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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eurist Apr 06. 2024

영원으로 위로하는 생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리뷰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패스트 라이브즈의 두 주인공 노라와 해성은 현실에 묶여있다. 다양한 모양의 현실이 얽히고설켜 두 사람의 인연을 결정한다. 노라와 해성이 오랜 시간에 걸쳐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이유는 결국 극복할 수 없는 당장의 삶 때문이다. 부모의 선택이 곧 나의 길이 되는 어린 시절, 노라의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을 결정하면서 두 아이는 제대로 된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멀어진다. 마지막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뛰어놀던 기억만 남았을 뿐이다. 12년 만에 성인이 되어 스카이프로 재회한 두 사람. 마치 장거리 연애를 하듯 화면 너머로 마음을 쌓아가지만, 이번엔 태평양을 사이에 둔 망망한 거리와 눈앞에 산재한 현실의 파편들이 두 사람을 가로막는다.



노라가 지나 온 삶은 꿈꾸는 사람들의 현실을 비춘다. 노벨상을 타기 위해 떠난다던 노라는 12년 뒤 퓰리처 상을 타고 싶다 말하고, 그로부터 다시 12년이 흐른 뒤에는 토니상을 타고 싶다 말한다. 노라는 극작가가 되었지만 벌이가 변변치 않은 자신을 마주하며 흐르는 시간과 함께 꿈의 크기를 줄여왔다. 상상에 돈이 드는 것도 아니련만 어느새 그녀는 꿈에도 현실을 담는 어른이 되었다. 해성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좋은 대학을 가고, 군대를 다녀오고, 직장을 다니고 여전히 부모님과 함께 지내며 평범한 삶을 산다. 노라의 말처럼 그가 밟아 온 모든 경로는 지극히 한국적인 동시에 현실적이다.


서로가 없는 곳에서 노라와 해성은 또 다른 삶을 얻었다.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게 있다는 노라 엄마의 말처럼. 두 사람은 각자 상황에 맞는 길을 찾았고 노라는 해성보다 먼저 8000겁의 인연을 거쳐 도착한 아서를 만났다. 노라의 부모가 예술가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노라에게 더 맞는 짝은 공학을 전공한 해성보다 아티스트 레지던시에서 만난 아서인 듯하다.


영원히 멀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노라와 해성. 이상하게도 서로에게 가닿지 못한 마음은 여전히 허공을 떠돈다. 뉴욕과 서울을 오가는 병렬적인 편집이 분리된 시공간을 연결하며 허무하게 끝나버린 인연에 아쉬움을 더한다.





끝내 노라를 찾아온 해성. 24년 만에 얼굴을 마주한 둘은 마치 오랜 연인처럼 서로를 바라본다. 말보다는 침묵이 주를 이루지만, 둘 사이의 모호한 감정이 여백을 메운다. 기억 속 사랑을 만나기 위해 열세 시간을 날아온 남자는 무슨 말을 꺼낼까?


사실 해성은 작별하기 위해 미국에 왔다. 그는 이미 노라를 떠나는 사람으로 정의 내렸다. 노라 또한 어린 시절의 나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어린 나영을 어린 해성과 함께 두고 왔다고 말한다. 이들은 이미 서로의 인연이 여기 까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인연은 슬프기보다 숭고하고 아름답다. 극복할 수 없는 생의 섭리를 부정하는 대신 현생을 받아들이며, 8000겁의 연이 쌓이게 될 순간을 믿기 때문이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과거가 결코 없었던 건 아니라는 노라의 말처럼, 현생은 분명하게 존재했던 기억으로 두 사람을 연결하는 얇지만 강한 실이 될 테다. 전생이라는 마법은 과거와 미래로 삶을 무한히 확장하며 현실을 받아들이는 두 사람을, 소중한 인연을 포기해야 했던 모든 관객을 위로한다.


두 사람은 마지막까지 선을 넘지 않는다. 작별하는 순간에도 보도블록이 그린 선을 사이에 둔 채 말없이 서로를 바라볼 뿐이다. 옳은 방향임을 알고 멀어질 수 있는 용기는 전생이라는 무한함이 주는 선물일 것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다음 생을 기약하며 작별한다.



노라는 다음 생을 상상하며 모호했던 자기 정체성을 비로소 결정한다. 어린 시절 노라가 울 때면 언제나 그녀를 달래주었다는 해성과 캐나다와 미국에서는 한 번도 운 적이 없다는 노라. 그녀는 여전히 한국말로 잠꼬대를 할 만큼 두 정체성 사이를 부유한다. 해성이 떠난 직후 노라는 처음으로 눈물을 보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은 해성이 아닌 아서다. 현생은 곧 훗날의 전생임을 믿고 다음 생을 기약하게 된 순간, 노라는 영원히 미국인으로 살아가게 될 자신을 확인했다. 해성이 없다면 홀로 계단을 올라야 했던 어린 시절과 달리 이제는 아서가 함께 계단을 오른다. 두 겹의 문을 열고 차원을 통과하듯 사라지는 노라와 아서. 문 너머 세 사람의 다음 생'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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