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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eurist May 02. 2024

브랜드 젠트리피케이션

ep. 6 Bonanza Coffee Roasters




퍼블리피케이션 혹은 젠트리피케이션

젠트리피케이션. 영국 상류층 계급을 뜻하는 Gentry와 '~화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접미사 fication이 결합한 파생어다. 임대료가 낮은 지역을 중심으로 특색 있는 상권이 형성되지만, 지대가 상승하고 대형 문화 상업 시설이 들어서면서 원주민들이 떠나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주거 지역의 관광지화로 기존 주민들이 이주하는 투어리스티피케이션 (Touristification), 바닷가 주거지의 침수 위험으로 부유층이 안전한 고지대로 이동함에 따라 기존 주민들이 밀려나는 기후 젠트리피케이션 (Climate Gentrification)의 어원으로 통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단어 자체에 '상류화'라는 개념을 담지만, 기존 사람들이 떠난다는 의미에 초점을 맞춘다면 보다 넓고 다양한 영역에 적절한 은유가 된다. 컨트리 기반 아티스트였던 테일러 스위프트가 시대를 대표하는 팝스타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일부 팬들이 당혹감을 내비치며 잠시 멀어졌던 모습에도 젠트리피케이션의 양상이 겹쳐 보인다. 브랜드 또한 예외는 아니다. 브랜드는 영역을 확장할수록 다양하고 복합적인 니즈를 마주하는데, 모든 목소리를 담으려다 브랜드 고유의 감성과 정체성을 잃는다면 고객들은 언제라도 브랜드를 떠나기 마련이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지역 정체성을 잃는 순간 소비자들이 발길을 돌리는 모습과 유사하다.


물론 브랜드 성장은 곧 고객층의 확장을 의미하기에 단순 대중화를 뜻하는 '퍼블리피케이션'으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대중화가 기존 고객 유출이라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일련의 과정을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다. 젠트리피케이션은 고유한 감성을 지닌 지역에서 주로 발생한다는 사실 또한 브랜드 발전 과정과 젠트리피케이션 사이의 연관성을 보여준다.


문제는 브랜드가 몸집을 키워가는 과정에서 복잡하고 다양한 니즈로부터 자기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가에 있다. 부피가 커지며 희소성에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브랜드가 내세우는 가치와 개성을 잃지 않는다면 고객들은 쉽게 떠나지 않는다. 동일한 정체성을 수많은 사람들과 다소 빈약한 유대감으로 공유해야 한다는 사실이 아쉽지만, 공유 가능한 대상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브랜드와 고객은 관계를 유지한다.

루트의 세 번째 브랜드로 선정된 보난자 커피. 독일 베를린에 기반을 둔 브랜드의 히스토리를 확인하고 군자점과 파주 신세계 아웃렛점을 방문하는 등 브랜드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다. 취합한 정보들을 모으고 정제한 끝에 떠오른 최종 키워드는 다름 아닌 젠트리피케이션. 리서치 과정에서 확인했던 베를린 보난자 커피의 캐릭터와 직접 경험한 한국 보난자 커피의 캐릭터는 사뭇 달랐고 브랜드에 품었던 기대는 새로운 질문으로 이어졌다.


블루보틀과 보난자 커피

루트의 카페 시리즈 세 번째 브랜드 선정을 위해 설정한 맥락은 '해외 스페셜티 카페 브랜드'였고 자연스레 미국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블루보틀을 떠올렸다. 블루보틀 대신 보난자 커피를 선정한 데는 해외 스페셜티 카페 브랜드가 제시할 새로운 방향성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감이 반영됐다. 그동안 블루보틀 코리아는 브랜드 정체성을 잃고 로고와 디자인만을 어필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2023년 기준 커피 판매량 (매출의 38%)을 월등히 앞서는 굿즈 판매량 (매출의 61.17%)이 부정적 평가를 뒷받침한다.


이미 한국 진출 전부터 브랜드의 대중화 및 상업화로 기존 색을 잃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블루보틀 코리아는 진출 초기 브랜드 이미지가 아닌 커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어필했다. 매거진 B 블루보틀 편에서 확인할 수 있듯 브랜드는 바리스타와 고객 간의 유대감, 섬세한 커피 큐레이션, 수준 높은 핸드드립 커피, 온전히 커피에 집중할 수 있는 차분한 분위기를 브랜드의 주요 가치로 내세웠다. 현재 한국 블루보틀 매장에서 브랜드가 내걸었던 가치를 향유할 수 있는가에 대해 꽤 많은 이들이 회의적인 시선을 던진다. 고객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에서 일대일 응대와 같이 섬세한 커피 큐레이션을 유지하는 건 분명 어려운 과제이지만, 기존 프랜차이즈 커피 브랜드와 명확한 구분이 어렵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보난자 커피는 같은 해외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로서 블루보틀 코리아의 빈틈을 보완하고 한국 커피 시장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지 확인하고자 했다. 필자는 커피를 즐긴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감각에 의지해 맛과 향을 구분하고 해석하려 노력하지만 개별 원두의 차이를 이해할 정도로 지식을 갖추지는 못한 상태다. 그렇기에 이 커피는 어디서 왔는지, 어떤 맛을 지니며 어떤 방식으로 즐길 수 있는지 이론적 경험을 더해주는 큐레이션을 반가워하고 과정에서 오가는 커뮤니케이션을 즐긴다. 바리스타가 언어로 전한 맛이 실제 입 안에서 구현되는 순간마다 커피를 향유하는 이유를 새롭게 깨닫는다.


리서치 과정에서 확인한 베를린 보난자 커피의 매력 역시 바리스타들과의 소통, 편안한 분위기, 섬세한 커피 큐레이션 등 커피를 기반으로 한 개성 있는 감각에서 출발하는 듯했다. 유럽 5대 커피라는 타이틀을 지닌 만큼 맛 이상의 큐레이션과 서비스를 보난자 커피에 기대했던 이유다. 블루보틀과 달리 현지에서도 초기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브랜드로 보였기에 그 모습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아쉽게도 한국 보난자 커피는 기대와 다른 전략을 취하고 있었다.


보난자 커피 군자점에서 주문 시 마주하는 건 바리스타가 아닌 키오스크다. 사람이 아닌 기계와 소통한다. 뒤로 길게 늘어선 줄이 신경 쓰여 주문을 위한 큐레이션을 따로 요청하지는 못했다. 큐레이션을 기대한 고객에게 키오스크 주문은 예상을 빗나간 광경이었고, 커피에 대한 정보를 얻기 어려웠던 점은 퍽 아쉬웠다. 루트 멤버 NOEY가 발견한 대로 베를린 보난자 커피의 인테리어를 군자점에 이식했다는 점은 주목할만했지만, 오직 보난자 커피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분위기의 공간은 아니었기에 일반 대형 카페와 비교에 있어 눈에 띄는 차별점은 없었다.


결국 기존 경험을 반복하는 느낌으로, 보난자 커피가 브랜드로서 제안하는 차이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파주 신세계 아웃렛 점에서 그나마 원하는 바를 충족하며 위안을 얻었다. 군자점과 달리 키오스크나 진동벨이 필요한 매장 규모는 아니다. 비교적 붐비지 않는 환경 덕분에 천천히 커피를 골랐고 커피의 출처와 성격에 관해 적절한 큐레이션을 받았다. 맛 또한 훌륭해 온전히 커피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다.


현지화, 그리고 브랜드 젠트리피케이션

보난자 커피 군자점에서의 브랜드 경험은 해외 브랜드의 현지화와 그 한계로 질문을 확장한다. 모든 해외 브랜드에 해당되는 말은 아니지만, 한국 스페셜티 커피 시장에 새로운 모델을 제안할 수 있는 두 브랜드가 오히려 정형화되는 모습에서 문제의식을 가진다. 현지화는 문화적 배경이 다른 국가에서 최대의 효율을 끌어내기 위한 필수 전략이다. 다만 그로 인해 브랜드 정체성이 훼손된다면 이는 한 번쯤 짚고 넘어갈 문제다.


블루보틀 코리아는 로고와 디자인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내세워 국내 시장에서 파이를 키웠고 여전히 높은 수요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얼마나 많은 고객이 '커피' 브랜드로서 블루보틀을 즐기고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국 보난자 커피도 비슷한 길을 걷는다는 인상을 준다. 베를린에서 브랜드의 정체성을 경험했던 기존 팬들이, 혹은 브랜드만의 개성을 직접 확인하고자 했던 고객들이 한국 보난자 커피 운영 방식에 공감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할지에 대해 다소 의문이 든다.


어쩌면 지금까지 밝힌 개인적 단상은 보난자 커피의 한국 진출 목적을 온전히 파악하지 못해 발생한 오해일지 모른다. 한국 보난자 커피는 소통과 큐레이션 대신 오직 '필요 이상으로 좋은' (보난자 커피의 슬로건 unnecessarily good) 커피를 제공하는데 목표를 둘 수 있다. 군자점에서 개인적으로 아쉬움을 느꼈던 부분도 오히려 한국 고객들을 배려한 전략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보난자 커피 베를린의 바리스타 아나스타샤는 군자점 오픈 당시 인터뷰를 통해 "매장에서 직접 경험한 키오스크와 진동 벨이 한국 고객들의 편의를 고려하는 것처럼 보였다"라고 말한다.


브랜드를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다. 이미지를 소비하는 행위도, 로고와 디자인을 소비하는 행위도 브랜드를 향유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 보다 많은 고객을 유치하고 더 큰 이윤을 창출하는 것만으로 브랜드는 현지화의 필요성과 합리성을, 더불어 자신의 존재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대신 관념이 부재한 외관은 공허하다. 브랜드는 인간과 소통하는 매체라는 점에서, 이미지에 기반한 이윤 창출을 넘어 내용에 기반한 가치 창출을 이뤄낼 때 더 깊은 의미를 가지지 않을까?


지자체는 임대인과 임차인 간 자율적 합의를 이끌어내거나 법적 규제를 논의하는 방식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을 해결한다. 임대료 상승을 제한하여 지역 특색을 유지했을 때, 모두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수익 모델을 구축할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한다. 브랜드 또한 당장의 시장 논리 대신 정체성 유지에 초점을 맞춘다면 브랜드와 고객 모두에게 장기적으로 이득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고유한 문화에서 출발해 상업화를 경험한 지역은 크게 두 가지 경로를 따른다. 특색을 잃고 정형화되어 점차 쇠락하거나, 인구가 대거 유입된 상업 지구로서 역할을 인정받고 그 기능을 안정화하거나. 어렵지만 언제나 제3의 길은 있다. 정체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수익성을 추구하는 것. 물론 브랜드 입장에서 인내가 필요한 일이지만 성공 사례가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과연 보난자 커피는 브랜드만의 정체성을 어필하지 못하고 쇠락하게 될까, 브랜드를 경험할 이유를 증명하며 기능을 안정화하고 뿌리내리게 될까? 이 질문이 과연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흥미롭게 지켜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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