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설계자는 의심해야 합니다

Lighting Solution

by 창밖


시공중인 현장에 공간에 들어섰을 때 이상하리만치 어둡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조명이 충분히 설치되어 있고 조도계로 측정한 수치도 기준을 충족하는데 말이죠. 반대로, 숫자상으로는 부족해 보이는데도 이상하게 편안하게 느껴지는 공간도 있습니다. 이처럼 빛은 수치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절대적이면서도 상대적인, 감각적인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조명 설계에서 중요한 것은 이 감각적인 차이를 이해하고, 그것을 이론과 수치로 해석하고 설명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수치와 감각 사이의 괴리를 느낀 순간과 그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의심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광화문 광장 설계에서 느낀 괴리감

광화문 광장 조명 설계를 맡았을 때의 일입니다. 설계 초기에 조도 시뮬레이션을 돌려봤는데 예상보다 수치가 낮게 나왔습니다. 주변의 고층 건물, 차량의 헤드라이트, 도시의 야간 간접광 등을 고려하면 실제로는 훨씬 밝게 느껴질 거라는 걸 이론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 수치를 들고 심의에 나서려니 불안감이 앞섰습니다.


'이대로 제출해도 괜찮을까?' '혹시 정말 어두운 건 아닐까?'


하지만 시공이 완료되고 현장을 확인했을 때 그 불안은 사라졌습니다. 많은 보행객들과 차량, 주변 건물의 반사광, 밝은 도심의 하늘이 만들어내는 간접 조명의 영향이 더해져 실내처럼 아늑하지는 않아도 광장으로서 충분히 밝고 편안한 공간이 완성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경험은 제게 중요한 교훈을 줬습니다. 시뮬레이션은 설계를 위한 도구일 뿐, 감각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는 것을요.



"어둡다"는 학부모들의 민원

또 다른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설계한 공간은 아니었지만 한 어린이집에서 조명이 어둡다는 학부모들의 민원이 제기된 일이 있었습니다. 직접 가 측정해보니 중앙부는 기준 조도를 충족하고 있었지만, 벽면 구석이나 바닥 근처는 다소 어둡게 나왔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어린이집 조도의 기준 자체는 성인 공간보다 낮게 설정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눈의 수정체가 더 맑고 빛에 민감하기 때문에 성인보다 훨씬 적은 빛으로도 충분히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례가 말해주는 건 단순히 “아이들은 적은 빛으로도 잘 본다”는 생리학적 설명 그 이상이었습니다. 설계자는 누구의 감각을 기준으로 조명을 설계할 것인지 끊임없이 되묻는 존재여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민원을 낸 것은 보호자인 어른들이었고, 실제 사용자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이 두 존재 사이의 시각, 감각, 필요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조명 설계는 ‘정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다양한 이용객들의 입장까지 고민하는 과정임을 다시 한 번 깨달은 경험이었습니다.





감각과 수치를 연결하는 방법


조명 설계는 생각보다 훨씬 더 계산적이고 기준이 명확한 작업입니다. 조도, 휘도, 색온도, 연색성 등 조명 설계의 이론적 기준들은 명확한 전제를 바탕으로 만들어졌고, 이를 토대로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활용합니다. 하지만 시뮬레이션은 "균일한 반사율"과 "정지된 시선" 같은 비현실적인 조건을 가정하기 때문에 실제 환경과의 괴리가 생기기 쉽습니다.

실제 공간에서 사람의 시선은 끊임없이 이동하고, 벽체의 색상이나 소재, 질감에 따라 빛의 느낌은 크게 달라집니다. 게다가 실시설계나 VE(Value Engineering)를 거치면서 설계 당시 계획된 조명기구가 '기준 사양 동등 이상'저가 제품으로 변경되기도 합니다. 특히 돌이나 유리처럼 반사율이 높은 재료를 사용하는 상업시설의 경우, 시뮬레이션이나 CG 이미지만 믿어서는 안 됩니다. 인테리어 도서의 마감재 정보, 천장 높이, 가구 배치 등까지 꼼꼼히 검토해야 실제와 가까운 조도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또한 조명 이론은 대체로 정적인 환경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사용자의 활동 방식이나 공간의 시간대별 변화 같은 '동적 변수'를 반영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낮과 밤의 주변 밝기 차이나 계절에 따른 일조량 변화는 설계 수치만으로 완전히 설명되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계자는 항상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이 조도 수치가 왜 필요한가?", "이 휘도가 실제 공간에서 어떤 느낌을 줄 것인가?" 이 질문들에 스스로 답할 수 있어야 비로소 감각과 수치를 연결하는 진정한 설계가 가능합니다.

조도 500lx라는 수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수치가 공간의 목적과 사용자 경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수치를 해석하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다양한 공간을 관찰하고, 설계된 조명이 시공된 결과를 직접 보고 체감하며 그 차이를 기록하고 반영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경험의 축적이야말로, 설계자의 감각을 키우는 가장 강력한 방법입니다.


설계자의 역할은 기술과 사용자 경험 사이를 번역하는 일입니다. 단순히 수치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 수치가 실제로 사람의 감각과 어떻게 만나는지를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용자에게 체감되는 빛의 인상, 공간에서의 움직임,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밝음과 어두움의 흐름까지 모두 해석하고 설계에 녹여내는 것이 진정한 번역입니다.


조도 시뮬레이션은 여전히 유용한 도구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를 '현장의 진실'로 받아들이는 순간 설계는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특히 현장에서는 수많은 의견과 민원이 발생하기 쉽고, 이때 설계자는 중심을 더욱 쉽게 잃게 됩니다. 그래서 설계자는 늘 다음의 질문을 품어야 합니다.


"이 수치가 말하는 건 무엇이고, 내가 아직 읽지 못한 감각은 무엇일까?"


설계자는 수치를 따르되 감각으로 검증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 균형을 고민하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빛을 설계하는 사람입니다. 이론과 현실을 조율하며 감각을 수치로 근거화하고 수치를 감각적으로 조율할 줄 아는 것이 진정한 설계자의 실력입니다.




#조명디자인 #건축설계 #감각의기준 #시뮬레이션과현실 #설계자의태도


QFyEnUwxnvVHBIkbYmsPxrdmIKLOLrjC.png ⓒ 사진: 내 손안에 서울


https://www.youtube.com/embed/4mPan-_D9K4 (광화문광장의 밤 실제 조명 모습 영상보기)

영상 출처: 유튜브 @EveningRecord

권리 소유: EON SLD / Gwanghwamun Lighting 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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