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를 만들다 보면 유저들 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되는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떠오른다. 혹은 상위 직책의 사람이 이런이런 기능을 추가하면 어떤지 의견을 주기도 한다. 사실 아이디어는 굉장히 많이 만들 수 있지만, 그 아이디어들이 서비스에 어울리는지, 더 깊이 들어가면 왜 그 기능을 서비스에 추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예를 들어 서비스가 유저들 에게 더 재미있게 느껴지도록 레벨과 배지 시스템을 도입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고 생각해보자. 언뜻 생각하기에는 게임처럼 이런 기능들을 도입하면 서비스가 더 재미있어질 거라는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하지만 왜 이런 기능들이 유저에게 흥미를 유발시키는지, 그리고 이러한 기능들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어떤 서비스들은 재미가 없는지 설명해보라고 하면 딱히 할 말이 없게 된다.
왜 그럴까? 많은 경우 해당 추가하고자 하는 기능에 대한 깊은 사고와 그 사고를 뒷받침하는 생각의 틀이 없기 때문에 해당 기능을 추가하는 논리적인 이유를 만들 수 없다.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은 질문들이 있다고 해보자
1. 레벨 시스템은 무엇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는가
2. 무엇이 좋은 레벨 시스템과 나쁜 시스템을 구분하는가
3. 레벨 시스템은 어떤 구성 요소로 이루어져 있는가
위와 같은 질문들에 대해서 입을 털어보자면 털 수 있지만, 문제는 그렇게 척추 반사신경처럼 나오는 답안은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없고, 그렇기에 수많은 의견과 피드백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수정과 수정을 거치게 되며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그렇다면 수많은 외부 영향과 의견 사이에서 중심을 잡을 수 있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생각의 기반을 마련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분야든 해당 분야가 산업 전반에서 쓰이게 되기까지는 수많은 시도와 실패 그리고 성공이 쌓인다. 그리고 그렇게 쌓인 경험들은 누군가에 의해서 정리된 형태로 공유된다. 그렇기에 블로그나 유튜브 등을 보면 충분히 해당 기능의 근본적인 부분(왜 만들어졌고, 무엇이 좋고 나쁨을 구분하는지)에 대해서 대략적으로 알 수 있다. 그중에 내가 가장 추천하는 방법은 해당 분야의 책을 읽는 것이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어떤 기획자 분이 브런치에 책을 읽음으로 인해 해당 분야의 기획을 더 짜임새 있고 논리적으로 만들 수 있는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했던 것 같다.
나 또한 레벨과 배지 시스템에 대해서 기획을 하면서 어떻게 만들어야 좋은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 굉장히 모호한 개념만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해당 시스템의 정확한 스펙(몇 레벨에 경험치가 몇 필요하고, 또 왜 그렇게 만들었는지 등등)을 기술할 때 굉장히 많은 고민이 있었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아마존에 가서 Gamification과 관련된 책 몇 권을 읽어보니 내가 보기에도 설득력 있는 기획서를 훨씬 더 쉽게 작성할 수 있었다.
사실 기획서의 세부 사항들은 중요하지만 또한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기획을 무엇에 근거하여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갈지 에 대한 틀만 단단히 잡혀 있다면 나머지는 시간과 공을 들이면 저절로 따라오는 것 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질문 : "유저(고객)가 어떻게 느끼는가?"
레벨과 배지 시스템을 만들면서 언제 어떤 배지가 어떻게 주어져야 하는지, 그리고 언제 레벨이 얼마나 올라야 하는지에 대해서 기준이 될 수 있는 질문 하나를 선택하자면 나는 "그래서 유저가 그것을 어떻게 느낄 것 같아?"이다.
레벨이나 배지는 사실 어떻게 보면 그냥 단지 숫자 놀음 이기도 하다. 화면에 황금 배지 한 개가 띄워진다고 나의 삶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즉 중요한 것은 그래서 그 황금 배지를 얻는 것에 대해서 유저가 어떻게 느끼는가 이다. 만약 성취감과 도전에 대한 열정을 느낀다면 그 픽셀로 이루어진 황금 배지는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할 수 있다. 즉 배지에 대한 기획을 잘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어떻게 배지와 레벨을 통해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할지는 서비스의 특징과 목적에 따라 달라진다. RPG 게임과 나이키 운동 앱 에서의 배지가 다른 의미와 맥락을 가지는 것처럼 말이다.
즉, 물리적으로 실질적인 영향이 없는 것들에 대한 기획은 그것의 표면적 수치, 난이도, 복잡도, 외형이 아니라 그것을 성취하고 획득하는데 유저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지에 대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수학적 시뮬레이션
레벨 시스템을 만들면서 사용했던 개념적 도구 중에 하나가 선형 회기 모델이다. 단어가 어려운데, 간단하게 생각하면 레벨 1 올라갈 때 경험치가 몇이나 필요한지에 대한 관계를 나타내는 모델 혹은 선으로 그은 그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사실 서비스와 특징에 따라 레벨업에 필요한 경험치가 몇이 되어야 하는지는 천차만별이다. 그렇기에 서비스의 특징과 기획 의도에 따라 다양한 케이스들을 만들어보고, 각 케이스들 중 어떤 케이스가 가장 보기에 올바른지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는 각각의 케이스들을 다 손으로 하나하나 엑셀 시트에 적어서 테스트해보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 든다. 또 왜 레벨이 2가 되기 위해서는 경험치가 201 이 아닌 200 이어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설명하기가 어렵다. 경험치 1 차이에 대해서 설명할 수 없는 것은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동시에 왜 경험치가 왜 210, 230, 혹은 300이면 안되는가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 없는 것과 동일한 이유를 가진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수학적 공식을 적용시키는 것이다. 이런 수학적 공식으로 표현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시스템은 시뮬레이션해보기도 쉽다. 손으로 일일이 수작업할 필요 없이 공식의 몇몇 변수들을 고치면 내가 원하는 케이스에 대해서 바로 데이터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학적 공식을 통해서 만들어진 시스템은 개발자에게도 코드로 짜기 쉽다!
한계를 고려하기
기획을 할 때 우선 고려할 부분은 서비스가 어떤 기능적으로 그리고 비즈니스 모델의 한계이다. 수많은 아이디어를 만들 수 있지만, 그중에 어떤 아이디어가 현실적으로 실행 가능한지 알아야 해결 방안의 범위를 좁혀 나아갈 수 있다
만약 서비스의 한계를 알지 못한다면 해볼 수 있는 것들은 무한정하고, 거기서 무엇을 우선순위로 실행해야 하는지 기준을 잡을 수 없다. 또한, 무언가를 기획하더라도 해당 기획의 세부적인 사항들을 (예를 들어 쿠폰을 얼마나 주어야 하는지) 정하기 위해서는 서비스의 히스토리와 비즈니스 모델 한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떻게 보면 서비스 기획을 하는 것은 논문을 쓰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껴진다. 이미 시간을 거치면서 쌓인 지식, 인프라, 문화 과 있고 서비스 기획은 그 히스트로의 산 위에 돌 하나를 얹는 것 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명확히 정의할 수 없다면 산의 높이를 높이는 돌을 쌓는 게 아니라 그냥 산 아래로 굴러 떨어져 내리는 수많은 돌 중의 하나를 만들게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