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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비 Jun 08. 2020

기술 부채 말고, 문화 부채

기술 부채만 부채가 아니다

기술 부채란 무엇인가


IT 산업에서는 기술 부채라는 단어가 있다. 사업 초기에 성장을 위해 서비스와 비즈니스 모델을 빠르게 변경하고 만들어 나아가다 보면은 탄탄하고 안정적인 코드 설계를 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Product Market Fit을 찾기 위해서는 서비스를 수없이 테스트하고 변경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에 탄탄한 코드 설계를 하지 못하는 것은 이해할만하다.


문제는, 특정 시점에서 서비스가 급속도로 확장을 할 때 이러한 것을 (레거시 코드를) 해결하지 않고 기존에 만든 코드 위에 새로운 코드를 짜 넣을 때 많은 비효율이 생긴다는 것이다. 서비스는 거대하고 더욱 복잡하게 만들어져 가는데, 기존에 얼기설기 묶어놓은 인프라와 코드가 서비스의 복잡도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수시로 서비스가 멈추거나, 개발을 하기 힘들어진다. 많은 경우  유지보수에 너무 많은 리소스가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이러한 탄탄하지 못한 코드 설계 문제는 쉽게 해결하기 어렵다. 코드를 리팩터링(더 효율적인 구조로 만다는 것)하는데 많은 시간이 들어갈 뿐만이 아니라, 한다고 하더라도 외부에서는 쉽게 그 효과를 느끼기 어렵다. 즉, 이런 기술 부채를 해결하려면 누군가 총대 매고 뛰어들어 1년 정도의 시간을 투자해 전사적인 협조를 통해 해결해 나아가야 한다. 문제는 그렇게 공들여 해결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성과로 남지 않는다.


이렇게 풀기는 어려운데 성과는 잘 안 보이는 기술 부채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커져서 나중에는 누구도 해결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서비스의 개발은 점점 더 늦추어지고 나중에는 서비스 자체가 어떤 방향으로도 변화할 수 없게 되는 문제가 생긴다


기술 부채보다 더 깊은 수심에서 도사리는 문화 부채


하지만 기술 부채를 더 깊이 파고 들어가면 단지 "기술"에 의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한다. 서비스의 문제를 잘 정의하고, 우선순위를 매기고, 그에 따라서 인적 자원을 투자하고, 문제를 풀어가는 프로세스를 만드는 역량이 부족할 때, 그리고 그 부족함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때 기술 부채 같은 장기적 문제가 생긴다. 결국에는 어떤 문제를 풀고 어떤 문제를 풀지 않을지에 대한 결정이 서비스가 안고 가는 문제를 정의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문제를 잘 정의하고 해결하는 회사를 만들 수 있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회사의 조직문화가 잘 잡혀 있을 때 회사의 구성원들이 정말로 해결할 가치가 있는 문제를 정의하고 또 풀어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조직문화는 기술 부채와 마찬가지로 초기부터 잘 설계되어 있어야 나중에 회사 전체를 갈아엎지 않고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만들어 나아갈 수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모든 임원진들이 조직문화에 대해 초기부터 깊이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뜬구름 잡는 소리 말고, 실질적으로 조직문화라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회사가 무엇을 중심으로 의사결정을 내리고, 어떻게 일을 진행해야 하고, 어디에 돈을 투자하고 어떻게 성과를 측정하는지, 또 어떤 사람을 채용하는지에 묻어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들이 어떤 색깔을 가지고 만들어지는지는 회사 임원진들이 조직문화에 대해서 얼마나 심도 있게 고민하고, 또 그 고민에서 어떠한 자신만의 중심, 즉 철학을 만들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왜 워렌 버핏이 임원진이 잘해야 하는 것은 아래의 단 두 가지라고 말했겠는가.


1. 인적 자원의 배분

2. 금융적 자원의 배분



슬로건 말고 행동 먼저


많은 사람들이 회사가 내보이는 슬로건과 복지가 그 회사의 조직문화를 대표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로 훌륭한 조직문화는 회사에 들어가자마자 느낄 수 있다. 새로 들어온 사람을 어떻게 교육하고, 어떤 비전을 주고, 또 어떤 문제를 풀게 하는지만 지켜봐도 이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 알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지금 당장 생존해야 하는 입장에서 조직문화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어이없는 말 일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트렌드에 따라서 많은 스타트업들이 "수평적인 조직", "유연한 조직", "가족 같은 조직"을 울부짖지만 막상 그런 슬로건이 무엇을 위해 만들어진 슬로건이고 또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다(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한다). 왜냐하면 그런 것 보다 지금 당장의 생존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오히려 생존을 지금 당장 신경 써야 하는 스타트업 들이 거대 기업들보다 더욱 조직 문화에 자원을 많이 투자해야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회사는 어떻게 보면 두 가지 레이어로 이루어져 있다. 바로 돈이라는 실질적인 부분과 구성원들의 믿음이라는 추상적인 부분이다. 둘 다 중요한 요소이지만, 커다란 보상을 직접적으로 줄 수 없는 스타트업들은 적어도 구성원들의 미래와 회사에 대한 믿음이라는 부분을 강조하고 또 강점으로 가지고 있어야만 금융적인 부분을 어느 정도 메워 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구성원들의 미래와 회사에 대한 믿음은 단지 공허한 슬로건이 아니라 일상에서 부딪히고 느끼는 조직문화, 즉 회사의 업무 프로세스 및 임원진들의 결정에서 만들어지고 느껴진다.


왜 문화는 바꾸기 어려운가?


문제는, 조직문화는 임원진 및 사장의 회사와 세상에 대한 철학이 반영된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한 사람의 철학을 도중에 바꾸기 힘들듯, 회사의 조직문화 또한 쉽게 바꾸기 어렵다. 오히려 기술적인 문제였다면 어찌어찌 해결할 수 있겠지만, 조직문화 같은 인간관계 및 업무 프로세스에 해당하는 정말로 모호하고 무형적인 것은 바꾸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바꾸기 더 어렵다.


기술 부채 라면 적어도 왜 이 문제가 해결되면 서비스의 운영 및 변경이 더 효율적이 될 것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할 수 있지만, 조직문화가 바뀌면 일이 더 효율적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더욱이, 지금 당장 서비스 및 회사가 잘 굴러가고 있다면 (모든 사람이 겪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임원진 및 사장은 왜 시간과 공을 들여 "좋은 조직문화"라는 것을 만들어 나아가야 하는지 공감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방식으로도 지금까지 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좋은 조직문화를 확립하기 위한 구성 윈들에 대한 보상 체계, 업무 프로세스를 위한 다양한 도구들이 있지만(OKR?),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사장이, 그리고 임원진이 이에 대해 얼마나 깊게 생각하였고 또 회사의 발전보다 더 빨리 얼마나 관리자로서 발전하였는가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은 철학은 없으나, 고민 끝에 나온 철학에 근거한 각자의 치열한 삶에 대한 태도만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회사에 취업한다면 해당 임원진들이 조직문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어디로 끌고 가려는지, 어떤 문제들에 봉착하였는지에 대해 물어봄으로써 회사가 얼마나 성장할지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 부채를 신경 쓰지 않는다면


요번에 동료와 이야기하며 느낀 것은, 초기에 임원진이 조직 문화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명확한 방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혹은 기술개발과 당장의 벌이에 매몰되어 조직문화에 대한 우선순위 미루어두고 있는다면 모두가 고통받는다는 것이다. 조직이 막상 성장을 해야 할 때 올바르지 않은 조직 문화로 인해 모든 사람들이 그 누구도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회사에 불만을 가지게 된다. 무언가 회사가 잘 돌아가지 않고 또 내가 하는 일이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그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애매모호하고 짜증 나는 감정을 지속적으로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짜증은 회사 내부의 누군가가 원인인 것으로 여기어지고 수많은 감정적 부딪힘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파생적 문제들을 서비스가 발전하지 못하도록 모든 사람들을 꽁꽁 묶어서 바다 아래로 가라앉는다.


워렌 버핏이 년간 주주총회에서 말하듯이, 잘 가꾼 조직문화야 말로 회사의 가장 큰 자산 중 하나이다. 그리고 나쁜 조직문화야 말로 알게 모르게 회사를 깊은 구덩이로 끌고 가는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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