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수업
지난 6월 말로 대학의 봄 학기가 끝났다. 학기는 언제나 그렇듯 기대로 시작해 아쉬움으로 끝나는 것 같다. 기대는 새로운 만남에 대한 기대이고, 아쉬움은 다 전하지 못한 이야기에 대한 아쉬움이다.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 생각난다. 독일로 합병되면서 내일부터 프랑스어 사용이 금지되면서, 마을의 모든 사람이 참여 했던 마지막 프랑스어 수업에 대한 기억이 주 내용이었다. 소설의 메시지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상의 소중함에 대한 내용이다.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 사라질 일상에 대한 이야기라면, 나는 학생들에게 앞으로 다가올 일상에, 그 새로운 세상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 전하지 못한 이야기를 여기에 하려고 한다.
첫번째는 목적을 세우라고 말하고 싶다. 그 목적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그런 What에 기반한 목적이 아니라, 나는 왜 존재 하는가 Why에 기반한 목적을 만들라는 것이다.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이라는 책을 보면 지도 대신 나침반을 만들라는 얘기를 한다. 사막에서 지도는 소용없다 사막은 자주 물길이 바뀌고 모래 바람에 의해 풍경이 바뀌면서 지속될 것 같던 물길, 높은 언덕 등 풍경에 기반한 지도는 곧 무용지물이 된다. 방향을 나타내는 나침반만이 유용하다. 앞으로의 세상은 AI가 일상화되면서, 시장과 경쟁의 경계가 무너지고 융합되는 일상이, 풍경이 바뀌는 일들이 빈번할 것이다. 이 일상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북극성처럼 높이 떠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할 내 존재 이유에 대한 목적이다.
두번째는 질문하라이다. AI가 일상화된 시대, 정답이 어디에나 있는 시대, 가장 중요한 것이 창조성이라는 걸 모두가 공감한다. 그런데 어떻게 이 창조성을 키울 것인가? 특히 고속도로 분기점유도선에 단순히 색칠 하나 함으로 교통사고 발생율을 절반 이상 낮춘 것과 같은 일상에서의 창조성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 일상의 창조성은 익숙함의 맥락을 바꾸어 낯섦을 창조하는 일종의 재배열된 편집이다. 일상의 창조성을 기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질문의 능력이다. 특히 왜(Why) 안되지? 라는 질문은 우리를 익숙한 관성에서, 흘러가는 타성에서 멈추게 한다. 멈춤의 시간으로부터 낯섦이 시작되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만약(What If) 이렇게 해본다면? 이라는 아이디어의 발산으로 이어진다. 나의 기억 창고 속의 여러 생각들을 가져와 그 낯섦의 시간에 집어넣어 본다. 재배열된 편집을 만들어 보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떻게(How) 작동하는가? 라는 질문하기의 과정을 통해 그 재배열된 편집을 현실에 적용해 본다. 창조성은 이 3단계의 질문을 통해 학습되고 강화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첫번째 멈춤 "왜" 이다
세번째는 다정하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정하라이다. AI가 일상이 된 시대는 기하급수적 변화가 일상인 취약한 시대(Era of Fragile)이다. 이 취약한 시대, 기존에 우리가 의존하던 모든 조직과 관계는 잠시 머무르는 정거장이나 환승장일 수밖에 없다. 송길영 박사는 책 "시대 예보"에서 "다정하지 않으면 연결되지 않을 거고, 연결되지 않은 핵 개인들은 생존확률이 떨어질 거예요"라고 말한다.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강한 유대보다 약한 유대가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음을,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를 넓혀야 함을 의미한다. 다정함을 통해 우리는 약한 연결을 만들고, 그 넓어진 세상이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 줄 것이다. AI와 함께 살아가는 시대에는 그 어느 때보다 사람 간의 따뜻한 연결이 중요하다. 결국 기댈 수 있는 것은 인간의 다정함과 관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