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함께하는 삶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동시에 본 장면은 무엇일까? 정답은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결승전. 그날 전 세계 인구 70억 중 무려 15억 명이 TV 앞에 모였다. 슛을 준비하는 메시, 공을 향해 몸을 날리는 키퍼, 그 좁은 공간을 가르며 지나가는 공 하나에 전 세계가 숨을 멈췄다. 도대체 우리는 왜 이렇게 공 하나에 열광하는 걸까?
얼마 전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인간이 축구에 열광하는 건 원시시대 무리를 지어 사냥하던 본능과 가장 유사한 행위이기 때문이란다. 움직이는 목표를 향해 다 같이 쫓고 협력하고 포위하고 마침내 포획하는 과정. 축구는 그 기억을 되살리는 무대다. 본능은 논리보다 먼저 달려나간다. 우리는 그걸 '스포츠'라 부르지만,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몸에 새겨진 ‘사냥의 기억’일지도 모른다.
그 말을 듣고 새벽이가 떠올랐다. 새벽이는 작은 양모공 하나만 있으면 한 마리 사바나 초원의 포식자가 된다. 두 앞발로 공을 드리블하듯 밀며 조용히 방을 전진하고, 벽에 튕긴 공은 반사각을 계산하듯 곧장 추적한다. 앞발로 공을 툭 쳐서 공중으로 띄운 뒤 낚아채는 모습은 트래핑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내가 가볍게 공을 뻥 차주면, 마치 패스를 받은 선수처럼 저 멀리까지 내달린다. 시선은 오직 공 하나. 그 순간의 몰입은 어떤 장난감보다 순도 높다.
어느날 저녁엔 양모공에 캣닢 가루를 살짝 뿌려봤다. 기대만큼 격한 반응은 아니었다. 캣닢을 비빌 만한 크기도, 고정된 형태도 아니어서인지 평소처럼 얼굴을 부비는 행동은 보이지 않았다. 그냥 평범한 공처럼 가지고 놀았다. 캣닢 양모공 실험은 실패였지만, 여전히 새벽이에게는 작고 단순한 공 하나가 최고의 놀이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그런데 이 공이 너무 작아서 문제이기도 하다. 자주 집안 틈새로 들어가 버린다. 어느 순간 보면 새벽이는 집 한 구석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다. 몸을 낮추고 앞발을 조심스럽게 틈새로 넣으려 할 때, 나는 직감한다. 아, 또 공이 들어갔구나. 이제는 바로 알겠다. 그럼 나는 핸드폰 후레시를 켜고 기어가서 공을 꺼내준다. 새벽이는 그런 나에게 감사 인사 하나 없이 다시 공을 안고 논다. 참효묘다.
그리고 더 신기한 건, 내 눈에는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는 공을 새벽이는 다 알고 있다는 것이다. 밤중에 혼자 어디선가 공을 꺼내어 다시 굴리고 있다. 얘는 분명 어딘가에 숨겨두는 자기만의 공간이 있는 것 같다. 그게 너무 귀엽다. 자기가 놀고 싶을 때 스스로 찾아내 다시 사냥을 시작한다는 게.
좁은 공간 안에서도 이 작은 사냥꾼은 충분히 본능을 펼쳐낸다. 숨기고, 쫓고, 기다리고, 다시 찾아내고. 그런 연속적인 흐름 속에서 새벽이는 지루해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넓이가 아니라 연출과 몰입이라는 걸. 나는 새벽이의 행동을 보며 고양이에 대해 매일 조금씩 배워간다.
고양이를 위한 공간을 고민할 때 나는 결국 이런 질문으로 돌아온다. 이 작은 존재가 오늘도 무언가를 쫓고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는가. 그리고 그 시간이 끝난 후, 공을 입에 물고 종종걸음으로 사라지는 새벽이를 보면 "오늘도 새벽이는 조금 행복했구나"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