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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eurist Feb 29. 2024

세계를 선물하는 사랑

영화 <말없는 소녀> 리뷰




*영화 <말없는 소녀>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약 5년 전,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로 붐비던 독일 뮌스터 중앙역 광장. 버스를 기다리던 중 맞은편으로 한 아랍인 가족이 눈에 들어온다. 어두운 표정을 지은 부모와 말없는 다섯 아이. 아빠로 보이는 남자는 포장해 온 버거킹 햄버거를 대충 내어주고 이내 심각한 표정으로 먼 곳을 바라본다. 아이들은 인도 한복판에 둘러앉아 식은 듯 보이는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나눠 먹는다. 엄마로 보이는 여자는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볼 뿐이다. 머릿속으로 생각 하나가 떠오른다. 아이들이 앞으로 마주할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절망일까 아니면 희망일까?


영화 <말없는 소녀>를 보고, 잊고 있던 그날의 장면을 떠올렸다. <말없는 소녀>는 아이와 세계가 맺는 관계를 조명하며 무력했던 이들의 아픔을 공유하고, 부모라는 역할을 재정의하며 어른이 된 세대에 질문한다. 아이는 무엇으로 성장할까? 우리는 더 나은 세계를 선물할 수 있을까?


방치된 아이

주인공인 코오트와 그녀의 자매들이 등교를 준비하는 아침. 아빠인 댄은 숙취가 심한 듯 쓴 표정을 지으며 거실로 나온다. 조잘대던 자매들은 댄이 등장하자 말을 멈추고 눈을 내린다. 어색한 침묵 속 들려오는 아기 울음소리와 댄의 짜증 섞인 탄식. 집 앞에 도착한 스쿨버스가 경적을 울리고, 코오트의 언니들은 바삐 가방을 챙긴다. 텅 빈 도시락 통을 확인한 자매들은 엄마가 점심을 싸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댄은 별 일이냐는 듯 담배를 물고 대답한다.

"거기 빵 좀 있지 않아?"

그가 말한 주방 선반에는 조리되지 않은 하얀 식빵이 봉투에 담긴 채 버려진 듯 놓여 있다.


어느덧 찾아온 점심시간, 코오트는 대충 챙겨 온 식빵을 옆으로 미뤄둔 채 보온병에 담긴 친구의 우유를 탐낸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건 방치된 식빵이 아닌 따뜻한 우유 한 잔이다. 몰래 따라 마시려던 찰나, 뛰어놀던 친구가 책상을 치면서 우유는 엎질러진다. 현실은 코오트에게 작은 따뜻함마저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코오트는 말이 없다. 그녀는 뱉어내고 싶은 감정조차 홀로 삭이는 아이다. 언니들은 말없는 동생을 괴짜라 부르고, 댄은 자신의 아이를 '겉도는 아이'라 표현한다. 코오트는 자기를 향해 날아오는 모진 말들을 견디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학교에서 아이를 데리고 오던 중, 맥주를 마시려 펍에 들린 댄. 코오트는 구석에 방치된 채 앉아 의자 가죽을 뚫고 삐져나온 노란 스펀지를 만지작 거린다. 섞이지 못하고 드러난 스펀지에 코오트는 자신을 투영했을까?


코오트는 외로운 순간에도 눈에 비친 세계를 가벼이 흘리지 않는다. 자동차 뒷좌석에 앉아 차를 따라 회전하는 하늘, 운전대 옆 부산스럽게 끄여진 담배꽁초, 불만에 찬 아버지의 뒷모습을 주의 깊게 바라보며 훗날 선명하게 떠올릴 기억의 파편들을 응시한다. 콤 베어리드 감독은 시점 쇼트를 활용하여 말없이 세상을 담아가는 코오트의 시선을 포착한다. 그럼에도 회색빛 세계를 벗어나기에 코오트는 여전히 무력한 아이일 뿐이다. 묵묵히 자기 세계를 쌓아가는 모습이 기특하지만, 이보다 넓은 세상을 비출 태양은 구름에 가려 쉽게 얼굴을 보이지 않는다.



빛이 드리운 세계

절망은 우연한 계기를 통해 희망으로 전환된다. 출산을 앞두고 아이들을 케어할 겨를이 없던 코오트의 부모는 방학 동안 그녀를 친척 집에 맡기기로 한다. 가본 적 없는 새로운 곳, 코오트는 낯섦에서 오는 두려움을 홀로 감내하지만 새로운 희망을 암시하듯 달리는 차 안으로 한 줄기 빛이 들어온다.


엄마의 사촌인 에이블린은 관심과 사랑으로 코오트를 소중히 보살핀다. 마치 부서지기라도 할 듯 세심한 손길로 아이를 목욕시키고, 양파 썰기와 감자 깎기, 구스베리 잼 만들기, 청소기 돌리기 등을 가르치며 일상과 자연에 담긴 아름다움을 코오트에게 소개한다. 코오트는 에이블린과 함께 빛이 드리운 들판을 걷고, 긴 가뭄에도 마르지 않았던 샘물을 마시며 자신을 둘러싼 절망과 죽음의 기운을 씻어낸다. 코오트는 그렇게 아낌없는 사랑으로 경험한 적 없는 세계를 마주한다.



에이블린이 섬세한 사랑으로 일상과 자연을 품은 세계를 선물한다면, 그녀의 남편인 숀은 코오트 안에 잠재된 자유 의지를 끌어낸다. 숀은 농장 일을 함께 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코오트에게 직접 달려보라고 제안하는데, 그녀는 쭈뼛대다가도 이내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달린다. 달릴수록 더 빨라지는 기록. 그렇게 코오트는 사랑을 동력 삼아 스스로, 그리고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존재로 성장한다. 영화 초반 여러 번 상징적으로 비치던 코오트의 발은 달리기라는 맥락을 거쳐 그녀의 자유 의지가 응축된 공간이었음이 드러난다.


킨셀라 부부는 코오트에게 일상과 자연, 그리고 자아를 넘어 생의 원리를 일깨운다. 코오트는 에이블린을 따라 나간 시내에서 갓 태어난 아기를 만나고 이웃에서 열리는 장례식을 함께 방문한다. 킨셀라 부부는 코오트에게 경야(장례식이 끝난 후 망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밤을 새우는 아일랜드 풍습)를 경험해 봤는지, 죽은 사람을 실제로 본 적이 있는지 질문하고 생의 이면을 감추는 대신 아이가 직접 세계의 진리를 목도하게 한다. 영화는 결코 삶과 죽음을 분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되짚으며 코오트와 더불어 관객의 시야를 확장한다.



말보다 강한 침묵

침묵은 영화 내내 부정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가족들은 말수가 적다는 이유로 코오트를 멸시하고, 코오트는 글을 능숙하게 읽지 못해 부끄러움을 견뎌야 한다. 그녀를 둘러싼 세상은, 누구보다 사려 깊은 눈을 가진 말없는 소녀를 돌아보지 않는다.


킨셀라 부부에게 침묵은 금기가 아닌 미덕이다. 작은 마카롱 하나로 상대를 향한 진심을 표현하고, 불필요한 말이 들춰낸 상처를 각자 침묵으로 위로한다. 코오트가 킨셀라 부부가 겪었던 비극을 알게 된 저녁 밤, 숀은 코오트를 데리고 밤바다로 나가 이렇게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침묵할 기회를 놓쳐 많은 걸 잃었단다. 아무 말 안 해도 돼."


코오트는 침묵이 지닌 힘을 경험하면서 세계의 양면성을 이해하고 자기 정체성을 회복한다. 말이 없다는 이유로 가혹한 말들을 감내해야 했던 그녀에게 침묵이 진리가 아닌 선호의 문제라는 사실은 삶을 뒤흔드는 울림이었을 것이다. 코오트는 숀의 조언을 통해 틀린 것이라 자책했을 지난 모습들을 받아들이고 자기 고유성을 깨닫는 존재로 한 뼘 더 성장한다.



부활

킨셀라 부부가 집을 비운 사이, 홀로 물을 길으러 간 코오트는 물에 빠트린 양동이를 잡으려다 샘에 빠진다. 죽음의 기운을 감지한 에이블린은 들판으로 달려가고, 멀리서 온몸이 물에 젖어 돌아오는 코오트를 발견한다. 추위에 떠는 모습 위로 수렁에 빠져 목숨을 잃었던 킨셀라 부부의 아들이 겹쳐 보인다. 수렁 대신 샘에 전신을 담근 코오트는 모든 정신과 육체를 정화하며 성장을 완성한다.


희망이 공존하는 곳에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부활한 코오트는 다시 절망이 지배하는 곳으로 돌아간다. 여전히 어수선하고 어두운 집. 깔끔하고 밝았던 킨셀라 부부의 집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아쉬운 감정을 극대화한다. 돌아온 코오트를 본 엄마는 놀란 표정으로 말한다.

"많이 컸구나!"

코오트의 성장을 함께 목격한 관객들은 단지 키가 컸다는 의미만으로 이 대사를 이해하지 않을 테다. 코오트는 침묵할 줄 아는 아이로서 정체성을 지키며 외적으로, 또한 내적으로 어엿하게 성장했다.


코오트는 손님 자격으로 앉아 있는 킨셀라 부부 옆에 자연스레 착석한다. 언제나 에이블린 옆 자리가 자기 자리인 것처럼. 마치 자신의 진짜 가족은 에이블린과 숀이라는 것처럼.


에이블린은 코오트에게 오고 싶을 때 언제든 환영이라 말하며 작별을 고한다.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던 코오트. 천천히 고개를 들고 결심한 듯 돌아가는 차를 향해 달린다. 언제나 신호를 주어야 달렸던 코오트는 죽음의 공간에 발 붙여야 하는 순간, 온전히 자기 의지로 달리기 시작한다.



콤 베어리드의 시선

영화 <말없는 소녀>는 콤 베어리드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그는 깊고 단단한 세계관을 구축하며 첫 작품부터 놀라운 연출 능력을 보여준다. 언뜻 뻔한 스토리처럼 보이지만 '설명하기' 대신 '보여주기'로 감정을 자극하고 공감을 이끌어낸다.


세계의 양면성을 포착하는 그의 시선은 특별하다. 그가 이해하는 세계는 절망과 희망이 공존하는 곳이며, 삶은 죽음과 탄생을 오가는 순환이다. 킨셀라 부부의 아들은 물에 빠져 목숨을 잃지만 코오트는 물에서 부활한다. 비밀은 부끄러운 일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슬픔을 묻어주기도 하며, 부정적으로 여겨지던 침묵은 사실 말보다 강한 힘을 지닌다.


슬픔이 있어야만 기쁨을 기쁨으로 인지할 수 있듯, 우리는 세계를 구성하는 물질의 양면성을 깨달을 때 진짜 성장을 이룬다. 콤 베어리드 감독은 세계의 양태를 복합적으로 그리며 코오트의 성장을 완성하고 킨셀라 부부를 치유하는 동시에 관객의 시야를 넓힌다.



홀로 절망적 세계를 마주하던 아이는 일상과 자연, 그리고 관념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경험하며 무한히 사유하는 인간으로 성장한다. 킨셀라 부부는 두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세상에서 가장 섬세한 사랑을 보여주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결국, 자연을 경탄하는 사랑으로 세계를 선물하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긴 가뭄과도 같은 얄팍한 물질주의를 거두고 생명에 맞닿은 세계를 다음 세대에 선물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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