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6, [ 영남일보 시시각각 ]
지난 21일 하지가 지났다. 하지는 24절기 중 하나로 일년 중 낮의 길이가 가장 길고 밤이 가장 짧은 날이다. 하지 전으로 만물이 생장한다는 소만, 씨를 뿌린다는 망종 그리고 하지 후로는 소서 대서 입추로 넘어가서 가을, 수확의 계절로 넘어간다. 오랜 농경 사회의 영향으로, 우리는 이런 절기, '때'에 민감했다. 자연 현상을 넘어 인생도 때마다 해야 할 일,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있다.
얼마 전 학생 하나가 찾아왔다. 그는 삼수를 해서 학교를 들어왔고, 군입대를 하면서 휴학을 했고, 복학 타이밍이 잘 안 맞아 상대적으로 3년 늦게 졸업을 하게 되었다고, 자기는 취업의 때를 놓쳤고 지금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물론 그는 내가 강의하고 있는 과목의 학점 때문에 왔지만, 그 생각의 틀이 안타까웠다. 내가 그에게 해준 얘기는 "이제 인생에 정해진 시기에 꼭 무엇을 해야 하는 때는 없다. 스티브 잡스가 그 암울했던 시기에 청강했던 캘리그래피 강의가 그의 인생에서 많은 영향을 미쳤던 것처럼, 인생의 성장이라는 가치에서 보면 모든 시기는 의미 있는 Connecting the dots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얘기하는 보편적인 무엇을 해야 하는 시기, 때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시기를 좋은 시기로, 때로 만드는 너의 생각과 노력이다. 인생의 때는 주어지는 수동태가 아니라 능동태" 라는 이야기를 하고 보냈다.
헬라어로 시간을 뜻하는 말에는 두 가지가 있다.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절대적 객관적 시간인 크로노스(Chronos)와 각 개인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상대적 주관적 시간인 카이로스(Kairos)가 있다. 크로노스가 단선적인 양적 시간의 개념이라면, 카이로스는 입체적인 질적 시간의 개념이다. 우리가 인생을 의미 있게 산다는 것은 인간에게 물리적으로 주어진 크로노스의 시간을 질적인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바꿀 줄 안다는 것이다. 그 능력이 한 사람의 운명과 인생의 성패를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의 뇌는 98%를 과거와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데 사용한다. 현재를 생각하는 데에는 2%만 할애할 뿐이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으면 시간을 제어하는 능동적인 삶이 아니라, 시간에 제어 당하는 수동적인 삶을 살게 된다. 언제 어디서나 '지금 이 순간'의 가치를 찾아내지 못하는 사람은 카이로스의 시간을 즐길 수 없다. 카이로스의 시간은 우리 삶에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부여한다.
최근 지인으로부터 책을 하나 선물 받았다. '일흔에 쓴 창업 일기'라는 제목처럼 나이 칠십에 책방을 내면서 본인의 준비 과정과 마음 상태, 다짐을 기록한 책이다. 칠십에 무슨 창업이냐고, 그 나이는 창업을 할 때가 아니라는 지인들의 만류를 뒤로 하고, "그렇다고 남들처럼 그냥 산에 가고, 도서관 가고, 때론 딸이 끊어주는 티켓 들고 연주회나 다니면서 그렇게 흐르는 대로 세월 보내고 싶지는 않다. 내가 건강만 잘 지키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았다. 그러니 이렇게 좀 늦었다고 외면하거나 지레 겁먹을 필요 없다. 인생은 항상 좋은 나이다."
그렇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얘기했던가. 당신과 함께해서,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당신의 인생이기에 당신의 모든 때가, 모든 날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