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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비 Mar 13. 2020

나는 그렇게 남의돈 12억으로 주식을 시작하였다

느리게, 그리고 남의 돈으로

1년간 운영한 12억짜리 주식 포트폴리오


중국, 필리핀을 거쳐 나는 미국의 한 시립 대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학비도 싸고, 또 외국인들이 내야 하는 out of state charge(보통 600만 원 정도) 또한 장학금으로 준다길래 바로 옆에 붙어있는 주립대 말고 이 학교를 선택하게 되었다.  약사 과정만 강하고 나머지는 그저 그런 이 학교에 들어와서 회계를 전공하고 있던 나는 어느 날 반쯤 흥미 삼아 투자 동아리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것은 나의 인생을 바꾸었다.


사실 회계학부에 들어간 이유 중에 한 개가 "회계는 투자의 언어야!"라는 소리였다. 나는 회계를 배우면 자연히 투자를 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 와중에 "Investment Club(투자 동아리)"라는 곳을 우연찮게 발견하게 되었다. 클럽에 들어가서 1년 정도 있다 보니 사실 투자의 언어는 회계가 아니라 경제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이 들자마자 취업이 거의 99% 보장되어 있던 회계학부에서 쥐꼬리만 한 교수진을 가지고 있던 경제학부로 전공을 바꾸게 되었다.


모의로 이것저것 투자하다 보니 학교 금융 학부를 총괄하고 있는 교수님이 바로 그 투자 클럽의 지도교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교수님이 투자 동아리 방에 오시더니 자신이 12억짜리 포트폴리오를 운영할 수 있는 클래스를 열 계획인데, 원래는 MBA 학생들만 받지만 이 클럽에서 학부생 몇 명을 뽑겠다는 말을 남기고 나가셨다. 12억 이라니! 그것도 실제 투자를! 그 길로 바로 나는 해당 수업을 신청하여 인터뷰를 보았고, 감사하게도 교수님은 나를 해당 수업의 멤버로 받아주셨다. 투자의 본고장에서 진짜 투자 활동을 하게 된다는 것도 굉장히 흥미로웠지만,  매달 200만 원 넘게 돈을 내야 하는 블룸버그 단말기(주식거래 및 다양한 투자 정보를 볼 수 있는)를 무제한으로 사용해 볼 수 있게 된다는 것 또한 굉장히 감격스러웠다


결론적으로는 벤치마크 대상이었던 모든 우량주식 펀드들보다 수익률이 0.1%  높았고, 이 일 년간의 경험은 내가 가지고 있던 투자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주었다



뜨거운 투자, 냉철한 철학


우리가 운영하게 된 주식 포트폴리오를 운영할 때는 꼭 지켜야 하는 아래와 같은 철칙이 있었다.


1. 한 회사의 주식 총가격은 전체 포트폴리오 가치의 5% 이상이면 안 된다

2. 회사의 시가총액이??? 이상인 대형주만 거래를 해야 한다

3. 레버리지를 사용할 수 없다


사실 처음에는 굉장히 거추장스럽고, 또 나의 다이내믹한 투자 계획을 실현시키는데 큰 방해가 되는 룰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나중에 보니 이러한 룰들을 투자를 할 때 꼭 필요한 것 들이었다. 어떻게 보면 내가 배운 투자에 관한 것들 중 가장 가치 있는 것들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탐욕적이고 어리석다고 생각하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그렇기 때문이다. 높은 전문성이 없는 상태에서, 이러한 제한들이 없이 하는 투자는 투기와 별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게 절대로 깰 수 없는 차가운 룰들이 존재하면은 투자는 무슨 재미로 하나?"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사실 정말 재미있고도 중요한 것은 "얼마나 살 것인가?"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살 것인가?"이었다. 우리는 매주 돌아가면서 한 명씩 왜 어떤 주식을 팔아야 하고 왜 어떤 주식을 사야 하는지 발표를 하였고, 발표자를 제외한 나머지가 해당 발표를 기반으로 발표자가 주장하는 매수 혹은 매도에 동의하는지 투표를 하였다. 실제로 그 투표의 결과에 따라 우리는 주식을 사기도, 혹은 팔기도 하였는데 정말로 재미있는 것은 각 발표자들의 스타일이었다.


어떤 사람은 PER(Price Earning Ratio)을 중점으로 둔 투자 매수/매도 선택을 내렸고, 나 같은 경우에는 해당 회사가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중점을 둔 매수/매도 선택을 내렸다. 각자의 스타일이 달랐고, 그렇기에 각자 동일한 주식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들을 제시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선택들 자체가 굉장히 주관적인 가치관들의 충돌이었고, 이러한 충돌은 평소에 내가 생각하던 "차가운 금융"이라는 굉장히 다른 환경이었다



주식에 대한 의문


이렇게 주식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고 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면서, 나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개인에게 있어 주식의 진정한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투자 초보인 내가 보기에, 주식의 가치는 아래와 같았다


1. 배당

2. 투표권

3. 주식 가격


굉장히 간단하게 생각해보면, 결국 주식은 내가 어떤 사람이 하는 프로젝트에 돈을 투자하는 것이고, 그 프로젝트에서 파생될 수익에 대한 권리를 가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배당은 주식의 근본이라고 나는 생각을 하였다. 문제는 모든 회사가 배당을 하는 것은 아니란 것이다. 그렇다면 회사의 시작부터 죽음까지의 모든 기간을 보았을 때, 이 회사가 단 한 번도 배당을 하지 않는다면은 (그리고 많은 회사들이 그런다), 도대체 내가 산 주식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내가 만약 경영에 유의미하게 영향을 줄 수 있을 정도의 주식을 매수 및 매매할 수 있는 자본을 가지고 있다면, 여기서 주식은 투표권이라는 가치를 나에게 줄 수 있다. 내가 현대 자동차 오너인데 테슬라라는 회사의 주식을 매수하여 해당 회사의 미래 방향 및 기타 프로젝트 결정권을 가진다면, 충분히 현대 자동차에게 도움이 되는 것들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그러한 자본을 가지고 있지 않은 개인들에게는 투표권이 주는 가치는 사실 너무 미미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주식의 가치는 주식 가격 상승에 있는가? 그렇다면 주식 가격 상승은 왜 일어날까? 결국에 기관투자자들이 배당을 강제하거나 투표권을 확보하기 위해서 주식을 매수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실 그 회사가 망하든 잘 되든 상관없이 그 회사의 주식이 개인에게 줄 수 있는 가치는 거의 0이나 다름없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개인 투자자들만 몰려있는 회사의 주식 가격은 결국에 개인들의 심리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는, 그리고 언젠가는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밖이 없는 폭탄 돌려막기 같은 것이 아닐까?


이 질문은 아직도 나의 투자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질문 중 한 개다. 그리고 나는 이 질문에 대해서 아래와 같은 답을 내리게 되었다

근본적으로 가치가 없는 많은 주식들도, 주식의 가격은 존재한다. 사람들이 가치가 있다고 믿는 그 순간까지


그리고 사실 이렇게 많은 주식들의 가치가 0에 수렴한다는 것이 사실 이더라도(물론 아니겠지만), 이러한 의견을 사회 전체가 수용하거나 금융시장 자체가 산산이 부서지지 않는 이상 이러한 의견은 의미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마치 돈과 같다. 돈 자체는 가치가 없지만, 우리가 돈이 가치가 있는 그 순간까지 돈은 정말로 가치가 부여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투자를 해야 하는가?


그것은 이제부터 실험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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