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창민 Sep 25. 2019

27살, 나는 세상에 홀로 남았다.

- 지난 역경과 시련들을 돌아보며.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참 후에 겪을 일들을 어린 시절과 20대에 모두 겪었다.


문득 책장에 꽂힌 회복탄력성이라는 책을 바라보며, 지나간 기억들이 스쳐 지나간다. 이 책은 SK그룹에서 썸머인턴으로 일을 하던 시절, 서문수 이사님께 선물을 받았다.


그 당시 나는 25살이었고, 4학년 1학기를 다니는 중에 SK그룹에서 썸머인턴 공고가 올라왔다. 서류지원을 하였고, 필기시험과 1차 면접 그리고 2차 면접을 거쳐 결국 최종 합격을 하였는데 그 과정이 결코 평범하진 않았다.


서류와 필기를 합격하고선, SK증권 본사에 무턱대고 찾아가서 대표이사를 만나 나를 합격시켜달라고 말했고 그덕에 결국 수월하게 합격이 되었다.


25살의 나는 모든 것에 절박했고 그렇게에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취했다.


과연 무엇이 나를 그렇게 절박하게 했을까?




23살이 되자마자 부산 영도항에 정박해있는 3001함에서 제대를 하며, 다짐을 했다. "언젠가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사업을 할 것인데, 그 전에 회계사 자격증을 따자."


지금 생각해보면 사업을 하는데 있어 굳이 회계사 자격증이 필요하진 않은데, 어린 마음에 일단 회계를 공부하고 싶었던 것 같다.


여튼 제대를 하자마자 대학으로 돌아와, 매일 아침 9시부터 저녁 11시까지 공부를 시작했다. 일요일 반나절만 쉬고 1년 동안 저런 루틴으로 삶을 살고있었는데, 엄마가 간단한 수술을 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그 때는 몰랐다. 


24살 엄마의 그 수술이 나의 세상을. 나의 모든 우주를 뒤집어버릴 것을.




2시간 정도면 끝나는 간단한 수술인데, 10시간이 지나도 엄마는 나오지를 않았다.


수술에 들어가자마자 앞에서 앉아서 기다리는데, 사실 3시간 4시간이 지날 때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수술 전에 이미 모든 검사를 했었고, 큰 이슈가 없었기에 조금 시간이 지체되나보다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5시간이 지나면서부터는 극도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고 10시간 정도가 흐른 저녁, 수술을 집도한 의사가 나왔다.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나요?"

"학생말고 다른 보호자 어디 있습니까?"


"제가 보호자이고, 저 밖에 없습니다. 저한테 말하시면 됩니다."

"검사할 때는 단순한 종양으로 나왔는데, 수술을 하다보니 암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진행이 되었고, 생존율은 몇 프로인가요?"

"3년 생존율이 20%입니다."




흔히 드라마에서 보면, 시간과 공간이 정지하는 순간들이 있다.


24살의 나에게 저 말을 듣는 순간이 바로 그랬다.


모든 것이, 나의 우주가 멈추는 순간.




웃기지만 나에게는 슬퍼할 시간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회복을 위해서, 완치를 위해서 빠르게 행동해야 했었고 저 소리를 듣는 순간 그리고 깨어난 엄마에게 상황을 말하는 순간에도 울음이 나오지 않았다.


딱 두 번 울었다.


깨어난 엄마에게 대수롭지 않게 마치 감기에 걸린 것 마냥 이야기를 하고, 일단 나는 옷가지를 가져오기 위해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면서 군자역에서 내려, 세종대를 지나 집으로 가는 길에 있는 나무들 사이에 있는 벤치에서 펑펑 울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늘을 원망했다.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런 시련들을 주시냐고.


30분 정도 펑펑 울고, 이를 악 깨물고 집으로 갔다.


그리고 3년 뒤, 27살 나는 세상에 홀로 남았고 그 날도 모든 절차가 끝나기 전까진 씩씩했다.


마지막 날 친구들만 남았을 때, 나는 세상이 떠나가도록 울었다.


그렇게 나는 딱 두 번 울었다.




그래서  24살의 나는 무척이나 절박했다.


대학교 3학년, 4학년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그리고 입사지원부터 면접준비까지 모든 것을 서울 성모병원 휴게실에서 준비했다.


장학금을 받아야 되었고, 빨리 취업을 해서 돈을 벌어야 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어둑한 불 꺼진 병원 휴게실에서 시험 준비를 하고 자소서를 쓰고 면접 준비를 하던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은 그렇지 않은데, 몇 년 동안은 하루에도 수십번씩 엄마가 떠올랐다. 좋은 일이 있을 때면, 나도 모르게 엄마한테 문자해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이제 그정도는 아니지만, 종종 러닝스푼즈가 성장하는 모습을 엄마에게도 보여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은 한다.


물론 엄마는 언제나 내 마음 속에 있고, 다 보고 있을거라고 믿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