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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비 Sep 28. 2024

직업상실 시대: 학습의 가속화 & 깊이의 추구

"AI가 어떤 직업을 대체할까?"라는 질문보다 "우리가 지금 AI로 무엇이 가능한가?"가 더 효과적인 질문이다.


 개개의 직업 자체는 너무 지엽적이어서 그 직업이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명확히 알 수 없다. 그보다는 우리가 Chat GPT 같은 인공지능을 주요 도구로 사용하게 되면서 무엇이 가능해지는지 알게 되면, 우리의 업이 어떤 식으로 변화할지에 대한 방향성은 알기 쉽다. 그렇기에 이 글에서는 '어떤 직업이 사라질까'보다는, 근래에 업무에 인공지능을 써보니 어떤 식으로 '나'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과 '요구받는 일'이 확장되는지, 그리고 이것이 우리들의 '직업'이란 것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해보고자 한다. (오, 말투가 저절로 논문 쓰는 말투가 되었다.)


요즘 들어 '나는 비전공자이지만 인공지능을 활용해서 코딩했다'라는 마치 '이세계에 떨어진 나는 공학천재?' 같은 느낌의 글들이 많이 올라온다. 반면, '인공지능으로 코딩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상승했어요!'라는 글들은 상대적으로 적게 올라온다. 이는 무엇을 함의할까?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돈은 항상 희소하면서 동시에 생산성이 매우 높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쏠린다. 프로그래밍 지식이 바로 그 표본이라 생각한다.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는 다년간의 고단한 학습이 필요하고, 더 나아가 이를 실무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경험과 암묵지를 획득하는 것은 더 어렵다. 반면 이 지식을 통해 창출할 수 있는 기대 생산은 플랫폼 효과로 인해 무량대수까지 갈 수 있다. 그렇기에 프로그래머들의 몸값은 비싸다. 그리고 자본주의 시스템 내에서 돈의 흐름에 민감한 나와 우리 동시대의 사람들은 프로그래밍 지식이라는 것을 마치 인생 성공의 성배처럼 바라보게 되는 기조가 근래까지 있었다.


근데 여기서 인공지능의 도입과 함께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프로그래밍을 배우는 데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리는 부분은 '컴퓨터'라는 일정의 복합 시스템에 대해 이해하는 것, 그리고 코딩 중에 생기는 수많은 에러들을 고치는 것이다. 이 지난한 시간들이 인공지능의 도입과 함께 극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모르는 개념에 대해서 인공지능에게 구조적이면서 쉬운 설명을 요구하면 중학생도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잘 설명해 준다. 코딩 중에 생긴 에러는 그냥 복붙해서 인공지능에 문의하면 답을 준다.


즉, '돈 = 지식의 희귀성 × 지식의 생산성'이라는 구조에서 지식 습득에 걸리는 시간에 의한 '지식의 희귀성'이 인공지능의 학습 보조로 인해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의 부족과 난이도로 인해 원래 감히 넘보지 못했던 지식이 점점 더 쉽게 배워질 수 있어지면서 직업적으로 자신의 우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략이 필요하다:   

1. 나만의 고유한 지식

2. 인공지능으로도 쉽게 배우기 어려운 깊이 있는 지식


1번의 경우 여러 가지 방식으로 쌓아갈 수 있다. 남들이 쉽게 경험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일을 하며 암묵지를 쌓거나, 다양한 지식들을 조합하여 고유한 의견을 만들거나, 다른 사람들이 하기 꺼려하는 일을 하면 된다. 이는 다시 말하면, 우리는 이제 다양한 경험과 그 경험에서 구축되는 쉽게 습득하기 어려운 고유한 우리들만의 의견을 만들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2번 전략이 정말로 흥미롭다. 통계 지식을 예로 들면, 통계 관련 지식은 인공지능으로 설명을 들어도 이해하기 너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실용적으로 활용되는 통계 방법들 아래에 깔려있는 근간 지식들이 너무나도 복잡하게 얽혀있고 사람의 직관과 반대되는 이해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통계 지식은 인공지능을 통한 학습보조가 있다고 하더라도 '도대체 이걸 현실에서 써먹을 수 있기는 한가?'라는 절망과 좌절의 절벽을 넘어서는 데 꽤나 오랜 시간과 의지가 필요하다. 물론 이는 꼭 통계에만 해당되지는 않는다. 우리 주변에는 일정 수준의 실력을 넘어서야만 비로소 현실에서 조금이라도 써먹을 수 있게 되는, 하지만 그 간격이 너무 커서 누구나 도전하지 않는 지식들이 존재한다. 바로 우리가 대학교에서 배우는 '전공'들이다. 


생각해 보아라, 사회학 배울 때 이걸 어디다 써먹나 생각한다. 하지만 사회학에 대한 지식을 깊이 연구하고, 고찰하고, 현실에 적용해 보려 끊임없이 시도하다 보면 자신의 본업과 무한대의 시너지를 보이는 순간이 온다. 이는 다시 말하면, 우리가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클래식한 '전공' 지식들이 각광을 받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데이터 분석 분야만 보더라도,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을 넘어서 이를 소비자 심리학, 사회학, 경제학 지식을 사용하여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면, 그 사람은 인공지능 시대가 오건 말건 정말로 필요한 사람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전공 지식들을 배우는 데 필요한 학습 시간 또한 인공지능의 학습 보조를 통해 줄일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지식에 대한 준전문가 지식을 쌓는 것이 비교적 쉬워졌다. 이를 기반으로 생각을 더 전개해보면, 앞으로는 다양한 깊이 있는 지식들을 준전문가 수준으로 쌓고 이를 조합하여 자신만의 고유한 지식체계를 쌓고 또 이를 기반으로 극도의 생산성을 보이는 사람이 각광받지 않을까?



즉, 학자들의 시간이 온 것이고, 
우리는 더 전문적인 지식들을 요구 받게 될 것이고,
각 전문 지식들을 현업에서 활용하기위해 고군분투 할 것이다.

따라서 재미있는 전공들을 취미로 배워보기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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