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조명 감상 방법론

Lighting Solution

by 창밖

조명 감상의 방법론


조명을 감상해봅시다.


이번에는 공간의 목적과 조명의 설계를 이해하고 그에 맞춰 감상의 기준을 스스로 세우는 훈련을 해보는 글입니다.


지난 5월 1일 근로자의 날. 제가 있는 모임 '사이탐닉'에서 갤러리 소모임을 진행했습니다. 소모임의 목적은 앤소니 맥콜의 전시 관람이었고, 장소는 서울 가회동에 위치한 '푸투라 서울'이었습니다.

KakaoTalk_20250515_113147131_19.jpg 루푸탑에서 바라본 북한산 자락. 운무가 멋있었어요.



1. 공간과 조명의 역할

푸투라 서울은 민간 미술관이자 갤러리로, 서울 가회동 언덕 중턱에 자리한 단독 건물입니다.

미술관에서 조명의 역할은 특별합니다. 공간 자체를 밝히고 분위기를 조성하는 기본적인 역할 외에도, 가장 중요한 ‘작품 감상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공간보다 조명이 더 설계적으로 다뤄지는 경우가 많고, 전시 목적에 따라 눈에 띄는 조명 기구들이 배치되곤 합니다. 대표적으로는 레일에 설치된 스포트라이트나, 벽에 긴 암대를 가진 조명들이 사용되어 특정 작품을 직접적으로 비추는 방식이 일반적입니다.

조명이 공간의 목적에 맞춰 감상의 구조를 설계하는 하나의 요소로 작용하는데, 특히 미술관에서는 '작품'이 주인공이지만 조명은 그 주인공이 어떻게 읽히고 느껴지는지 통제하는 무대 연출장치처럼 기능합니다.

이 글에서는 푸투라 서울이라는 공간을 통해 조명이 공간에서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짚어보며 조명 감성의 시선을 함께 키워보고자 합니다.


2. 푸투라 서울에서의 조명 설계

보통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의 조명은 크게 두 가지 목적을 가집니다. 하나는 공간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고(Ambient Light), 다른 하나는 전시 작품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시선을 유도하고, 때로는 집중을 해치지 않는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Focus Light). 이를 위해 일반적으로 레일 스포트나 바리솔 조명의 활용이 많습니다. 가장 다양한 조건에 대응하기에도 용이하니까요.


하지만 푸투라 서울은 이 공식에서 약간은 벗어난 조명 설계를 보여줬습니다. 가장 큰 특징은 조명 기구 자체를 드러내기보다는 건축 요소에 통합시킨 '건축화 조명'을 사용한 점이 두드러졌습니다. 미술관에서는 작품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주인공을 보조하는 조명 역시 그만큼 비중이 크고, 고품질(고가)의 기구를 드러내며 설계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푸투라 서울에서는 대부분의 조명 기구가 철저히 숨겨져 있었고, 빛만 공간에 적용되어 관람객이 의식하지 않는 방향으로 시선을 유도하거나 감상을 돕는 방식으로 구현되었습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자연광의 적극적인 사용이었습니다. 보통은 외부 빛을 최대한 차단하는 것이 작품 감상 및 유지에 유리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설계 방식입니다. 그러나 푸투라 서울은 후정의 자연광을 부드럽게 필터링해 전시장으로 끌어들였고, 지붕의 북향을 택한 천창 역시 하루 종일 일정한 빛이 실내로 들어오도록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작품 감상에 방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세심한 설계 접근이라고 느껴졌습니다.


결국 푸투라 서울의 조명은 '작품만을 위한 조명'이 아니라, '공간과 작품이 함께 어우러지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설계'로 느껴졌습니다. 빛 자체보다는, 빛이 만들어내는 환경을 통해 감상이 유도되도록 설계된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푸투라 2.jpg 건물 입장 시 마주하게되는 장


푸투라 3.jpg 건축화 디테일이 돋보였던 매립 레일과 레일조명





3. 공간별 설계 의도 읽기


1층

가장 미술관답지 않았던 공간이었습니다. 워낙 건축적 디테일이 멋져 전시 작품과 조명 감상을 놓칠 뻔할 정도였는데요, 그만큼 공간의 물리적 구성과 빛이 유기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는 반증이였던것같습니다.


비가 오던 날이었기에, 대기를 한 번 필터링한 듯한 부드러운 자연광이 후정을 통해 들어오며 공간 전체에 매우 안정적이고 은은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었습니다.

푸투라 0.jpg 건축 당시에 기존의 정원을 그대로 보존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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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도 천장에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작품용 스포트라이트가 전혀 없었고,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 테이

블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조명을 발광하는 방식으로 감상이 이루어졌습니다. 강한 대비 없이, 공간 전체가 하나의 배경이 되도록 연출한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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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바닥에 설치된 간접조명도 눈에 띄었는데요. 일반적으로 조명 설계사들은 간접조명을 위해 충분한 설치 공간 확보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푸투라 서울에서는 보다 대담하게, 조명의 기능보다 공간 전체의 흐름에 조화를 맞춘 설계가 인상 깊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바닥의 간접은 슬릿 틈 사이로 빛이 ‘새어 나오는’ 듯한 형태가 되었고, 이러한 접근은 오히려 건축가 주도 하에 조명이 공간 설계의 일부로 흡수되는 지점을 보여줬다 생각합니다.

푸투라 1.jpg 정말 마음에 들었던 간접조명 건축 디테일



2층

2층에서는 본격적으로 전시가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구조적으로는 다양한 전시 형식에 따라 유연하게 변형이 가능해 보이는 공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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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간에도 야외창이 있었지만, 전시 기간 동안은 암막 처리가 되어 외부 빛이 완전히 차단된 상태였습니다.

천장에는 매립된 레일 조명이 설치되어 있었고, 조명 기구는 돌출되지 않도록 마감되어 있었습니다. 전시된 작품들이 대부분 미디어 기반 작업이었기 때문에, 별도의 스포트라이트 없이도 감상에 전혀 불편함이 없었고, 오히려 이러한 조명 방식이 더 적합하게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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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가장 인상 깊었던 공간은 약 10미터 이상의 대형 전시실이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앤소니 맥콜의 '솔리드 라이트' 시리즈가 전시되고 있었는데요, 천장에 설치된 프로젝터를 통해 어두운 공간 전체에 작품이 투사되고 있었고, 스모그로 채워진 전시실 안에서 빛이 입체적으로 조각되는 장면은 그야말로 몰입의 정점이었습니다. 조명이 아닌 '빛 그 자체'가 작품이 되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었던 최고의 전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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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과 루프탑

3층과 루푸탑은 전시 기능보다는 체류의 공간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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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조명은 무심하지 않았고, 하나하나의 디테일에서 설계자의 의도가 엿보였습니다.


특히 재미있었던 점은 조명을 바라볼수록 건축가의 접근과 조명 설계사의 접근 방식의 차이가 드러났다는 점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매립 조명의 사용이나 기구의 배치에서 건축가 특유의 대담함이 느껴졌고, 조명 설계사라면 기능적 고려로 더 보수적으로 접근했을 법한 디테일들을 과감하게 풀어낸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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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 설계시 매립조명, 특히 트림리스(기구 마감면과 인테리어, 건축 마감의 면을 일치시키는 설치 방식)조명에서 디테일은 조명디자이너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건축, 인테리어의 의지도 중요합니다. 이곳의 디테일은 그러한 의지가 느껴졌다고 할까요?

하지만 계단과 같은 일부 공간에서는 조명 기구를 드러내기 보다는 아예 숨겼으면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실제로 저 역시 설계자로서 매립 조명을 선호했던 시기가 있었지만, 현장에서의 시공성과 유지보수를 고려하면 레일이나 하향식 조명이 더 적합하다는 판단을 하게 되곤 합니다.

결국 이 모든 선택은 개인의 취향이자, 공간의 성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요소라는 점에서, 푸투라 서울은 매우 영감을 주는 사례였습니다.



4. 조명 톺아보기

푸투라 서울은 공간 자체가 정형화되지 않은 만큼, 조명 설계 또한 정형화된 공식을 따르지 않았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작품과 공간, 조명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감각적 흐름으로 작동하고 있었고, 이로 인해 제 경우에 관람 시 이질감 없이 자연스럽게 감상에 몰입할 수 있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용된 조명기구 또한 이 공간의 성격을 잘 반영해주었는데요. 흔히 명품 조명이라 불리우는 유럽 외산 브랜드들이 적용되어 있었고, 조명 외 엘리베이터, 하드웨어까지도 고급스럽게 마감되어 관람의 재미를 더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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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 설계사 입장에서 보면 이 공간은 정말 많은 영감을 주는 장소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공간을 택했고, 조명이 목적에 따라 감상의 구조를 만들어주는 도구로 작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글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조명은 단순히 밝고 어둡다 판단을 넘어 공간의 목적, 건축의 의도, 빛의 흐름까지 함께 읽어내는 복합적인 작업입니다. 푸투라 서울의 조명 감상 예시에서 제가 그 의도를 충분히 전달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공간을 방문하실때 조명이 공간에서 어떤 역하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한 번쯤 찬찬히 바라보시길 권해드립니다.

푸투라 1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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