭 필요한 컷들을 먼저 적어보기도 한다.


 누군가는 편집을 염두에 둔 촬영을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조금씩 익숙해지면 편집에서 앞뒤로 이어질 컷들까지 계산하며 촬영하게 된다. 단순한 교육 동영상이 아니라, 휴먼 다큐멘터리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욱 풍부한 표현을 위해 필요한 연출이다. 그리고 이 작업에서 PD가 명확하게 촬영했는지 우유부단했는지는 물론, 연출 측면의 개성이 많이 드러나게 된다.


 나뭇가지 사이로 하늘과 햇빛이 반짝거리는 한 장면을 촬영했다고 하자. 이것에 내레이션을 입히지 않아도 시청자는 이 한 장면만 보고도 낮이구나. 하늘이 맑구나. 나무가 푸른 것을 보니 여름인가 보다. 바람이 많이 부는구나. 뭔가 싱그러운 기분이 드는 걸? 따위의 정보 전달과 느낌의 생산을 하게 된다. 유의미한 컷들이 서로 달라붙고 충돌하면서 어떤 감정을 전달할지 미리 생각해두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팀 내에서 ‘모든 것을 촬영하는 PD’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는데, 나중에 어떻게 편집될지에 대한 불확실함 때문인지 더 많은 것을 담아두기 위해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 한 장면을 여러 방법으로 찍어두는 습관이 있었다. 나의 불명확한 연출 때문에 조연출이 힘들어하기도 했다.



 여러 단락을 할애해 가면서 PD로서 촬영 현장에서 결정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적었지만, 적으면서 많이 생략한 편에 속한다. 현장 관찰과 인물 촬영이 끝나면 그 장소의 때와 분위기를 전달할 수 있는 이미지 컷들을 추가로 촬영한다. 그리고 편집 과정에서 필요할지 모를 현장음을 길게 녹음해 두어야 한다. 까먹지 않고 챙겨야 할 내용이 그 외에도 많다. 현장 상황은 내 맘 같지 않으며 복잡하고 다양하다. 해는 저물어가고, 출연자는 피곤해한다. 그런 과정 속에서 나를 포함한 많은 PD들이 하루 동안 무엇을 촬영했는지 모르겠는 ‘멘붕’ 상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가 싶다. 멘붕을 겪던 상황도 여러 번 반복하다 보니, 그 속에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점점 빨라졌기 때문이다.


 촬영을 마치게 되면 작가와 상의해 가면서 편집을 하게 되고, 시사와 수정 과정을 거친다. 그 사이 작가는 가편집 영상을 가지고 내레이션 원고를 작성한다. PD는 CG의뢰 및 추가, 종편(색보정 및 자막. 종합편집), 더빙, 믹싱(효과, 음악) 등을 통해 한 계단씩 영상을 완성해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만나는 많은 담당자들과 의견 조율을 해야 한다. 단순하게 자막의 ‘인, 아웃’, 더빙의 ‘큐, 홀드’ 사인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담고자 하는 영상과 오디오의 느낌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다. 처음에 이야기했던 촬영 감독님과의 갈등이 없으려면 내 머릿속에 완성된 그림이 기술적인 명확함으로 전달되어야 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편집 과정을 정답이 없는 1000피스 퍼즐을 맞추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 퍼즐은 이렇게 끼워도 맞고, 저렇게 끼워도 맞는 신기한 퍼즐인데 아직 보이지 않는 전체의 그림과 가장 부합하는 최선으로 맞춰야 한다. 심지어 퍼즐 조각들은 내가 현장에서 직접 찍어온 것들이다. 최종 결과물에 대한 확실한 그림이 없다면 미궁에 빠져 허우적댈 확률이 높아진다. 봤던 장면을 계속해서 돌려보면서 시간에 갇힌 수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아이템이나 프로그램의 포맷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어서 작가나 팀원들은 대략의 분위기를 알고 있다. 하지만 내용을 시각화하는 과정에서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것은 오롯이 연출자의 몫인 셈이다. 그 과정에서 수없이 많이 맞닥뜨린 것이 결정 장애의 순간이었다.


 언젠가 종합구성물 프로그램 코너의 짧은 타이틀을 제작하기 위해 종편실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주인공 출연자의 움직임에 CG 처리를 해야 했는데, 내가 먼저 러프하게 컷을 붙여가면서 매 컷마다 들어가야 할 CG의 분위기와 움직임, 색깔과 타이밍 등을 자세하게 생각해두었다. 이미 내 머릿속에 완성된 영상이 있는 셈이었다. 당연하게도 작업 과정에서 내 생각은 막힘없이 CG 담당자에게 전달될 수 있었고, 함께 작업을 마친 담당자는 정확한 의도와 연출 방향을 설명해주셔서 빠르게 작업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매번 말하지만 대단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본 적도 없는 외주 제작사의 프리랜서 PD였다. 그렇지만 한 편의 TV 방송물을 제작한다는 점에 있어서, 프로그램의 규모가 크든 작든 담당 프로듀서가 선봉에 있음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성적이고 혼자 일하기를 좋아하는 성격 탓에 어려움도 많았지만, 결국 많은 만남과 협업의 반복을 통해서 ‘익숙함’이 생겨났다. 특히 PD 선배였던 팀장님의 조언과, 연차 높은 작가님과의 대화에서 많은 것들을 배웠다. 그리고 그 익숙함이 만들어낸 ‘여유’를 통해 ‘부담감’을 덜어낼 수 있었고, 더 나은 영상을 만들 수 있는 ‘상상력(창의성)’을 좀 더 발휘할 수 있었다. 나 같은 경우, 매 회 재밌는 오프닝을 만들기 위해서 많이 고민했다. 연출의 자기 복제가 느껴지지 않도록 고심했다. 고속 촬영과 망원 촬영, 컷과 컷 사이에서 행동이 이어지게 만드는 나름 영화적인 기법을 써보려고 했다. 이런 것들이 모여 내 나름의 시그니처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동료 PD들도 각자 선호하는 기법을 통해서 개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글로 정리하다 보면 내가 무슨 대단한 PD였나 오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지금도 수많은 결정 장애의 문 앞에서 머리를 싸매고 시간을 지체하다 마감에 쫓기곤 한다. 하지만 처음을 생각해보면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나 같은 작은 PD도 결국 전국에 방송되는 TV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긍정적으로 평가된 방송국 모니터 요원의 보고서를 읽으며 작은 기쁨을 느끼기도 했다. 문득 그 과정에서 겪었던 일들을 적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글이 길어진 이유를 생각해보니, 물 흐르듯 보고 지나가는 영상에도 PD들의 많은 고민이 담겨있다는 것을 누군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BGM♪ Casiopea ‘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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