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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일 May 21. 2019

관찰자로서의 방송 연출

동료들은 다 아는데 이제야 정리해보는 관찰의 개념

나는 사람들의 행동,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대화, 존경받는 희생의 이타적인 판단까지도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원활한 편집을 하려면, 촬영 단계에서 ‘액션과 리액션’을 잘 담아야 한다. 어떤 ‘행동’(움직임 그 자체 혹은 의도)이 발생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반응’이 짝을 이뤄야 하는 것이다. 프랙탈 구조처럼 컷과 컷의 작은 단계부터, 신과 시퀀스의 굵직한 덩어리까지 주제를 향한 ‘액션과 리액션’의 협응이 필요하다. 내용이나 느낌적인 부분도 마찬가지다. 액션만 계속 발생되는 장면의 연속은 의도된 연출에 의해서 강렬하고 특이한 느낌(주로 광고, 뮤직비디오)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흔히 생각하는 드라마적인 이야기 구조를 만들어내기는 어렵다. 사실 삶 자체도 행동과 반응의 연속이며, 외로운 외침조차도 공허함이라는 반응을 담고 있다. 최근의 방송은 현장에 없던 반응을 CG나 효과 등으로 만들어 내기도 한다. 어떤 영상이든 최종적으로 매체의 액션과 시청자의 리액션을 기대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행동과 반응이 내면으로부터 일어난다는 것이다. 각 개인의 감정과 취향이 행동으로 나타나며, 이것이 잘 관찰될 때 좋은 방송이자 진실성 있는 내용이 시각화되어 담기는 것이다.


물을 병째 마시거나 컵에 따라 마시는 것. 부엌 찬장에 옷을 넣어 둔다거나 창문 모기장이 몇 달째 구멍 나있는 것 등 출연자의 습관, 공간과 물건의 흔적을 관찰하며 일상에 묻어있는 내면의 상태를 읽어볼 수 있다. 때로는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는 모습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내가 연출자라면 ‘사랑’을 어떻게 시각적으로 담아낼 수 있을까? 어떤 부부가 잠시 화가 나서 말다툼을 했다. 하지만 서로 식사를 챙겨주고, 고장 난 형광등을 갈며, 청소를 한다. 사랑한다는 말 대신 행동으로 표현된 신뢰라는 모양의 사랑일 수 있다. 이런 관찰의 과정 속에서 감정과 개념의 시각화가 이루어진다.


결국 사람의 말과 행동, 분위기 등은 그 내면의 무언가가 뭉쳐 나온 하나의 일상적 예술인 셈이다. 그리고 한 인생의 ‘액션 & 리액션’은  자신과의 대화인 것이다.



연출자는 호기심과 존중의 마음을 가지고, 고정관념을 떨치려 노력해야 한다. 일반인 출연자가 지치지 않도록 유연한 관찰과 기록(촬영)을 해야 한다. 때로는 틀린 판단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인공지능 로봇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이 친밀해지는 계기가 되거나, 의외의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


일반인 출연자들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유창하게 대답하지 못한다. 한 시간 분량의 방송에 출연하는 주인공을 소구력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출연자의 특징(개성)적인 부분을 극대화해야만 하는데, 출연자 자신은 그것을 모른다. 때로는 답답하지만 당연한 일이다. 다행인 것은, 여러 상황에 놓인 출연자들이 말과 행동을 통해 자신에 대한 ‘힌트’를 계속 흘려보낸다는 점이다. 연출자인 나는 그것을 주워 담아야 한다. 불확실하고 어렴풋한 가능성을 가늠해보면서 방송을 완성해가야만 한다. 비의식을 분석해서 마음을 치료하는 정신분석의 과정과 닮았다. 하나씩 살펴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은 습관과 환경도, 모아보면 그 사람을 대변하는 독특한 언어가 된다. 낯선 관찰자로 맺어진 출연자와의 인연 속에서, 방송이라는 소구력 있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고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


때로는 탐색 과정 중 발견한 여러 이야기 중에 방송에 담지 못한 것들도 많다. 언어의 한계와 방송 분량의 제약 때문에 한 시간 정도의 프로그램은 출연자의 특징적인 몇 가지 모습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내가 느낀 출연자의 모습을 오롯이 담아내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방송을 통해 만나는 인연은 일반적인 상황과 다른 ‘경계심’이라는 벽이 있을 수도 있다. 방송에 대한 기대감과 시각적 노출에 대한 스스로의 행동 제약을 하고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카메라를 들이대기 전에 연출자가 먼저 소통의 물꼬를 터야 하는데, 출연자도 결국 사람이기에 나의 진심을 알아주는 때가 찾아온다. 필름에는 그 순간의 느낌이 오롯이 담기며, 시청자도 은연중에 그 기운을 전달받는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으레 그렇듯 명쾌한 정답은 없다. 때로는 지레짐작일 수도 있다. 연출자에게 시간은 한정되어있고 판단은 반드시 해야만 한다. 나는 가끔 최종 연출 방향과 출연자의 실제가 다르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했다.


출연자를 화면에 담아내는 과정에서 이런 일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발생했고, 필요한 것들이었다. 동료들은 이런 개념에 대해 정리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편집과 원고에 녹여내고 있다. 연출자는 관찰자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고 있다. 기술과 감성을 자유롭게 녹여내는 창작자가 되고 싶다. 나는 그리 대단한 PD도 아니었는데 쓰다 보니 쓸데없이 거창하다. 개인적인 정리의 글이다.


시간적 여유가 생긴 요즘의 나는 이런 글을 적어보면서, 내 일상을 조금이나마 객관적으로 보기도 한다. 순간 뱉어버린 말을 돌아보며 의외의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내면의 무엇으로부터에 대한 ‘리액션’인지, 외부의 무엇을 기대하는 ‘액션’인 것인지. 오지랖과 선입견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이런 개념을 정리해본 뒤, 서랍에 잘 개어 놓기로 했다.



BGM♪ Alessia Cara ‘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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