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에 회상하는 20년
어쩌면 vic(비크)는 스페인에서 가장 스페인스럽지 않은 동네일지도 모른다.
도시라고 부르기에는 규모가 좀 작고, 동네라고 하기에는 너무 무시하는 것 같아 미안한 곳. 바르셀로나에서 열차로 한 시간 정도 떨어져 있지만, 바르셀로나와 비크의 차이는 열차 한 시간이 꽤 먼 거리 임을 느끼게 한다. 건물마다 보이는 카탈루냐 국기와 자유를 외치는 문구만이 같은 지역임을 확인해 준다. 거창하게 비교했지만, 비크는 그냥 사람이 사는 카탈루냐 지역의 일부일 뿐이다. 바르셀로나라는 관광 도시와 비교하는 게 사실은 우스운 일이다.
그럼에도 누군가 내가 지냈던 그곳에 대해 묻는다면 굳이 바르셀로나를 언급해 설명하는 이유는, 그것이 마음에 드는 질문을 해준 상대가 흥미를 유지하도록 하는 나의 최선이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정의 내리자면 지리적으로는 바르셀로나와 가깝지만, 개념적으로는 시골에 가까운 동네다. 실제로 비크를 벗어나 조금만 걷다 보면 소 우리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주말을 껴서 발렌시아에 다녀온 나와 친구들, 여행을 마치고 비크 역에 내리자마자 그중 한 명이 말했다.
"진짜 일상으로 돌아온 게 맞나 봐, 비크 냄새가 나"
주말 오전에 잠시 외출 후 집에 들어오면 가족들이 끓여먹은 라면 냄새가 확 풍기는 것처럼, 금방 무뎌지는 후각은 그만큼 빨리 회복하는 걸까. 비크역에서 내리면 느껴지는 옅은 소똥 냄새는 이제는 오히려 그리운 것이 되어버렸다.
소 우리에서 대충 감을 잡았겠지만, 비크는 산과 평야로 둘러싸여 있다. 지도로 보면 그 사실이 훨씬 잘 느껴지는데, 산들 사이에서 사람들이 살기 위해 옹기종기 모인 느낌이다. 그래서 주말에는 산을 가기도, 트래킹을 하기도 했다. 그게 비크가 가진 낭만이지 않을까. (라고 말하면 다른 지역으로 교환학생을 갔던 이들이 비웃곤 한다)
그래서 비크는 춥다. 비크는 쌀쌀한 동네다. 실제로 겨울에는 바르셀로나보다 항상 2-3도 정도 낮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쌀쌀한 인상은 스페인에 막 도착한 내가 며칠간 느낀 쓸쓸함이 한 몫했다. 1월에 타지에서 맞는 비에서는 한기가 느껴졌다.
물론 여름에는 덥다. 해도 길다. 여름이 막 시작되던 그쯤에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서 낮에는 활동이 제한되었다. 창 밖을 내다볼 때마다, 해가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는 보통 9시쯤에 졌는데, 8시부터 10시까지 외출이 허용됐었다. 친구들을 만나 동산에 가면 해가 서서히 떨어지고 있었다. 떨어지는 와중에도 마치 해는 끝까지 자신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있는 힘껏 열과 빛을 뽐내는 느낌이었다. 우리들은 한 동안 말없이 그 해를 지켜보기만 했다. 어떻게든 자리를 지키려던 해가 결국 산 너머로 떨어진 것처럼, 같이 노을을 보던 친구 중 몇 명은 며칠 후 결국 고국으로 떠나고 말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외부 활동의 제한이 들어오고 나서야 나는 비크의 곳곳을 탐방하며 애정을 가지기 시작했다. 팬데믹이 선언되기 이전에는 기껏해야 학교, 광장, 술집, 클럽과 집 사이의 경로밖에 알지 못했던 나는, 스페인 정부에서 허락한 오후의 2시간 동안 열심히 나만의 지도를 만들기 시작했다. 2시간이라는 부족한 시간 동안 나는 동네를 열심히 뛰어다녔다. 러닝이라는 이름으로. 비크의 외곽에는 긴 산책로가 있었는데, 나는 요새도 우울한 일이 생기면 그곳을 달리는 상상을 하곤 한다. 몇 개월 가량 자르지 못한 머리카락을 찰랑거리며, 그 머리카락을 싸맨 반다나가 흠뻑 젖을 때까지.
첫인상은 쌀쌀함이었지만, 마지막 인상은 아련한 노을인 그곳. 아마 겨울에 가서 여름에 떠났기 때문에 그런 것이겠지. 그 어떤 의미부여를 하려고 해도 그게 전부인 것 같다. 겨울부터 여름까지 있었던 곳. 2020년에.
나의 2020년대를 시작한, 많이 그리운 곳.
노을이 아름다운 동네, vic에 글을 바칩니다
모든 노을은 아름답지만, 유난히 아름다웠던 비크에 이 글을 보냅니다