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의 분권화? 공간의 분권화?

왜 AI는 지방에서 찬란하게 꽃피어 하는가?

by On the Road

대한민국 국토 균형 발전의 역사는 물리적 거리를 좁히려는 처절한 사투였다. 지난 수십 년간 정부는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해 도로를 닦고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며 수도권의 비대화에 맞서왔다. 그러나 거대한 중력을 이기기에 물리적 처방은 역부족이었다. 건물은 세워졌으되 사람과 자본은 여전히 서울이라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갔으며, 지방은 소외와 소멸의 그늘 아래 놓여 있다. 이제는 하드웨어 중심의 외과적 이식 수술을 멈춰야 할 때다. 지방이 처한 구조적 모순을 역설적 기회로 삼아, 인공지능(AI)을 통해 공간의 한계를 소멸시키는 ‘지능형 분권’으로 대전환을 시도해야 한다. 지방이 수도권보다 AI를 더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AI는 지방의 고질적인 인적 자원 고갈을 해결할 인지 노동의 자립을 가능케 한다. 지방 소멸의 본질적 기제는 노동력의 질적 및 양적 붕괴에서 기인한다. 여기서 AI는 단순히 효율을 높이는 도구를 넘어 인간의 숙련된 인지 능력 자체를 시스템화하는 문명적 전환점을 제공한다. 이른바 인지 노동의 자동화는 지방 제조 현장에서 숙련공의 부재를 기술로 보완하며, 인력 수급 문제와 무관하게 글로벌 수준의 생산 경쟁력을 유지하게 돕는 지능형 자생력의 핵심이 된다. 실제로 숙련공 부족에 시달리던 한 지방 자동차 부품 공장은 AI 예지 보전 시스템을 도입해 설비 고장 예지율을 획기적으로 높였고, 결과적으로 대도시 공장보다 적은 인원으로도 불량률을 낮추며 글로벌 수주 물량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지방 기업이 사람을 구하지 못해 폐업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통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자립이다.


둘째, AI와 자율주행은 서비스 공급의 한계 비용을 파괴하여 공간의 불평등을 해소한다. 인구 밀도가 낮은 지역일수록 필수 공공 서비스의 공급 단가는 치솟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능형 알고리즘에 기반한 원격 진단과 교육 플랫폼은 서비스 공급의 한계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춘다. 자율주행 기반의 수요 응답형 교통 체계 역시 버스 노선이 끊긴 마을의 이동권을 복원하는 디지털 혈관이 된다. 일례로 경남 하동이나 세종시 등에서 실증 중인 자율주행 셔틀과 수요 응답형 교통 서비스는 정기 노선버스가 닿지 않는 ‘교통 오지’ 주민들의 이동권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이는 지자체가 매년 수십억 원씩 쏟아붓는 벽지 노선 보조금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주민들이 원하는 시간에 병원과 시장에 접근할 수 있게 함으로써 지방 거주의 가장 큰 장벽인 고립 문제를 해결하는 실질적인 대안이 되고 있다.


셋째, 지방은 AI 시대의 핵심 자산인 데이터 주권과 인프라 부지를 독점하고 있는 혁신의 발원지다. AI의 성능을 결정짓는 것은 정제된 데이터다. 스마트 팜의 생생한 농생명 데이터나 제조 현장의 노하우가 담긴 로우 데이터는 서울의 빌딩 숲에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지방만의 독점적 자산이다. 또한 초거대 AI 모델을 구동하기 위한 대규모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부지와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을 필요로 한다. 이미 광주광역시는 국가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해 국내 유수의 AI 기업들을 지역으로 유치하고 있으며, 상주의 스마트팜 혁신밸리는 농업 데이터를 자산화해 청년 창업가들을 다시 시골로 불러모으고 있다. 데이터센터와 실증 단지는 단순히 건물을 올리는 토목 공사가 아니라, 전국의 지능형 인재들을 지역으로 끌어들이는 지능의 정유소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결국 과거의 분권이 행정 기관의 이전이라는 물리적 강제였다면, AI를 통한 분권은 지역의 체질 자체를 개조하고 신경망을 재구성하는 내과적 혁명이다. 지방의 결핍은 AI를 도입해야 할 가장 절박하고 강력한 동기이며, 지방이 보유한 유휴 공간과 특화 데이터는 AI 기술을 완성할 수 있는 최고의 재료다. 이제 AI는 지방에 있어 사치재가 아니라 생존권의 문제다. 기술의 중심과 정책의 우선순위를 서울이 아닌 지역의 현장으로 과감히 이동시키는 지능의 남진 정책이 실현될 때, 비로소 대한민국은 수도권이라는 외발자전거에서 벗어나 전국이 고르게 박동하는 사륜구동의 심장을 갖게 될 것이다. 지능의 분권화가 완성되는 날, 지방은 비로소 소멸의 대상이 아닌 혁신의 발원지로 재탄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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