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ing Solution
조명 설계의 시작은 내가 좋아하는 ‘빛’을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어떤 빛에 편안함을 느끼는지, 스스로의 감각을 언어로 표현해보는 것이죠.
이 작업은 단순한 취향 파악을 넘어서, 조명을 이해하는 기준점을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나는 해질녘 블루아워를 좋아해요.
비 온 뒤 수증기를 머금은 흐린 대기도 좋아해요. 특히 정원이나 공원처럼 물기를 머금어 짙어진 초록빛이 감도는 그 풍경을.
또, 모든 불이 꺼진 방 안에서 창밖 달빛이나 도시의 불빛만이 희미하게 들어올 때, 그 빛 속에서 우리 집 고양이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을 정말 좋아해요.
이런 순간들을 조명의 광학과 연결해 하나하나 설명해보다 보면,
그 감정들이 얼마나 섬세하게 짜여진 ‘감성의 장면(씬)’인지 알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 장면은, 결국 내가 어떤 조명을 좋아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단서가 됩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그 장면 속 ‘빛’의 요소들을 들여다볼 차례예요.
1. 골든아워와 블루아워
하루 중 태양이 가장 낮게 위치할 때, 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부드럽고 풍부한 색을 띱니다.
사람들이 사진을 가장 아름답게 찍을 수 있는 시간이라고 말하는 이 순간, 과연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매료시키는 걸까요?
하루 중 태양이 지평선 근처에 위치할 때, 우리는 태양과 가장 멀어집니다. 이 순간 빛을 구성하는 각 파장들의 차이가 극명하게 생기게 되는데요, 빛은 대기 중을 길게 통과하면서 붉은 파장이 가장 많이 살아 남게 되고 대기는 붉고 부드러운 색으로 변합니다. 이 시간을 우리는 골든아워(Golden Hour), 블루아워(Blue Hour)라고 불러요. 골든아워는 해가 막 지기 전, 따뜻한 금빛이 세상을 물들이는 시간입니다. 피부를 예쁘게 표현해주는 이 빛은 사진가들이 가장 사랑하는 자연광입니다. 빛의 각도, 색온도, 얼굴에 떨어지는 그림자의 길이까지 모든 것이 부드럽고 감성적으로 느껴지는 시간이에요.
반면 블루아워는 해가 지고 나서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까지의 짧은 시간입니다. 이때 하늘은 푸른 빛을 띠고, 도시의 불빛은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짧은 찰나. 그래서 더 매혹적이죠. 저는 이 순간을 더 좋아합니다. 우리는 이 시간대를 ‘아름답다’고 느끼지만, 실은 이 순간이 왜 아름다운지—빛의 파장, 색온도, 산란의 각도 등을 알게 되면 그 감동은 더 깊어집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인공광으로 ‘설계’할 수 있게 되는거예요.
2. 태양, 구름 그리고 대기 중 수증기
햇빛은 언제나 같은 색으로 보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대기 상태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특히 비가 오고 난 뒤, 대기 중에 수증기가 가득할 때 빛은 그 수분과 부딪혀 부드럽게 산란되고 풍경은 마치 필터를 씌운 듯 한층 더 짙고 촉촉해집니다. 이때 초록 식물은 더욱 선명하고 깊은 색으로 보입니다. 공원이나 정원에서 느껴지는 그 '짙은 초록'은,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라 실제로 습도와 광산란이 만들어낸 색의 깊이예요.
구름 또한 햇빛을 분산시키는 천연의 디퓨저 역할을 하죠. 직사광이 아닌 확산광은 경계가 부드럽고, 그림자도 흐리게 만들어 공간 전체에 안정감을 줍니다. 이런 자연광의 원리를 이해하면, 비 오는 날의 조용하고 안정적인 빛을 실내에서도 연출할 수 있어요. 다시한번 쓰는 내용이지만 우리가 좋아하는 감성은 결국 물리적 현상에서 비롯된다는 걸 알게 되면 그 감정을 내 공간 안에 재현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3. 간상세포와 암순응
빛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시력을 잃지 않습니다. 눈 속 간상세포가 작동하고, 암순응이 시작되며 어둠 속에서의 감각이 열립니다. 이건 '간상세포'라는 시세포 덕분이에요. 망막 속 간상세포는 어두운 환경에서 작동해, 미세한 빛만으로도 사물의 윤곽을 인식할 수 있게 해줍니다. 빛이 사라진 공간에서 시간이 조금 지나면 점점 더 많은 것이 보이기 시작하죠. 한번쯤 들어보셨겠지만 이 과정을 '암순응(Dark Adaptation)'이라고 합니다. 우리 눈이 어둠에 적응하면서 빛에 대한 민감도가 극도로 높아지게 됩니다. 특히 우리의 눈은 엄청 예민해 광자 하나 까지도 인지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신기하지 않나요 ?
제가 불을 다 끈 방 안에서, 창밖 도시의 불빛이나 달빛만을 의지해 고양이와 눈이 마주치는 그 순간을 좋아한다고 앞에서 밝혔는데 빛이 거의 없는 공간에서조차 ‘존재’를 알아보는 능력. 이건 단순한 시각이 아니라 감각 전체가 열린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둠 속의 작은 빛은 단순한 ‘빛’이 아닌, 감정을 건드리는 신호가 됩니다. 조명을 설계한다는 건 바로 그 미세한 자극 하나까지 고려하는 일이라 하면 너무 거창할까요?
이처럼 아주 어두운 공간에서는 '얼마만큼의 빛이 필요한가'를 생각하게 되고 그 미세한 빛 하나가 가진 감정의 무게를 느끼게 되는 과정이예요.
이처럼 내가 좋아하는 빛의 순간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모두 과학적인 원리와 감정적인 경험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골든아워의 따스한 색온도, 비 온 뒤 대기 중 수분이 만든 부드러운 산란광, 어둠에 적응한 눈이 알아채는 새로운 어둠속 공간.
우리가 ‘좋아한다’고 느끼는 빛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알게 되면 그 감각을 내 공간에 구현할 수 있는 실마리가 생깁니다.
빛의 방향, 밝기, 색온도, 재료의 반사율과 질감…이 모든 요소를 조합하면, 내가 사랑했던 그 순간을 ‘설계’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조명 디자인은 단순히 공간을 밝히는 일이 아닙니다. 그 순간의 감정, 풍경, 온도, 공기까지 담아내는 섬세한 작업입니다. 내가 좋아했던 빛의 기억을 되살리는 일. 거기서부터 시작하다보면 조명을 설계한다는 일이 막연하게 느껴지지 않으실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